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독서, 정아은
엄마와 독서라는 단어가 만나면
책 제목에 '엄마'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책을 읽지 않아도 내용이 어느 정도 유추가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엄마와 독서가 함께 들어가면 더 그렇다.
이 책은 좀 다르다. 책을 통해서 아이를 영재로 만들 수 있다던가, 엄마가 영재가 된다던가(!) 식의 내용이 아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12년 차의 작가와 나는 비슷한 점이 있다. 결혼과 육아의 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책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정아은 작가는 육아서뿐만 아니라 심리, 철학, 역사,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자신이 처한 엄마라는 자리, 더 나아가 여성이라는 자리를 들여다본다. 육아서를 탐독하면 할수록 문제가 해결된다기보단 더 갈증을 느꼈던 지난 4년의 내 모습과 많이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책이라는 동아줄을 붙잡고" 애써온 작가의 지난 이야기를 담은 책이 <엄마의 독서>다.
인상 깊은 구절 모음
이 책은 총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사회, 결혼, 엄마, 아빠 등의 키워드를 고찰하며 작가가 읽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모아보았다.
결혼은 내가 선택한 타인의 원 가족에게 귀속되는 것이었고, 나의 원 가족에게서 다른 원 가족에게로 보내지는 것이었다. 결혼이라는 통과의례 - 엄마의 독서
작가는 결혼 후 마주한 여러 부조리 앞에서 분노했다고 밝힌다. 그 분노는 주로 주변 사람들(이를테면 남편 혹은 시어머니 같은)을 향했다. 하지만 <아갈리아의 딸들>, <여성의 신비>, <글로리아 스타이넘>같은 책을 접하며 작가는 결혼 후 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고충들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의 문제임을 깨닫는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과 아주 유사했기 때문.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수동성이 주는 안락함이 내게도 있다. 작가의 말대로 나는 '기대는 성별이 아닌 자립하는 성별이 되기 위해 투철히 노력했는지' 자문해 본다. 결국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동시대의 남녀 모두, 결혼한 남녀 모두 지구 곳곳에서 겪고 있는 시대적인 문제'다.
3장부터 이어지는 엄마의 자리에 대한 작가의 사유는 구구절절 공감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포스트잇과 밑줄 범벅을 하며 읽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육성으로 "맞아! 이거였어! 이거라고!"를 외쳤던 부분만 발췌해 보았다.
올봄 언니공동체 웹진 <와이낫>에 기고한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육아서 중독자였다. 처음엔 작가처럼 나도 마치 이단 종교에 빠진 신도 마냥 내가 꽂힌 몇 가지 육아서(엄마의 독서에서도 언급되는 책들이다)에 나온 것을 신봉하며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육아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육아는 절대 책에서 나온 대로 되지 않는다. 분명 같은 인풋을 넣은 것 같은데 아웃풋은 늘 내 예상을 빗나가고, 계획 집착형 인간인 나는 엉망진창 아웃풋이 나올 때마다 분노와 부끄러움, 죄책감과 때로는 공포심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서 100%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만 세 돌이 다가올 무렵까지 나는 행복한 엄마가 아닌 것에 아주 큰 자괴감을 느꼈다. 끊어진 경력으로 남편에게 의존하며 살면서 어떻게든 '엄마'라는 자리로 정체성을 확립해 보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나는 불행함만 느껴졌다.
남편이 집에 오면 마치 역병에 옮아서 당장 죽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어떻게든 남편과 아이에게 떨어져서 혼자 시간을 가지려고 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또다시 육아서를 미친 듯이 읽었다. 그런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나를 지배하는 불행함에 삼켜질 것 같았다. 작가가 술을 찾은 것처럼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엄마가 주는 무게를 어떻게든 떨쳐내고 행복한 엄마로 서보려고 했던 것 같다.
작가의 말처럼 나는 육아서를 내려놓고 난 후에야 아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물론 육아로 인한 극심한 우울증에서 벗어나고자 내가 한 노력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육아서 읽기를 중단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대신 소설, 에세이, 철학서, 인문학서 등 육아와 동떨어진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을 채웠다. 아무리 읽고 읽어도 채워지지 않던 것이 그제야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작가가 두 아이의 엄마, 특히 초등학교 입학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엄마들의 세계'를 경험하며 쓴 대목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작년까지 가정 보육을 하다 올해부터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나에게도 '엄마들의 세계'가 생겼다. 작가가 쓴 것처럼 나도 굉장히 편협한 사고 체계로 인간관계를 유지해왔다. 내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그 사람이 가진 다른 장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내 사람 리스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삭제되었다. 오히려 이것을 장점이라고 착각하며 살다가 만난 엄마들의 세계는 나에게 '관용'이라는 절대 없어선 안될 미덕을 가르쳐주었다.
물론 그럼에도 작가는 흔들린다. 그런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오히려 좋았다. 작가 말대로 인생이 뭐 있나. 순간순간 더 낫다고 느끼는 쪽으로 내 몸을 움직이면 된다.
정아은 작가는 '서로 호감을 가져 마땅한 관계가 비틀어지는 이유'로 '강제성'을 꼽았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강제성'이 발동되는 순간 여성들이 괴로워진다고.
몇 달 전에 함께 글쓰기 수업을 들었던 지인이 해준 이야기가 있다. 요즘 여성들에게는 총 세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고 한다.
먼저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일을 계속하는 쪽을 선택한 여성은 과로사를 하게 된다. (농담이 아니고 실제 전문직 워킹맘들이 뇌출혈로 쓰러지거나 사망한 케이스들이 기사화되었다) 그렇다면 일을 그만둔 여성들은? 맘충으로 전락한다. 마지막 선택지는 비혼 여성이다. 그들은 마땅히 져야 할 의무를 져버렸다며 '이기적인 년'이라는 소리를 듣게된다.
아이와의 관계를 흔드는 것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것은 슬프게도 또 엄마다. 사회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변화의 속도는 너무나 느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는 자라고 있다. '사회가 설정한 모성의 허상에 말려들지 않도록, 우리가 속한 체제가 자기가 원하는 것만 쪽쪽 빨아먹고 뱉기 전에' 나만의 길을 찾아야겠다.
엄마의 정신을 깨우는 책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종종 육아서 추천을 받곤 한다. 그럴때마다 나는 대답을 주저한다. 그렇다고 '엄마의 독서' 같은 책을 추천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3년의 세월 동안 비현실적으로 찬란한 육아서의 세계에서 헤엄치다 겨우 빠져나온 나 같은 사람에게는 추천할만하지만, 그 세계에 빠져보지 않았던 사람에겐 오히려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 책이기 때문.
그럼에도 나는 정아은 작가의 책을 엄마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깨어있지 않으면 내가 원치 않는 길로 호로록 빨려 들어가기 쉬운 세상에서 이렇게 엄마들의 정신을 깨워주는 책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쓰는 모든 엄마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