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곽아람
작가 소개
곽아람 작가는 2003년부터 <조선일보> 기자로 일을 하고 있으며 2021년 조선일보 최초로 여성 출판팀장이 되었다.
2008년 <그림이 그녀에게>라는 책을 첫 출간했고, 첫 번째 책으로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이후에도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어릴 적 그 책>, <바람과 함께, 스칼렛>,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 등의 책을 썼다.
야망에 대해 쓰려고 했지만...
곽아람 작가는 처음 이 책을 자기 계발서로 의뢰받았다고 한다. 여자의 야망을 주제로 한 독서 에세이를 써보자는 제안을 받고 그녀는 한참을 고민한다. 작가는 자신을 '야망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야심 차 보이는 여자'라고 말했다. 욕심과 질투로 마음에 옹이가 지면 결국 상처받는 건 자신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에게 '외형적 성공'보다는 '바람직한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를 일러주는 책 속의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서 펼쳐진다. 이 책은 총 3부(나를 만나기 위한 책 읽기, 일과 사람 사이에서 읽기, 품위를 알려준 책 읽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행히 작가가 언급한 책과 등장인물이 대부분 나에게도 친숙해서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인상 깊었던 책 속의 그녀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반가웠던 여성들이 많았는데, 특히 <작은 아씨들>의 조가 그랬다. 이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셀 수도 없다. 수잔 서랜든과 위노나 라이더, 클레어 데인즈와 커스틴 더스크가 나왔던 95년 작 영화는 지금도 한 번씩 볼 정도로 애정 한다.
어린 시절 <작은 아씨들>의 조는 나의 분신과도 같았다. 실제 올콧이 자기 자매들을 모델로 쓴 소설이기에 조는 올콧의 분신이기도 하다. 조가 매일 밤 다락방에서 모든 것을 잊고 글쓰기에 몰입하는 순간을 읽을 때 나도 내가 속한 세계에서 잠시 빠져나와 조가 사는 플럼필드로 순간 이동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작은 아씨들>을 광적으로 읽던 십 대 시절, 나 역시 조처럼 습작 소설을 엄청나게 썼다. (그 노트들을 절대 버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책과 글쓰기. 그 순간만큼은 작가의 말처럼 '스스로를 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빨간머리 앤>을 번역한 신지식 선생님과 작가의 우정도 인상 깊었다.
물리적인 나이차가 많이 나는 사람들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녀와 신지식 선생님처럼. 마흔아홉의 나이차에도 둘은 친구였다. 국적이나 성별, 나이에 관계없이 앤이 말한 '동류'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다. 나 역시 여러 활동을 시작하며 동류의 사람을 만나는 것의 설렘을 경험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전혜린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발견했을 때 내적 환호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그녀, 전혜린.
처음 전혜린의 책을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그녀는 엄가가 가장 사랑하는 여성이었다. 곽아람 작가의 말처럼 '기질적으로 서글픔을 타고나는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재질의 사람을 귀신같이 알아본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나도 타고난 서글픔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지만, 고등학생의 감성으로 전혜린의 서글픔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감탄하고 문장을 필사하며 찬미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그녀가 사회와 덜 불화하고 살아남아주었다면, 중년과 노년의 그녀가 보여줬을 글의 찬란함이 어느 정도였을지에 대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약칭 'RBG'로 불리는 그녀. 그녀는 미국의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었다.
그녀가 남긴 이야기는 너무 많지만 아마 가장 유명한 것은 이상적인 여성 대법관 수가 몇 명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9명 중 9명"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덧붙이자면 1981년도까지 남자 대법관만 존재할 때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책에서 나온 대로 RBG는 '반대'의 아이콘이다. 그녀는 임금 차별, 부당한 대우, 이중 잣대, 임신중절 금지, 사회보험 등 다양한 문제에 맞서 반대의 목소리를 냈고, 젠더 평등과 여성 & 남성의 해방에 대해 주장했다.
어른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던 작가가 기자의 세계에 들어가 겪었을 사회생활의 맛이 얼마나 매웠을까 싶다. 그럼에도 작가는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밑바닥까지 추해지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품위를 잃지 않으며 있는 힘껏 싸운다.
모멸의 순간을 우아하게 방어하는 법
이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는 나도 이런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처럼 나 역시 내가 책 속에서 많은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한 번 정리해 보고 싶다. 그녀의 말대로 '그들은 과거의 나를 구축했고 현재의 나를 만들었으며 미래의 나를 일굴 것'이기 때문이다.
책이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책 속에서 만나는 여성들, 그리고 책을 쓴 작가들이 내 옆에서 살아 숨 쉬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들의 에너지는 오늘도 흔들리는 나를, 모멸감에 시달리는 나를 우아하게 잡아낸다. 오늘 다시 만나러 가야겠다. 나의 책장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우아한 그녀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