제가 바로 그 인프제입니다만
"너는 뭐야?"
"뭐가 뭐..여?"
"MBTI 무슨 유형이냐고."
"MBTI가 뭔데?"
".........-_-;;;"
이런 대화를 수십 번쯤 반복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MBTI 테스트라는 것을 해보았다. 정식 테스트는 아니라지만 검색만 하면 손쉽게 테스트를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문항이 너무 많아 지겨웠지만 '넌 16개 중에 어떤 인간이냐'를 집요하게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차라리 뭐라고 대답해 주는 게 편하기에 참고 끝까지 응답했다.
이십 대 중후반 처음으로 이 테스트를 했을 때 나는 ISFP라는 인간이었다. 다채로우면서도 감각적인 삶을 살아가고 어떤 유형의 사람보다 탐험이나 실험 정신이 뛰어나다고 한다. MBTI 테스트 외에도 여러 가지 직업이나 적성 관련 테스트를 하면 나는 늘 예술가형 기질이 매우 높다고 나왔다. 예술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지만 테스트 결과를 마주할 때마다 '역시 나는 인생을 헛살고 있군'이라고 자조(自嘲)했다.
시간이 흘러 삼십 대 중반이 된 나는 MBTI 테스트를 다시 해보게 된다. 십여 년이 지난 후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MBTI 유형을 물었고, 어제 일도 기억이 안나는 사람이 십 년 전에 했던 MBTI 테스트 결과가 기억이 날 리 만무했다. 그래서 다시 테스트를 했다.
그리고 나는 뜻밖의 결과를 받았다.
나의 MBTI 유형이 바뀐 것이다. 뼛속까지 내향형이니 I는 바뀔 리가 없고, 관계와 사람 위주로 판단 기준을 둔다는 F는 그대로였다. 바뀐 것은 사고의 인식 형태와 생활양식이었다. 지난 십 년 동안 나의 삶에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궁금해졌다. 좀 더 자세히 유형별 설명을 들여다보았다.
ISFP 유형은 "저를 전통적으로 기대되는 행동양식이나 관습에 가두어두려 하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유형이라고 한다. 이십 대의 나는 그랬던 것 같다. 즉흥적이고 알록달록하게 살고 싶었다. 나를 탐색하고, 탐색하는 과정에서 확고한 나의 취향을 발견하고, 어느 방향으로 전개되든 나만의 길을 계속 만들어 나가는 그 자체에 집중하며 살고자 했다. 그리고 내가 그리는 삶의 모습을 완성한 이들을 극도로 질투하며 동경했다.
INFJ가 된 삼십 대의 나는 더 이상 나의 삶이 알록달록 해지길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총천연색의 삶이 되어 피곤해질까 봐 경계하는 사람이 되었다. 점차 소진되어 가는 나의 에너지를 인생을 색칠하는 것보다는 좀 더 큰 무언가에 쓰고 싶어졌다. 강인한 코어 근육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잘 사는 것보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미래를 꿈꿀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졌다.
이십 대의 나는 '지금 내 모습과 가장 가까운 것'보다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 가까운 기질을 선택했던 것 같다. 이 땅에 온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족적을 남기고 싶었고, 사람들의 입에 계속 오르내리고 싶었다. 그런 인정에 대한 욕망이 예술인들을 동경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여전히 나는 예술인을 동경한다. 평생 글을 쓰고 그 글로 돈도 벌면서 살고 싶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고 나의 취향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더 이상 일 순위가 아니라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내 삶의 색깔이 어떤 색일지보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가 중요해졌고 이 변화가 너무나 감사하다. 지금의 단호한 마음가짐이 내 인생의 또다른 변곡점을 맞이하는 그 순간, 망설임 없이 결단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길 바란다.
썩어 문드러진 나를 남이 볼까 무서울 때가 있었다. 누구나 엉망인 부분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자꾸만 ‘나보다 엉망인 사람은 없을 거야’라는 패배감이 나를 잠식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썩은 모습도 사랑해주기로 했다. 고약하고 들춰내고 싶지 않은 구석조차 나의 일부분이니. 16가지 유형 중 1%도 되지 않는다는 인프제(INFJ)의 나.
1%의 나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니 말이다.
MBTI 유형 참고: https://www.16personaliti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