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딸, 아니 에르노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 소개
2022년 10월,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기사를 봤을 때,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수상자는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아니 에르노였다.
아니 에르노는 1940년 릴본에서 태어났다. 1974년 '빈 옷장'으로 등단해 '남자의 자리'로 르노도상을 수상했고 자전적 글쓰기와 역사, 사회를 향한 그녀만의 시선을 가공 없이 정확하게 담아내는 매운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다.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고, 소설, 미발표된 일기 등을 수록한 '삶을 쓰다'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된 최초의 생존 작가이기도 하다.
다른 딸 간략 소개
'다른 딸'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편지를 써달라는 출판사의 제안으로부터 출발한 책이다.
책 말미 추천사에 따르면 '할 말을 모두 다 했지만 과거를 넘어설 수 없다면, 마지막 출구는 편지를 쓰는 것이다'라는 출판사의 기획 의도에 따라 완성된 편지라고 한다.
그리고 아니 에르노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나'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아니었던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과연 그 존재는 누구일까.
아이들은 믿음으로 인해 저주를 받는다
이 책은 이토록 서늘한 문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 손으로 잡히는 얇은 두께의 책이지만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90페이지까지 단 한 페이지도 쉽게 넘어갈 수 없을 만큼 대단한 밀도를 자랑한다.
'다른 딸'은 작은 수첩에 붙어 있는 타원형의 사진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그 사진의 주인공이 아니 에르노가 아닌 그녀의 언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언니의 존재를 부정한다.
아니 에르노는 언니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녀가 태어나기 전, 디프테리아로 사망해 가족의 비밀 속에 언니는 숨어 있었다.
그가 10살이 되던 해, 우연히 골목길에서 어머니가 어느 젊은 여자에게 '당신'의 존재를 밝히는 것을 듣게 된다. 나에게 있었다고 생각하지 못한 언니의 존재를 알게 된 10살 여자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내가 부모에게 사랑이라 받았던 것이 모두 가짜였다는 느낌. 어머니는 자신의 어린 딸이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앞에서 죽은 언니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그 시절에는 흔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이의 귀와 입은 중요치 않다고 여기던 시절이었으니까. 나의 어린 시절에도 어린아이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던 어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뱉은 이야기는 큰 공포가 되어 꿈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잠들기 전 어두운 방에서 괴물의 형체로 나타나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평평한 이미지로만 남아있던 언니의 존재에 대해 아니 에르노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에게 언니는 늘 죽어있는 사람이었다. 분명 이 세계에 없는 존재인데, 묘한 존재감으로 그녀의 부모와 그녀 사이에 존재하는 무언가였다.
아니 에르노는 이 편지의 수신인이 언니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이 편지는 자신의 내면에게 보내는 것이라 선언한다.
비어있는, 무언가 고장 난 듯한 자신의 내면을 글로 이야기하며 오롯이 자신으로 살아내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가 느껴진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단어의 문제가 있습니다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는 시대와 국적을 막론하고 참 오묘하다. 작가 역시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가끔은 너무 미웠고 심지어 그녀가 죽기를 바라며 장롱 거울 앞에서 주먹을 치켜들기도 했다고 밝힌다.
아주 격한 표현이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그녀의 문장들. 근데.. 이런 느낌. 나만 뭔지 알겠는 건 아니겠지? 가족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가끔 (사실 자주) 숨통을 조여오는 것 같은 시간들.
첫 딸을 어린 나이에 읽고, 둘째 딸이 아플 때마다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을까. 젊은 엄마가 느꼈을 공포의 크기가 얼마나 무시무시했을까.
그리고 엄마의 두려움은 딸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을 것이다. 아주 예민하고 건강과 안전에 대한 큰 불안증을 가지고 있는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이 느낌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엄마가 느끼는 불안을 귀신같이 감지한다.
가족을 이해하기 위한 몸부림
'다른 딸'은 내가 처음으로 읽은 아니 에르노의 작품이기도 하다.
처음엔 경험하지 않은 일은 쓰지 않는 자전적 문학의 대가이자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그녀의 문장들에 좀 놀라며 읽었다. 여러 번 다시 읽으니 거침없는 그녀의 문장 속에서 일종의 애잔함이 느껴졌다.
작가가 이 경험을 글로 풀어내며 가족을 이해하고 '그들로부터 멀리 달아난 다른 딸은 바로 작가 자신'임을 깨닫는 과정은 슬프지만 아름답게 느껴졌다. 작가는 책 후반부에서 이렇게 털어놓는다. 당신의 죽음이 내게 준 삶을, 이번에는 내 차례가 되어 당신에게 돌려주며 가상의 빚을 털어내길 원했다고.
치열한 그녀의 문장
아니 에르노의 문장은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모든 페이지가 치열하다. 그 치열한 에너지를 통해 작가는 어둠 속 미지의 존재, 언니의 형체를 글쓰기를 통해 채워나간다.
'당신'이 아니라 '나'에게로 돌아와야 하는 말. 그렇게 온전히 '나'로 살아가고자 애쓰는 그녀의 문장들을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