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by 일상채색가 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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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부커상 인터네셔널 후보작품

박상영 작가의 사랑 3부작 중 하나인 <대도시의 사랑법>은 2022년 부커상 인터네셔널 후보작품으로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더 유명해진 소설이다. 2019년 젊은 작가상 대상 수상자이기도 한 그는 한국 작가 중 최연소로 부커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얼마 전 사랑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믿음에 대하여>를 마지막으로 읽었고 어쩌다 보니 역순으로 리뷰를 쓰게 되었다.



<대도시의 사랑법> 구성

이 책은 4개의 연작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재희,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라는 제목으로 4개의 이야기가 한 명의 화자 '영'의 시점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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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애자로 기혼 여성으로 한 아이의 엄마까지 된 내가 퀴어 소설을 읽으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막상 읽다 보니 공감의 한계보다는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며 느꼈을 막막함과 불안함, 그 속에서 찾는 사랑의 모습에 내 감정이 요동쳤다. 화자인 '영'이 글을 쓰는 사람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투고하여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설정 때문일까.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는 내내 여러 얼굴이 '영'의 얼굴에 겹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대도시의 사랑법> 인상 깊은 장면

<대도시의 사랑법>은 먼저 주인공 영과 그의 이성 친구 재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정확히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는) 임신을 하게 된 재희는 영과 함께 임신 중절 수술을 하기 위해 한 병원을 찾아간다. 병원 의사는 재희의 도덕성을 비난하며 인신공격을 하고 별안간 재희는 '더럽게도 낡은 자궁 모형'을 홧김에 훔쳐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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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십 대, 이십 대 시절에 봐온 수많은 드라마 속 여성들이 생각났다.

이제 겨우 서른을 넘긴 나이에 퇴물 취급을 받던 노처녀들, 임신은 여성 혼자 할 수 없는 것임에도 혼전 임신을 하는 순간 걸레 취급을 받는 건 여성이었다. 연상연하 커플이 주인공인 드라마에서는 늘 여성의 나이가 연애의 큰 걸림돌이 된다.

재희와 영은 서로의 삶을 통해 여자로, 게이로 사는 건 '참 좆같다는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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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나면 이어지는 3개의 이야기를 통해 영의 사랑 이야기가 전개된다. 5년 전 뜨겁게 사랑했던 형의 이야기와 규호를 통해 나는 작가가 그리는 외로움으로 뒤범벅된 사랑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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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엄마에게 소개해 줄 뻔했던 형의 이야기를 읽으며 스물다섯의 나를 스쳐간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그 당시에는 사랑이라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돌아보면 사랑이 아니었던 인연들. 그들을 떠올리면, 아니 그들과 함께 했던 스물다섯의 나를 떠올리면 나도 한없이 외로워진다. 작가의 표현대로 스물다섯의 내가 감당하기엔 '습득해온 사회적 기술'로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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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외로운 사랑을 하던 이십 대 시절엔 사랑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가 된 후 도대체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매 순간 고민하게 된다. 생각하면 할수록 사랑을 아름다운 감정으로 보기는 어렵다. 작가의 말처럼 언제 변질되어버릴지 모르는 감정이자 오히려 한순간의 아름다움을 위해 많은 것을 형벌처럼 가져가야 하는 것이 사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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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형의 사랑 이야기를 가슴을 치며 읽었다면, 규호와의 이야기는 가슴을 부여잡고 읽게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 그래서 사랑은 힘들다. 그러거나 말거나, 포기할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



결국 부서지고 말 것, 사랑

규호와 영이 태국에서 풍등을 날렸지만 결국 그 풍등이 높이 떠오르지 못했을 때, 내 마음도 함께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영은 풍등에 쓸 문장을 여러 번 고치다 결국 두 글자만 남겼다. 바로 '규호'.


높이 떠오르지 못한 풍등을 보며 박상영 작가가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사랑법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나약하게 찢겨버리는, 높이 떠오르지 못하는 풍등이지만 그럼에도 그 풍등에 규호라는 두 글자만 기어이 써버리는 영의 모습처럼 우리의 삶에서 사랑은 없어서는 안 될 온기다. 작가의 말처럼 사랑이라는 감정만큼 '부서지기 쉬운' 것은 없지만, 그 온기가 없는 우리의 삶은 막막하기 그지없다.


작가가 그리는 사랑의 미친 불안함과 필요함이 좋다. 그가 앞으로 그려낼 또 다른 사랑법을 기다리게 된다. 사랑이 가진 잔혹한 양가적 감정을, 그 안에서 펼쳐질 우리 주변에서 숨 쉬는 그들의 삶을 계속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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