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할 줄만 알았던 그녀의 모험

집이라는 모험, 신순화

by 일상채색가 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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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에 살고 싶어졌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주택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다. 아주 가끔 시골 주택에 사는 지인의 집에 놀러 가거나 마당이 딸린 주택을 개조한 식당에 갔다가 내가 이런 집에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하면 엄마는 치를 떨었다. 청결과 치안에 강박과 불안이 높은 엄마에게 주택살이는 억만금의 돈을 준다고 해도 절대 할 수 없는 아주 끔찍한 짓이었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감사하게도 내 집이 생겼지만 여전히 나는 아파트에 살았고 지금도 아파트에 산다. 그래서 늘 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기웃거린다.


블로그 누적 방문자 횟수만 4백만이 넘는 파워블로거이자 뛰어난 에세이스트이자 언니공동체의 회원이기도 한 신순화 작가가 12년 동안 주택에서 살며 마주한 이야기들이 책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재빨리 그녀의 책 속으로 들어가 기웃거렸다.



마당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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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나와 반대로 어린 시절 주택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었다. 길지 않은 기간이긴 했지만 그 시절에 형성된 귀한 정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신이 꿈에서 그리던 '마당 있는 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비록 주택은 아니지만 '내 집'이라는 존재는 늘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매매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은 지 5년이 채 되지 않은 신축 아파트였고 신도시 아파트답게 동일한 디자인과 구조로 특별히 다를 게 없었지만, 이 집에 발을 디디는 순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여기가 내 집이 되겠구나


정말 그런 느낌이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하게 느낌이 왔고, 신순화 작가도 12년 전 처음 그 집을 봤을 때 그 느낌을 명확히 받았었나 보다.



주택살이의 민낯

그렇게 신순화 작가와 아이들, 남편은 그 집에서 백년해로하며 행복하게 자연을 누리며 잘 살았다면 이 책은 출간되지 못했을 것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 조합원이 된 이후, 이미 주택살이를 하고 있는 가족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들의 주택살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냥 아파트에서 사는 게 갓성비인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데, 작가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11도라고? 방 안 온도가? 진짜?



작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낡은 벽돌집의 어마무시한 추위였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아무리 걷어내도 내일이면 다시 집을 지어놓는 거미들,
내가 죽으면 풀 뽑다 죽은 줄 알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잡초와 잔디,
사람 기겁하게 만드는 뱀과 쥐,
근처 식당 주차공간 없다고 내 마당에 주차하는 외부인들,
독성을 내뿜는 폐기물을 아무 생각 없이태우고 말 같잖은 텃세를 부리는 주민들,
세 아이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찬데몇 곱절의 일을 늘려주는 동물들..

책 전반에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지금처럼 아파트에서 평생 살다 죽는 게 나와 내 가족을 덜 괴롭히고 심지어 자연도 덜 해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주택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남편은 '너는 그곳에서 단 일 년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 할 것'이라며 극구 반대를 하는 중이다.

그녀의 생생한 주택살이 체험기는 어린 시절 시골과 주택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남편이 나에게 늘 경고하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선택의 문제다. 모든 것을 다 충족하는 삶을 늘 살 순 없으니 내 인생에서 귀하다 여기는 가치를 찾고 그를 쫓아 살야 아 후회가 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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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일이 많고 몸이 좀 고달픈 대신 자연을 선택했다. 자연이 넘치는 공간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을 우선순위에 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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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은 그녀에 집에 오자마자 '위험해 보이는 것 투성'이라며 아이들에게 조심시켜야 할 것을 상기시켰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불안하고 예민한 엄마와 자란 아이는 어딜 가나 위험한 것이 먼저 보이고, 낯선 사람은 늘 위험하고 경계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더 주택살이를 해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을 한번 파괴해 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자의건 타의 건 내 인생에 굳게 드리운 프레임을 깨고 내 멋대로 살아보고 싶은 욕망, 그 속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들여다보고 싶은 그런 욕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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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을 읽으며 크게 공감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작가의 말처럼 '노동이 낱낱이 파편화되어 가려져 있다'. 하나의 물건이 내 손에 오기까지 분명 누군가는 노동을 하고 있지만 그 노동이 점차 보이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이것은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타인과의 접촉이 곧 감염이라는 공포가 드리우고 더 심해졌다.

오늘 주문하면 내일 새벽 현관문 앞까지 물건이 배송되고, 가스고 전기고 검침 한 번 내 손으로 하지 않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알아서 쓸어주고 치워주는 곳에 살며 궁극의 편리함을 즐기면서도 한편으론 두렵다. 나를 위해 수고해 주는 수많은 노동의 소중함을 내가 잊는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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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내가 죽으면 풀 뽑다 죽은 줄 알아'라는 소리까지 나오게 만드는 풀이지만 그 풀을 바라보며 '풀 뿌리의 단단한 연대'에 결국 고개 숙이며 겸손해진다는 그녀의 말에 내 고개도 숙여진다.

환경을 탓하지도 않고, 악착같이 씨를 떨구며 후일을 도모하고, 한 줄기의 희망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 자라는 풀. 짧게 말해 '존버 정신'인데 지금 내가 속한 편리한 세상은 내가 풀처럼 살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연약해질 대로 연약해진 나는 내 자식마저 연약하게 품게 된다.



열두 달을 즐기며 살아가기

책 후반부 '열두 달'이라는 챕터에서 작가는 이 집에서 즐기는 열두 달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세시 절기를 배우고 절기에 맞춰 살아간다. 세시 절기라는 게 얼마나 미라클한지 모른다. 입춘이 지나면 귀신같이 날씨가 풀리고, 무더운 여름이 평생 갈 것 같지만 입추가 지나면 바람이 선선해지고, 대설이 다가오면 눈이 내리고 밤이 길어진다. 하나의 절기를 보낼 때마다 기후 위기로 아이들이 내년에는 이 절기를 즐기고 지나가지 못할까 봐 걱정이 앞선다.


까만 어둠 속에서 방해받지 않고 잠들고, 풍성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고, 어여쁜 생명을 귀하게 곁에서 돌봐줄 줄 아는 삶.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누리며 사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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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작가는 이 집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집 주변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집주인이 그녀가 사는 집을 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내가 그 집에 살지도 않았건만 집에 고마움이 느껴졌다. 작가에게 이토록 다채롭고 경이로운 모험을 하게 해주어 내가 편하게 내 집 거실에 앉아 간접 체험을 하게 해줬으니 말이다.

신순화 작가가 어디로 이사를 가시던지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란다. 그녀의 모험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엔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그녀가 가족들과 꾸릴 새로운 터전에서 시작될 모험의 다음 챕터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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