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한 곳으로, 정빛그림
작가 소개
정빛그림 작가보단 언니라는 호칭이 내게 더 익숙한 사람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활동 중인 언니공동체의 한 글쓰기 줌 모임에서다. 온라인으로 모인 여성들에게 그녀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혹시... 소설도 읽으시나요?"
알고보니 그녀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그리고 그림도 그렸다고 했다. 오랜 시간동안. 소설을 너무 좋아한다는 내게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의 첫 소설집이 얼마 전 출간되었다며 보내준 책이 바로 <빛의 시간>이었다.
<빛의 시간>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집 중 하나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오랜 팬인데, <빛의 시간>을 읽고 있으면 자꾸 바나나의 소설이 생각난다. 첫 만남 후로 우리는 오소희 작가님의 <나를 찾는 글쓰기 모임>까지 함께 하게 되었고, 그녀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녀의 글은 나에게 귀하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글을 계속 써야하나 고민하던 정빛그림 작가가 그림과 소설이 함께 실린 앤솔로지 형태의 소설집을 내고 싶다고 말했을 때, 진심으로 그녀의 행보를 응원했다.
그리고 얼마 전, 텀블벅 펀딩을 통해 선물처럼 그녀의 두 번째 소설집이 나에게 왔다.
<가장 행복한 곳으로> 구성
이 소설집은 위에서 말한것처럼 앤솔로지(시나 소설등을 하나의 작품집으로 모아 출판한 것)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아무도 모르는 일, 늑대를 그리다, 귀주의 작은 역사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 3편과 4명의 그림 작가가 보여주는 회화 작품이 함께 실려있다. 마지막 챕터에는 작가 에세이가 이어져 있어서 한층 더 깊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다.
덕력을 자극하는 소설가
내가 정빛그림 작가의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의 덕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은 단호한 시선이나 문장이 존재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신 여러 관점에서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작가의 다채롭지만 조금 모호한 시선이 존재한다.
나는 모호한 시선을 던지는 예술가들이 좋다.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겨주기 때문이다. (비슷한 의미로 '모호'필름을 운영하는 박찬욱 감독을 좋아한다) 전작인 <빛의 시간>에서도 그랬다. 낯설지 않은 배경 속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그 속에서 독자들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고 해석하게 만든다. 자꾸 씹고, 뜯고, 맛보고 싶게 하는 이야기로 나의 덕심을 자극한다.
인상 깊은 문장들
<아무도 모르는 일>은 언니공동체 웹진 와이낫 2022년 여름호를 통해 선공개 되었던 소설이다. 작가는 우연히 죽은 아기를 택배로 친정엄마에게 보낸 여자의 기사를 보고 이 소설을 처음 구상했다고 한다. 기사 밑 댓글로 무자비하게 쏟아지던 비난의 화살이 향하는 곳은 아기를 택배로 보낸 그 여성이었다. 댓글을 보며 일면식도 없는 한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했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보영과 수화샘의 관계로 이어진다.
'와이즈 교육'이라는 회사에서 만난 보영과 수화 샘. 늘 다이어트로 스트레스 받는 평범한 외모의 보영과 한 눈에 봐도 수려한 외모의 수화 샘. 그런 외모의 미혼 여성이 (결혼 예정도 없이) 임신한 상태로 회사에 나타났을 때 얼마나 많은 뒷 이야기와 시선이 쏟아졌을까. 수화 샘은 다행인지 뭔지 개의치 않는 듯 보인다.
고시원의 좁고 열악한 부엌에서 밀푀유나베 같은 '번잡스러운' 요리를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수화 샘의 모습을 떠올린다. 뭔가 웃음이 나면서도 동시에 한숨이 나온다. 그리고 그 맛을 상상하게 된다. 마치 내가 보영이 된 것처럼.
모두가 보영의 몸매에 대해 감 놓고 배 놓을 때 수화 샘은 유일하게 '너는 세상에 하나뿐인 귀한 존재'라는 말을 해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출산이 다가옴에도 고시원 생활을 청산하지도 않고, 아이 아빠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지 않으며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대는 수화 샘에게 보영은 짜증을 느낀다.
<늑대를 그리다> 속 성훈도 유정 때문에 짜증이 난다. 결혼 후 K시 이사오며 도예 공방을 정리하고 기르던 개를 다른 곳으로 보낸 유정은 개를 늑대라고 부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기른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선물 받은 의자가 집을 잠식시킨다고 하는 것도, 개를 늑대라고 부르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을 기른다고 하는 것도 성훈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나도 성훈처럼 유정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했다. 여러 번 다시 읽으니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 7년이나 운영한 공방과 기르던 개 마저 정리하고 남편을 따라 낯선 도시로 이주한 유정이 계속 눈 앞에 아른거려 마음이 아려왔다.
유정이 늑대고 늑대가 유정이었던 걸까. 내가 여기서 무얼 하는건지, 그 전에 내가 여기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몰랐던 유정이, 아니 늑대가 날카롭게 눈빛이 빛나던 그 순간.
'중요한 것을 빼앗기고도 자신이 무엇을 빼앗겼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무기력했던 늑대의 눈빛이 달라진 순간, 유정도 달라졌을 것이다.
<귀주의 작은 역사> 속 귀주의 눈빛도 늑대의 눈빛처럼 단단하고 빛났을 것이라 상상해본다. 노아의 사진을 들고 노아의 집을 찾아다녔을 귀주. 귀주는 거침없다. 노아의 부모 앞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우물에 빠져 죽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랜 시간 케이지에 갇혀 있던 새가 풀려난 것처럼' 이야기를 쏟아낸다.
이 소설의 구성은 조금 특이하다. 거침없이 이어지던 귀주의 작은 역사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 노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이스크림 가게 외벽을 칠하고 있던 노아에게 역사 선생이 다가와 '네 놈이 멋대로 역사를 지우고 있다'는 말을 하며 노아가 칠하던 벽에 커피를 쏟아붓는다.
역사 선생이 되고 싶었던 노아가 역사 선생의 커피 들이붓기 시전 이후로 페인트를 들고 더러운 벽을 지우고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에게도 일어난 무수한 사건 중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그럴 줄 몰랐는데, 아주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사건이었는데 나에게 지대한, 기분 나쁜 영향을 주는 무게감 있는 사건. 일순간 내가 쌓아온 역사를 지워버린 사건. 무엇이 있을까.
죄를 지었으니 책임을 져야한다는 편지를 남기고 떠난 노아의 자리에 나타난 낯선 소녀 귀주. 귀주를 마주하고 느꼈을 노아 어머니의 감정에 대한 대목을 읽을 때, 마치 이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했던 것처럼 내가 그 사건에 복종했던 어떤 기억을 떠올렸다.
제 3자가 봤을 때는 놀라울 사건임에도 당사자가 마치 '일종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어떤 사건. 주로 만남과 헤어짐에서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다. 한 사람이 내 옆을 떠나고 전혀 관계 없는 새로운 사람이 나에게 올 때. 떠난 사람이 마치 나의 미래를 위해 이 사람을 보내준 것 같은 느낌이 든 적 있다.
작가 에세이에서 정빛그림 작가가 쓴 것처럼 <귀주의 작은 역사>는 두 개의 이야기가 다소 헐겁게 얽혀있다. 헐거운 연결성은 독자들에게 당혹스러움을 주기도 할테지만 그와 동시에 여러 상상을 해볼 수 있게 만든다. 상상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귀주와 노아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오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의 작은 역사가 어떻게 연결될 지, 그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내 역사에는 어떤 영향을 줄 지. 그녀의 미래 작품에서 언젠가 다시 귀주와 노아의 작은 역사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어디든 그 곳에서 행복했으면
3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소설 속에서 만난 인물들이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그들이 행복한 곳으로 갔을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 나는 그게 바로 정빛그림 작가의 글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을지, 그곳에서 행복해졌을지 궁금해하며 책 속에 실린 그림을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본다. 어디가 되었든, 누구와 함께 있든 그들에게 '둥글고 밝고 복된 기운'이 가서 닿았기를 소망해본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도, 좋은 이야기를 쓰고 모아준 작가에게도 그 기운이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