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연말 격리생활 - 2

확진자 2명과 감금되다

by 일상채색가 다림

2021. 12. 23. 목요일 - 터져나가는 냉장고


증상 발현부터 코로나 검사 시행, 확진 판정과 함께 시작된 정신없는 격리 생활을 수요일인 22일을 기점으로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남편과 아이가 안방, 안방 화장실과 거실에서, 나는 아이 방과 거실 화장실을 나눠서 사용하며 식사를 준비하거나 샤워하는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면 철저히 격리 생활을 유지 중이다.


온종일 좁은 방에 갇혀서 마스크를 쓴 채 생활하니 자주 답답함을 느껴 평소에 잘하지 않던 환기도 열심히 하게 된다. 한번 방을 나갈 때마다 온몸에 소독약을 뿌리고 손소독제로 손을 소독하다 보니 안 그래도 건조한 겨울에 온 몸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을 느낀다.


남편과 아이의 몸 상태도 끊임없이 체크한다. 다행히 남편은 더 이상의 발열 증상 없이 가벼운 기침과 코막힘만 느끼고 있다. 아이도 아직 열이 오르락내리락하고는 있지만 38도 전후의 가벼운 열이고 해열제를 먹이면 이내 정상 체온을 회복하는 정도(23일 점심 이후로 해열제 복용을 멈췄음에도 37도~37.5도 유지 중)다. 발열 외에 다른 증상 역시 시작되는 것이 없어 이대로 끝나 주길 바라고 있다.


구호물품으로 차린 밥상


어젯밤 보건소에서 보내준 구호물품도 도착했다. 엄청나게 큰 박스 두 개가 현관문 앞에 있어 나도 남편도 적잖이 당황했다. 이미 온라인 배송을 통해 식자재를 꽤 많이 구비했고, 지인들의 선물들도 쏟아져서 먹을 것이 충분했는데 나라에서 보낸 구호물품까지...! 햇반, 3분 즉석 음식, 통조림 음식, 김, 돼지고기, 상추, 과일 등등. 정말 다양한 음식이 푸짐하게 들어있었다. 빈틈없이 채워진 부엌 펜트리와 냉장고를 보며 마음이 푸근해짐을 느낀다.



나의 자가격리 통지서


이날 저녁, 문자 메시지로 나의 자가격리 통지서도 도착했다. 증상이 없고, 코로나 검사 음성이 확인되면 나는 27일 정오를 기점으로 격리가 해제되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물론 남편과 아이가 연말까지 격리라 그다지 소용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가 키트로 한번 더 검사를 했고 음성이 나왔다. 27일 전에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한번 더 가야 한다고 하길래, 언제 가면 되는 것이냐 물으니 보건소에서 연락을 주면 그때 받으러 가면 된다고 한다. 이번 주말에 보건소를 한번 더 가게 될 것 같다.




2021. 12. 24. 금요일 - 꽤나 괜찮은 방구석 격리


방구석 격리 4일 차. 온종일 아픈 몸으로 아이를 돌봐야 하는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방구석 격리 생활의 시계는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간다. 마침 이번 주말까지 글쓰기 수업 파이널 에세이를 제출해야 했고, 긴 시간 집중해서 내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3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조용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는데, 이번 격리 생활이 그것을 가능케 해주었다. 덕분에 오늘 오전 파이널 에세이를 제출하고 홀가분하게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1년을 기다린 Emily in Pairs Season 2



지난 22일, 1년을 기다린 'Emily in Paris Season 2'가 release 되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정주행 한 미드였고, 내용이 매력적인 것은 아니지만 파리의 풍경을 보는 것 만으로 나에게 충분한 위안을 주는 드라마였다.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에 찾아온 시즌2를 여유롭게 정주행 하며 '생각보다 방구석 격리 좋은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조용히 방해받지 않고 드라마를 봐서 좋은 것과는 별개로 시즌2 내용 전개는 영 별로였다. 볼수록 정이 안 가는 여성 캐릭터 설정...)


아이의 옷과 침대뿐인 방에서 격리하는 나에게 넷플릭스, 티빙과 같은 OTT 플랫폼 및 Youtube의 존재는 실로 대단했다. 평소 보고 싶었지만 집중을 할 수 없어 포기했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영화를 섭렵하고, 다양한 국가에 살고 있는 한국인 유투버들이 올려주는 크리스마스 브이로그 영상, 그리고 ‘걸어서 세계 속으로’ 정주행까지. 격리가 아니었어도 터져 나오는 확진자 물결 속에 딱히 갈 곳도, 할 것도 없었던 2021년의 크리스마스가 온라인 콘텐츠와 함께 나름의 낭만으로 다가온다.





2021. 12. 25. 토요일 - 그럼에도, Merry Christmas


2021년의 크리스마스 아침이 밝았다. 크리스마스 당일부터 기온이 많이 떨어질 거라는 예보 + 확진자 폭발로 별다른 계획이 없었던 크리스마스이긴 했다. 이렇게 제대로 방콕을 하며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KakaoTalk_20211225_111538818_02.jpg 요즘 나의 베프 3종 세트


다행히 남편도, 아이도 경미했던 증상마저 사라져 가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의 발열 증상이 계속 잡히지 않아서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23일 점심 이후로 해열제를 끊었음에도 정상체온을 유지하고 있고, 새로운 증상도 발현되는 것이 없는 상태. 이렇게 잘 넘어가 주는 것 같아 아이에게 너무 고맙다. 엄마가 온종일 방 안에서 혼자 있는 것을 아직 이해를 잘 못하는 나이인데, 생각보다 나를 많이 찾거나 보채지 않아서 그 또한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 어쩌다 보니 화요일부터 24시간 풀타임 육아 중인 남편도 애틋하고 고맙다.


거실에 나가 남편과 아이를 잠깐 보고 오면 소독제를 온몸에 뿌리고 소독 젤로 손을 닦고, 수시로 세정 티슈로 방 이곳저곳과 문고리를 닦고... 그러고 있다 보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싶은 생각이 들지만, 다음 주까지만 고생하면 끝이 보일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어제 보건소에서 연락이 와서 26일 혹은 27일에 코로나 검사를 하라고 연락이 왔고, 그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면 나는 27일 낮 12시로 격리 해제가 된다. 격리 해제 후에는 예전과 같은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일주일 후에 한번 더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KakaoTalk_20211225_111538818_01.jpg 이렇게 온라인으로 성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도 감사



이렇게 자가 격리를 하면서도 실시간으로 성탄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코로나 시국이 시작된 이후 우리 가족은 모든 예배를 비대면으로 드리고 있다. 처음 비대면 예배로 전환이 되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기약 없이 길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못해서, 오히려 편하기도 했다. 자고로 일요일은 토요일까지 불사르고 들어와서 늦잠도 늘어지게 자고, 뒹굴거리며 월요일을 대비하는 비장한 날이 아닌가. 그럼에도 꾸역꾸역 이른 오전부터 예배 시간에 맞춰 준비하고 집을 나서는 것이 매번 즐겁진 않았다. 뒹굴거리고 싶은 만큼 실컷 뒹굴대다 버튼 몇 번 눌러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비대면 예배가 나름 반가웠다.


비대면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지 만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코로나 시국 이전의 교회 생활이 마치 이전 생의 일처럼 아득하다. 주일 예배 전 교회 식당에서 먹던 따뜻한 밥, 예배 후 나눠 마시던 커피 한 잔, 함께 모여 삶을 나누고 같이 웃고 울어주던 다락방 식구들, 그리고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봐 주시고 기도해 주시는 주일 학교 선생님들. 모든 것이 내가 누렸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다. 내년 우리 가족의 성탄예배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보다는 자유롭고 함께 하는 이들이 많은 예배이길 바라본다.


한 죄인에게 사랑이 임했고, 너를 통해 그 사랑을 배워나갔다.
- 2021. 12. 25. 분당우리교회 성탄예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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