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연말 격리생활 - 3

확진자 2명과 감금되다

by 일상채색가 다림

2021. 12. 26. 일요일 - 영하 15도에서 줄 서기란


24일 오후에 왔던 문자


24일 늦은 오후에 격리 해제 전 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이 왔다.


지난 20일에 검사를 받으러 갔던 보건소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거주지 관할 보건소가 아니었던 터라 이번 해제 전 검사도 아무 보건소나 가면 되는지 관할 보건소여야 하는지 궁금했다. 해당 번호로 이 내용을 문의했지만 <다른 보건소에 물어보고 가세요.>라는 애매한 답장을 받았다. 물어보고 가라니까 타 보건소에 전화로 문의했는데 나처럼 격리 해제 전 검사의 경우 거주지 관할 보건소로 무조건 가야 한다고 한다. '무조건'이라면 왜 나의 관할 보건소에서는 타 지역 보건소에 가도 되는 것 마냥 '다른 보건소에 물어보라'는 답을 준 걸까.


우리 집 위치가 수원시와 용인시 경계선에 있다 보니 관할 보건소를 가는 것이 번거로운 위치라서 물어본 건데.. 여하튼! 두 번 걸음 하고 싶지 않아 관할 보건소로 갔다. 주말에는 이르게 검사 마감이 된다고 해서 아침 8시에 후다닥 출발했다. 거의 일주일 만에 현관문을 나선다. 밖을 나서자마자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바로 차에 타서 그런지 밖으로 나왔다는 느낌도 없다. 영하 15도라더니 춥기는 오지게 추운 모양이다.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 손과 발을 데우며 보건소로 향했다.


30분 전에 도착했지만 이미 줄이...


8시 30분, 이미 줄이 꽤 길었다. 순서대로 번호표를 받고, 번호에 적힌 시간에 맞춰 검사 장소로 오라고 했다. 나는 400번 중 54번이었고, 9시 30분부터 검사 시작이었다. 번호표를 받느라 25분 정도 밖에서 기다렸더니, 발가락이 잘려나갈 것 같았다. 보건소 직원이 핫팩을 나눠줬지만 그걸로는 택도 없는 영하 15도.


번호표를 받고 주차해둔 차로 가서 30분 동안 몸을 녹이고 검사를 위해 줄을 섰다. 검사를 받기까지 다시 20분 가까이 기다려야 했는데, 너무 추워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 와중에 백일이나 지났을까 싶은 어린아이를 아기띠로 안은 여성이 지나간다. 다행히 24개월 미만의 아이를 동반한 경우 기다리지 않고 바로 검사 진행을 해주고 있었다. 무슨 사연인지, 엄마뿐만 아니라 아이도 검사를 받는 모양이다. 검체를 채취하는 가건물 밖으로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지난주, 나를 따라 영문도 모르고 보건소로 끌려와, 코로나 검사를 당하고 엉엉 울던 내 아이가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내 차례가 되어 검체 채취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지금껏 검사를 받았던 진료소는 모두 코만 찔렀는데, 여기는 코와 목을 한 번씩 찌르는 방식이었다. 마스크를 다 내려달라는 말에 목을 찔려본 적이 없는 내가 어버버하고 있으니, 담당 의료진이 나에게 대뜸 짜증을 낸다.


"(한숨 쉬며)... 마스크 내리고 입 벌리시라고요~!!"


당황스럽다. 그녀와 나 사이에 겹겹이 쳐진 방화벽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을 뿐인데. 이게 이렇게 나에게 화를 낼 일인가. 그녀는 신경질적인 제스처로 면봉 비닐을 벗겨낸 후 내 코와 목을 거칠게 쑤신 뒤 면봉을 검체 채취 통에 쑤셔 넣고 이제 나가라는 듯 손을 휘휘 젓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짜증으로 가득 찬 그녀의 말과 행동에 나는 대역죄인이라도 된 것 마냥 잔뜩 몸을 움츠린 채 검사소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날이 잔뜩 선 그녀의 목소리와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만 2년 간 코로나19라는 신종 역병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2021. 12. 27. 월요일 - 드디어 (나는) 격리 해제!


오전 일찍 검사를 하면, 당일 저녁에도 검사 결과가 나오긴 한다는데 일요일이라 결과가 그렇게 금방 나올 것 같진 않았다. 증상도 전혀 없고, 열도 나지 않았지만 무증상 확진도 있기에 안심할 수 없었다.


드디어 격리 해제!


무려 확진자 두 명과 한집에서 사는데 음성이 나온 것이 더 신기하긴 하다만 어쨌든 음성. 무사히 27일 정오를 기점으로 격리 해제 통보를 받았다.


처음 격리에 들어갈 때, 27일 정오 이후로는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답을 받긴 했지만 확진자와 한 집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마음껏 외출을 해도 되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집에서 마스크를 쓰고 격리생활을 해야 하는지 궁금해서 자가격리 담당 공무원과 통화를 했다. 하지만 그녀도 명확한 답을 주지 못했고, 나에게 다른 부서 전화번호를 알려줬지만 불통...


수십 번의 통화 연결 시도 끝에 전화 연결에 성공했다. 전화를 넘겨받는 공무원마다 우리 집 상황을 앵무새처럼 반복 설명한 끝에, '외출하셔도 되는데, 어지간하면 하지 마세요' 정도의 답을 받았다. 더 명확하게 해석해보자면, '장 보러 집 앞 슈퍼 정도는 가도 되지만, 친구 만나러 카페 가서 커피 마시는 외출은 하지 마세요!' 정도 일 것이다. 어차피 만날 사람도, 갈 곳도 없는 데다 조금만 더 참으면 남편과 아이도 격리 해제가 될 테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1월 2일에 또 코를 찌르러 가야 한다는 슬픈 소식........




2021. 12. 30. 목요일 - 드디어 자유


격리 해제 통보서


격리 해제가 되는 10일째 아침, 아침부터 남편은 잔뜩 신이 났다. 신생아 시기를 제외하면 이렇게 오랜 기간밖에 안 나가고 머무른 적이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오전 10시 반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화가 걸려왔다. 보건소였다.


오늘 낮 12시로 두 분 모두 (격리) 해제됩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의 2021년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오랜만에 대청소를 했다. 격리기간 동안 사실 상 손을 놓고 있었던 집안 곳곳의 묵은 때를 벗겨내기도 해야 했고 어차피 자택 소독도 해야 했다. 원할 경우 보건소에서 방역업체를 연결해주겠다고 했으나, 우리는 자체적으로 소독하는 것을 선택했다. 격리 중에 남편과 아이가 쓰던 침구류를 모두 꺼내서 빨고 말리고, 소독제로 집안 곳곳을 닦아내고 뿌리고 환기를 시켰다. (이것도 진짜 일이다..ㅠㅠ)


대청소를 하며 10일 간 집안에서도 항시 착용하고 있었던 KF-94 마스크를 벗는다.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마스크를 집어넣어버린다. 마스크를 쓰고 요리와 청소를 하고, 아이와 놀아주고, 샤워를 한 후 얼굴에 로션을 바르는 대신 먼저 마스크를 써야 했던 자가격리의 생활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분노가 먼저였다. 도대체 왜, 하필 남편 회사의 그 사람은 어디서 뭘 하고 다녔길래 코로나에 걸려와서는 이걸 내 남편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퍼트리는 건가 하는 생각에 깊은 분노가 터져 나왔다. 분노 다음은 두려움이었다. 본격적으로 남편과 아이에게 감염 증상이 보이던 초반 3-4일이 제일 무서웠다. 기저질환이 있거나 고령의 환자가 아닌 경우 잘 먹고 쉬면 금방 낫는다는 안내문을 아무리 읽어도 '혹시나'라는 생각에 두려웠다. 휴대용 기기로 산소포화도와 맥박수를 측정하고, 체온을 잴 때마다 노심초사했다. 내가 만났던 누군가에게 병을 옮기진 않았을까, 나도 옮아서 격리 기간이 더 늘어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두려웠다. 다음은 불편함이 찾아왔다. 내가 자발적으로 집콕을 하는 것과 격리되어 강제로 나가지 못하고 방에 갇혀 있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불편함까지 겪고 나니 체념이 찾아오고, 체념 뒤에는 정신승리가 따라왔다. 지난 몇 달간, 남편은 바쁜 회사일로 힘들어했다. 나 또한 바쁜 남편의 육아와 가사 참여도가 낮아짐에 따라 온종일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 버거워졌다. 비록 격리로 인한 것이기는 해도 우리 가족은 얼떨결에 2주 간 연말 휴가를 얻은 셈이었고, 말 그래도 '세 가족이 똘똘 뭉쳐'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했다. 나쁘지 않은 휴가였다.


정신승리를 하니 감사한 것도 보였다. 아이는 발열, 남편은 가벼운 감기 증상만 앓고 중증으로 퍼지지 않은 것이 가장 감사했다. 자택 치료를 하면서 가장 무서웠던 부분이 손 써볼 새도 없이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는 것이었다. 병실에 있으면 당장 의사라도 호출해서 부를 수 있고, 산소호흡기라도 씌울 수 있을 텐데 그런 것조차 안돼서 큰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무서웠다. 다행히 그것은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난 일이 되었다.


본의 아니게 남편과 아이만 확진이 되면서 나만의 휴식 시간을 원 없이 가진 것도 또 다른 감사였다. 화장실을 가거나 식사 준비를 할 때 외에는 온종일 방에서 격리를 해야 했고, 그 시간에 나는 아이를 낳은 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제대로 된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집중이 안돼서 잘 보지 못한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쉴 때 봐야지' 해놓고 계속 보지 못한 채 쌓여있던 책과 유튜브 영상도 실컷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두 달간 진행된 글쓰기 수업의 파이널 에세이 작성기간과 격리 기간이 겹친 덕분에 어느 누구의 방해 없이 온전히 집중해서 에세이를 쓸 수 있었다. 엄마가 된 이상, 글에만 집중해서 내가 쓰고 싶은 만큼 쓰다 쉬었다하는 것을 반복하는 시간이 또 언제가 올는지 모르겠다. (아이는 항상 내가 좀 더 집중해서 달리고 싶을 때 나에게 와서 치댄다.)




2022. 01. 01. 토요일 - 너는 열광적으로 열렬히 멍청한 짓을 하게 될 거야



2021년의 마지막 날, 올 한 해를 정리해보며 내년을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한다. 2022년에 해내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고, 가능성은 낮아도 해보고 싶은 일도 떠올려본다. 2022년 12월이 되었을 때 내 모습을 상상해보고, 내 표정과 기분이 어떤지도 상상한다. 그리고 그것을 글쓰기 모임 동기들과 이야기 나눌 생각에 행복해진다.


아직 디테일하게 적어보진 않았지만, 나의 2022년은 멍청한 짓을 많이 해보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여기서 멍청한 짓이란, 내가 하면서 즐거운 일을 말한다. 남이 보기엔 멍청해 보일 수도 있고, 허황되고 무모해 보일 수 있는 일들. 남이 뭐라고 하든, 어떻게 쳐다보든 내가 즐거우면 그냥 하는 것. 그냥 열광적으로, 아주 열렬하게. 오랜만에 다가올 새로운 한 해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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