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가 허용되지 않는 고슴도치 이야기

고슴도치 엑스, 노인경

by 일상채색가 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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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향한 통제와 금기에 대한 책

<고슴도치 엑스>는 얼마 전 우연히 빌려온 책이다. 노인경 작가의 그림책이라 별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가 요즘 내 고민과 일맥상통하는 책이라 빌려왔다.


아이가 이제 5살이 되었다. 만 나이로 통일이 되면 다시 4살이 될 아이. 만 36개월까지는 몸빵에 가까운 육아였다면, 이제 멘탈로 하는 육아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말문이 트이면서 대화가 조금씩 가능해지고, 그와 동시에 생각 주머니가 점점 커지면서 아이는 본인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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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엑스> 간략 줄거리

도시 '올'은 안전하고 세련된 도시다. 누구도 가시를 세우지 않는, 폭풍우도 사자도 두렵지 않은 도시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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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올'에 사는 고슴도치들은 매일 '가시부드럽게비누'로 목욕을 해서 가시를 부드럽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처럼 만든다. 주인공 역시 아침에 부드럽게 가시를 빗질 하며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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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가는 길, 모든 고슴도치들은 가시 검사를 받는다. 검사에서 탈락하면 '교양 있는 가시' 수업을 들어야 한다. 시커먼 화면 속 가시 검사를 받는 고슴도치의 모습은 어른인 내 눈에도 조금 섬뜩하다. 쉬는 시간에 즐겁게 놀던 주인공 고슴도치가 뾰족 가시로 풍선을 터트리자, 교장 선생님이 바로 달려온다.


또 너구나! 학생 세 명이 기절했어!
뾰족 가시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겠니?
넌 수업 끝나고 도서관 청소야.




벌로 도서관 청소를 하기 시작한 주인공. 벌 청소지만 그래도 즐겁게 청소를 하던 고슴도치는 책장에서 꽁꽁 실뭉치로 메여 있는 책을 발견한다. 정체불명의 돌덩이 때문에 물을 먹지 못하게 된 숲속 친구들. 그리고 뾰족한 가시를 이용해 친구들에게 물을 되찾아준 고슴도치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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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은 고슴도치는 이렇게 외친다.


나도 뾰족해질 거야. 요호호!



그날부터 고슴도치는 가시를 뾰족하게 만들고, 책에서 본 것처럼 숲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필요한 공부를 시작한다. 직접 숲속 지도도 만든다. 뾰족해진 가시로 벽을 뚫어버리는 고슴도치를 본 친구들은 교장선생님에게 큰일이 났다 이야기한다. 결국 도시 안전 요원들이 학교로 출동해서 주인공을 공립가시연구소로 보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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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특급삼중안전털실에 꽁꽁 묶인 채 세팅 펌을 당하고 마는 고슴도치. 다행히 연구소에 끌려간 고슴도치는 그가 자신의 모습을 본 따 만든 인형이었고, 고슴도치는 올올이 싸인 벽을 뚫고 도시 '올'을 탈출한다.


그렇게 고슴도치는 도시를 떠나 그가 가고 싶어 했던 숲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고슴도치는 비로소 '진짜' 고슴도치가 되어 '진짜 숲'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간다.


발바닥에 닿는 흙은 축축하고 보드라웠지
나는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어
새들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녔지
쿵쿵 내 심장 소리까지 모든 게 새로웠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금기의 목록은 얼마나 길까

책 속에서 그려지는 도시 '올'의 모습은 통제투성이다. '부드러운 가시, 세련된 시민'이라는 시민 선서문이 붙어 있고, 시민들은 '우아하게 줄 맞춰서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걷는다. 신나게 쌩쌩 달리는 주인공 고슴도치를 다른 시민들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며 수군거린다.


쟤 왜 저래... 쟤 이상해...



얼마 전 아이와 함께 아쿠아리움에 갔다. 8~9세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 서너 명이 메인 수조 앞에서 서로 장난을 치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왜 이런 데 애들을 데리고 와
애들은 너무 시끄러워!


아이들 옆에서 관람하던 한 커플이 아이들을 매섭게 노려보며 이렇게 말한 뒤 자리를 떴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정작 아이들은 그 대화를 못 들었는지 여전히 웃고 떠드느라 바빴지만, 분명하게 들어버린 나는 (내 아이가 떠든 것도 아닌데) 아이의 손을 잡고 평소보다 잰걸음으로 아쿠아리움을 나와버렸다. 얼굴이 달아오른 것에는 부끄러움이 가장 컸다. 아이들을 노려보던 커플의 눈빛과 불쾌함이 잔뜩 섞인 말들은 엄마가 되기 전 나도 뱉던 것들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시공간을 침해하면서 어른이 됐다. 여전히 힘 있는 어른들은 자기보다 약한 자의 시공간을 임의로 강탈하면서 자기를 유지한다. 배제를 당하면서 자란 키즈들이 타자를 배제하는 어른이 되리란 건 자명하다.
- 다가오는 말들, 은유


은유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면서, 폐를 끼치면서' 성인이 되었다. 한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우리 사회가, (나를 포함한) 모든 부모가 조금 더 너그러워지면 좋겠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응원해 주는 팬이 되어줄 때,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너그러운 어른으로 자랄 거라 믿는다.


아이들이 금지 대신 너그럽게 감싸주고 자유롭게 풀어주는 사회를 지금보다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다면, 우린 지금보다 더 다양하고 멋진 가시를 가진 고슴도치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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