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랑했고 그래서 버텼던 시절

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by 일상채색가 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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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3부작 첫 번째 이야기

<1차원이 되고 싶어>는 이전 블로그에 이미 리뷰를 쓴 <대도시의 사랑법>, <믿음에 대하여>와 함께 박상영 작가의 사랑 3부작 소설이자 그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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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처럼 이 이야기는 성소수자이자 10대 남자 학생이 주인공이다. <대도시의 사랑법>과 <믿음에 대하여>가 대학생과 직장인이 주인공인 퀴어 소설이었다면 이 소설은 10대가 주인공이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어지는 미스터리

이 소설은 시간 순으로 사건이 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온 편지 1~5>와 과거의 이야기가 교차 편집되는 구성을 하고 있다.


현재 심리치료사가 된 주인공이 학교 폭력에 관련된 인터뷰를 하게 되고 방송이 나간 뒤 '일상이 통째로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연일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하고 그의 인터뷰 장면이 SNS로 퍼져나간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1004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이 메시지를 보낸다.


호수에서 시신이 발견됐어.
아주 빠른 속도로 신원이 밝혀졌지.



주인공은 무언가에 홀린 듯 기사를 검색하고, 이내 그가 학창 시절을 보낸 D시에 있는 수성못에서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신문기사를 보게 된다.


윤도 그리고 내 학창 시절

작가가 배경으로 삼은 2000년대 초반은 나 역시 고등학생이던 시절이라 소설 속에서 나오는 KTF 비기알이나 msn 메신저, 싸이월드 미니홈피 이야기는 마치 <응답하라 1997> 드라마를 처음 봤을 때처럼 내 향수를 자극했다.


주인공 해리는 윤도라는 남자아이를 짝사랑하고 있다. 윤도를 생각하며 정성껏 만든 초콜릿을 몰래 서랍에 넣는다. 주인공인 해리(윤도가 그에게 붙여준 별명)와 윤도는 조금씩 가까워진다. 해리는 윤도의 말 한마디, 작은 제스처 하나에도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행여 누구에게 본인이 품은 감정을 들킬까 애써 우정으로 포장하지만 반장에 전교 10등 권 안의 해리와 일진에 가까운 윤도는 생각보다 잘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모양새다. 해리는 자신의 미니홈피 다이어리는 윤도와 공유하며 그곳에 자신의 비밀스러운 감정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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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의 여러 모습이 십 대 시절의 나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작가가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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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십 대 시절은 너무나 어둡고 음울했던 내 진짜 모습을 가리기 급급한 시절이었다. 누군가 나의 음침한(하지만 그게 진짜 내 모습인 것이 너무 괴로운) 모습을 볼까 두려웠고, 그래서 나도 늘 대중 속에 섞여 있었다. 소위 말하는 "찐친"을 갖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나라는 아이는 '친해지고 싶은데 무서워서 말을 잘 못 걸겠는' 친구였다. 어쩌면 나도 해리처럼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에게 '약점을 잡히거나 약점의 대상이 될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태리와 해리

윤도에 대한 해리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와 동시에 해리는 자신과 같은 게이인 태리를 매몰차게 외면한다. 어릴 때부터 형제처럼 함께 자란 태리지만 태리와 친하게 지내다 태리처럼 자신도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서 해리를 태리를 무시하고 또 무시한다.


태리를 외면하며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사는 것도 십 대 청소년인 해리에게 충분히 벅찼을 텐데, 그 와중에 윤도는 자신과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행동으로 해리를 절망에 빠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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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 빠져 나락으로 간다 싶으면 윤도를 해리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참 나쁜 놈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시절의 내가 그랬듯, 그 시절의 해리도 모른다. 나쁜 놈인 것을.

해리와 윤도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던 무렵, 태리는 해리에게 함께 유학을 가자고 제안한다. 태리는 이미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해리가 성소수자이고 윤도를 일방적으로 쫓아다니는 이상한 놈이라고 소문이 다 났음을 말한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이곳을 떠나자고 말하지만, 그런 태리에게 해리는 '어쩌면 한없이 짐승을 닮아 있는 강력한 살의'를 느끼며 태리를 연못으로 밀어버린다.

그리고 그 후, 해리는 태리를 보지 못했다.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까 우리 1차원의 세계에 머무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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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을 읽을 때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하며 입시로 고통받던 그 시기, 내가 지나던 그 3차원의 시기는 고통 그 자체였다. 베프가 생기거나 주인공 속 해리처럼 사랑하는 상대가 생기면 나의 세계는 1차원으로 변한다. 이 세상에 그 사람과 나만이 존재했으면 하는 염원. 마치 영화 <해피투게더>의 보영과 아휘처럼 부에노스아이레스 같은 미지의 공간에서 서로 미친 듯이 사랑하며 '우리인 채로 고유해지고 싶은' 그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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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해리가 태리를 다시 만나러 가는 길에 나오는 이 독백에서 눈물이 조금 났다. 그 시절 내가 수없이 밀어냈던 무수한 인연들은 결국 나를 유기하고 싶었음이었다.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간절히 버리고 싶었던, 혹은 1차원의 세계에 계속 머무르고 싶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차마 들여다볼 수 없었던 과거의 어떤 시절'을 다시 돌아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비로소 그 시절의 우리를 토닥여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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