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정아은
<엄마의 독서> 그 이후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은 얼마 전 리뷰했던 <엄마의 독서> 출간 2년 뒤인 2020년에 나온 책이다. <엄마의 독서>를 낸 뒤 엄마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준비하던 작가는 엄마들이 '예상과는 달리'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돈의 세계와 부모들이 겪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흥미로워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작가는 '주부'라 불리는 이들이 집에서 갖가지 노동을 하면서도 불시에 '넌 집에서 놀잖아'라는 말의 공격을 받는 이유에 대해 파헤치고자 했다. 아마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난 우리 와이프/남편 논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난 n년째 전업주부지만
그런 소리 들어본 적 없는데?
남들이 뭐라고 하던 뭔 상관이야?
내가 아니면 된 거지!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말'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한번 남의 입에서 나와 내 귀에 들어간 말은 어떤 방식으로든 내 몸과 마음에 남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궁금해할 필요가 있다. 왜 주부들에게 '집에서 논다'라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왜, 어떤 사회 문화적 배경이 그런 말을 하게 했는지.
이 책은 작가가 주부들이 겪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현실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시작한 여정을 총 4개의 장으로 나눠 보여주고 있다.
주부들이 사는 외딴섬
정아은 작가는 먼저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부들의 세계에 입성하며 겪은 고충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던 터라 매우 공감하며 읽었는데, 작가는 소위 '전업주부들의 세상'에 왜 반감이 들었지를 책에서 답을 찾아간다.
작가는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에서 언급되는 유한계급, 즉 남성들의 과시에 여성들이 주로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교회나 절 같은 종교 공간에서 한 명의 대표하는 남성이 의식을 행하고 수많은 여신도가 그를 돕는 광경 같은. 주부가 행하는 여러 종류의 노동은 자본이 점령한 우리 세상 속에서 여전히 동떨어진 섬으로 존재한다. 노동을 행하는 당사자들도 마땅한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했고, 노동을 받는 수혜자들은 당연하게 그 권리를 취했다.
작가는 레슬리 베네츠의 <여자에겐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대해 고찰하는 과정에서 '취업'이라는 화두를 꺼낸다. 작년 한 해 동안 나를 괴롭혔던 그 문제에 대해. 작가의 말대로 갓난쟁이 육아를 벗어나자 엄마가 아닌 원래 내가 있었던 자리는 찾고 싶은 욕망이 생겨났다. 하지만 사회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여성에게 여전히 차가운 태도를 유지한다.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 뒤에는 '00이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로 불리고 싶은 욕망, 내가 해낸 일에 대한 정당한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이 자리한다. 그렇다고 해서 일을 하는 직장맘이 욕구 충족이 되어 행복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작가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핵심은 돈에 있다
작가는 2장부터 본격적으로 돈에 대해 파고든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 시작되는 2장에서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굴러가게 만드는 핵심 인물이 '노동자'에 대해 살펴본다. 노동자는 자본주의가 돌아갈 수 있는 핵심 역할을 한다. 첫 번째는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상품으로 만들어 주는 역할이고, 두 번째는 그 상품을 돈을 주고 소비하는 소비자 역할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가 인류 발전의 결과가 아니라 의도적인 탐욕에서 비롯된 체제라고 비판하지만, 정작 작가는 자본론을 탐구하며 오히려 자본주의와 회사를 좋아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작가는 이 부분을 보충 설명하면서 제사 관습을 예로 든다. 남자 쪽 혈통을 기리고 모시고 받드는 '제사'라는 관습에서 그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은 늘 여성 노동자였다. 그런 여성 노동자에서 제사에 안 와도 된다고 허용 받는 가장 첫 번째 핑계는 '제가 출근을 해야 돼서요'라는 것.
돈의 복잡한 속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자본주의는 여성을 집에 머물게 하려는 속성도 가지고 있지만, 여성 인권 신장에도 기여한 점이 명확하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배려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행동'을 경제적 분석에서 철저히 밀려나있는 것. 그렇기 때문에 집에 있는 것은 논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라는 대목에서는 허탈함도 느껴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개인적으로 세 번째 장은 여러 번 다시 읽었다. 이 책의 핵심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누가 누구에게 의지하는가'라는 챕터는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다.
성별 분업, 남성은 출근해서 일을 하고 여성은 집에서 가사를 하며 육아를 맡는 것이 전근대 문화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자본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였다는 것. 내가 가사와 육아의 중심부에 속해 살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 대목에서 나는 잠시 책을 덮어야 했다.
큰 깨달음이었기에 소화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거였다. 주부로 살아온 지난 4년의 시간 동안 사회에서 내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느낌을 받아왔던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재생산자로 불리는 이들의 자리가 이 사회에서는 조명되지 않은 음지의 영역이었기 때문이었구나!
경계선 너머의 세상
마지막 장도 흥미로운 내용이 이어진다.
먼저 가사 노동에 임금이 지불되면 어떨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내가 진저리 치며 읽었던 법륜 스님의 <엄마 수업>에 대한 이야기, 비혼 여성과 기혼 여성의 연대 이야기와 주부는 이기적이라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사유까지.
그렇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에 큰 일조를 하는 것이 노동자인데, 그 노동자가 제대로 굴러가게 만드는 것은 바로 나, 그러니까 주부였다. 그러니 가족이라는 제도도 반드시 유지되어야 했다. 자본주의 체제를 곤고히 하려면 재생산자가 끊임없이 나와줘야 하는데, 가족만큼 재생산자를 양산할 수 있는 제도가 없으니 말이다.
국수집을 열어 노숙자들에게 밥을 먹이는 멋진 아저씨의 책에서 음식 만들기라는 행위가 남성과 여성에게 주는 다른 잣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사회가 여성을, 주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인 경우가 참 많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가족의 안위를 챙긴다고 '지 가족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아줌마'라는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국수집 아저씨처럼 남을 챙기고 다니면 '가족은 어쩌고 밖으로 나돈다'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주부다.
희한한 일이다. 가족을 챙겨도 이기적이고, 가족을 두고 바깥일을 해도 또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주부. 결국 이 모든 것은 주부라는 역할이(대부분의 여성들이 책임지는), 그 위치가 가진 무게감이 엄청나다는 것의 증거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 대신 새로운 형태이 공동체가 나타나고 있는 점은 반가운 변화다. 지금까지 온전히 재생산을 담당해 온 여성들이 지고 있는 무게를 사회가 나눠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생의 축제를 함께 하자
내가 이런 책을 붙들고 있으면 남편은 가끔 끌끌 혀를 찼다. 남자를 적으로 돌리는 책을 왜 자꾸 보냐는 것이었는데, 난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작가가 책에서 언급했듯이 여성은 남성과 삶을 함께 영위하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은 마땅히 남성이 여성과 함께 즐겨야 할 생의 축제에서 남성을 제거해왔다. 그리고 그것을 온전히 여성이 감당할 몫으로 돌렸다.
2020년 앤 해서웨이 배우가 세계 여성의 날에서 했던 연설이 생각난다.
지금 여기 있는 아빠들 중에
아이들이 성장하는 걸
충분히 보고 있는 아빠는 얼마나 되나요?
사회가 여성의 몫으로 돌렸던 수많은 생의 순간들. 남성들도 그것을 함께 해야 할 권리가 있다. 아버지를 힘들게 하고 어머니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사회가 아니라 '본연의 생명력을 함께 향유하며 생의 축제를 누리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사회에서는 곧 사라지게 될 '당신이 집에서 논다'라는 거짓말.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그리고 누군가가 당신에게 "넌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하게 먹고살잖아!"라고 말한다면, 이렇게 대답해 주자.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내가 먹고사는 게 아니다. 내가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고 아이들을 건사해 주고 때문에 남편이 마음 편히 나가서 일하고 올 수 있는 것이다. 당장 내가 없다고 가정해 보라. 아이들 보고 살림하느라 남편이 제시간에 출퇴근할 수 있겠나. 2주짜리 출장을 아무 때나 갈 수 있겠는가? '나'라는 비임금노동자가 있기 때문에 남편이 임금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관계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다. 다른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