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떠나는가

‘여행의 이유 - 김영하’

by 일상채색가 다림

나는 여행자 타입은 아닌 것 같다.


​예전에는 내가 굉장한 여행자 타입이라 믿었는데, 단순한 노화의 산물인지 아니면 내가 원래 나를 잘 몰랐던 건지는 모르겠다. (난 아직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난 내가 아는 것보다 익숙한 것을 훨씬 좋아하고 더 이상은 바스락거리는 호텔의 침구류가 그립지 않으며, 때로는 여행 계획을 짜는 것조차 귀찮을 때가 있다. 몰랐던 부분이다. 익숙한 것, 평범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누구보다 익숙한 장소와 평범한 상황에 안도하는 내 모습이라니.


​하지만 코로나 시국 속 2년 가까운 시간을 타의로 발이 묶이니, 나 역시 여행에 대한 갈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생경한 외국어가 잔뜩 그려진 골목길에서 두리번거리며 길을 찾아보고 싶기도 하고, 낯선 지역에서 느껴지는 생전 처음 맡아보는 그곳만의 냄새가 그립기도 하다.


그런 시점에 다시 읽은 이 책은 20대 초중반 이곳저곳을 여러 가지 이유로 떠돌아다니던 시절이 떠올랐다. 어리고 세상을 잘 몰라서 그렇게 다녔다 싶을 만큼 무모하기도 했고(용감했다고 해야 하나) 지금 같았으면 모든 것을 접고 귀국했어도 모자랄 좌절 속에서도 나름 꿋꿋하게 잘 버티기도 했다. 그 시절의 내가 모여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니 잘 버텼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난 또 다른 방식의 삶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아직 추상적인 머릿속의 아이디어에 불과하고,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조건들이 너무 많지만 그럼에도 ‘이쯤 되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정도의 계획에도 행복해진다.


그렇다. 난 여행자보단 계획자였다.


여행 자체가 주는 희열도 좋지만, 여행 계획을 짜고 계획대로 즐겁게 놀다 오자며 파이팅을 다지는 공항에서의 시간이 더 좋았다. 계획을 짜고 싶어서 여행을 간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나는 계획을 좋아했던 것이다. 자유의 상징 같은 여행이라는 것을 계획을 세우기 위해 떠난다니. 앞뒤가 안 맞지만 그게 나라는 인간이다.


지금 내가 꿈꾸는 삶의 여정이 언제 시작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 다짐한 것은 있다. 예전처럼 여행에 있어 10가지 조건 중 10가지 모두 충족되어야 떠나려고 했던 습관을 버리고, 그중 3-4가지만 충족돼도 우선 떠나보자고. 나머진 떠나서 수습해도 절대 큰일이 나지 않는다고. 잔뜩 경직된 긴장감을 좀 버리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또 다른 삶의 여행을 계획해보는 요즘,

여행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듯 스윽 다가왔던 책.


​그리고 읽는 것만으로도 여행에 대한 갈증이 아주 조금은 해소되는 듯해서, 감사한 책.


​모두가 다시 마음 편하게

인천공항을 갈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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