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청년(靑年)이여

수세미와 청년

by 일상채색가 다림

최근 환경오염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나는 백일 간 필요 없는 물건을 비우는 작업과 기존에 쓰던 일회용품들을 제로웨이스트 제품으로 대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몇가지 예를 들면 일회용 컵 대신 무조건 머그컵과 텀블러를 사용하고, 플라스틱 통에 담긴 핸드/바디 클렌저를 고체 샴푸바로 교체했고, 쟁여둔 플라스틱 칫솔을 다 쓰고 나면 대나무 칫솔로 바꿔볼 생각이다.


나의 부엌을 책임질 천연 수세미


그리고 최근 새로운 분이 내 부엌에 입성하셨는데, 바로 위의 천연 수세미 되시겠다. 처음 천연수세미를 만져보았을 때,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너무 딱딱하고 까칠했다. 이걸로 설거지가 된다고? 보나 마나 거품도 풍성하게 안 날 것 같고..(거품이 깨끗함의 척도가 아닌 걸 알면서도 나는 아직 거품에 집착을 한다) 난감해졌다. 그래도 미세 플라스틱이 몇십 년이 지나도 안 썩고 지긋지긋하게 땅 속에 남아있다니까 일단 한번 써보기로 했다.


수세미를 물에 푹 담가서 충분히 불려본다. 딱딱하고 얇았던 사진 속 수세미는 물을 머금고 천천히 부풀러 오르기 시작했다. 까칠하던 겉면은 물에 불어나며 점점 보드랍게 변한다. 설거지 바를 묻혀보니 처음엔 거품이 양껏 나진 않는다. 영 불편한 것 같다. 아..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다. 이미 2+1으로 왕창 사버렸는데 어쩐다. 이것도 또 백일의 비움 아니, 이웃에게 나눔으로 가야 하는 것인가.


계속 써보기로 했다. 약간 귀찮긴 하지만 설거지하기 전 물에 담가 불리는 시간을 좀 더 늘려본다. 그렇게 하기를 사흘 정도 했을까. 한층 보드랍고 풍성해진 천연 수세미는 우레탄 수세미까진 아니어도 꽤 만족스러운 거품을 나에게 선사했다. 내가 더 놀란 것은 세정력이다. ‘이거 제대로 닦이는 것 맞아?’ 싶지만 설거지 후 기존 수세미로 닦던 시절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뽀득거리는 그릇을 만지며 나는 묘한 쾌감이 들었다. 영 까칠하고 나랑 안 맞는 옷 같던 수세미는 그렇게 내 마음과 부엌에 녹아들었다.


왜 갑자기 수세미 이야기 중이냐면, 이 수세미가 마치 내가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접어드는 모습과 유사해서다.


청년(靑年)과 청춘(靑春)



발음부터 청량하다. 아주 청청하다(?). 둘 다 좋아하는 단어라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청년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이고 청춘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청년과 청춘은 마치 동의어처럼 혹은 세트 메뉴처럼 같이 다니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사전적 의미를 읽다 보니 청년의 시기와 청춘의 시기는 같이 묶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사전적 의미는 미성년을 일컫지만 청춘의 시기는 소년의 시기에 더 가까운 듯하다. 아직은 완전히 성숙치 않은, 이제 파랗게 돋아나는 상상만으로도 싱그러운 그 시절.


3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있는 나는 청춘의 시대는 지난 나이다. 이제 돋아난 싹에 열심히 물을 주어 키워야 하는 시기에 있는 것 같다. 나를 키우고, 성장하고 점차 무르익어 가는 나이. 지금의 내 나이를 설명해주는 딱 좋은 단어가 바로 '청년'이었다니. 새로운 발견이다!


청춘의 시기를 지나던 나는 아주 까끌거렸다.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것이 없었고, 세상과 타인에게 나의 까끌거림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물이 닿아 보드라워지는 것을 거부했다. 까칠하고 딱딱한 내 모습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게 나의 정체성이라 믿었으며, 부드러워지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가 세상에 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매 순간을 힘겹게 10대와 20대를 거치며 30대 중반이 된 지금 나는 마치 사흘 정도 길들여진 수세미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원래의 까칠함이 완벽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부드럽고 거품도 적당히 나는 사용감이 좋아진 수세미 같은 모습. 세상과 타협한 것도, 진 것도 아닌 그 나름으로 좋은 모습이다.


젊은 시절의 나는 이보다 더 반짝거리고 빛날 수 없었던 것 같아서, 지금 나의 모습이 낯설고 어색할 때가 있다. 사실 아직은 자랑스러운 순간보다 과거의 반짝임이 그리울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요즘은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기도 할 만큼 지금의 내 모습도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


“너 임마, 그래도 그립감은 훨씬 좋아졌어! 거품도 더 잘나고 색깔도 뽀얗게 변했다고! 그리고 난 네가 이렇게 뽀득뽀득 잘 닦이는 아인 줄 몰랐어. 마음에 들어!”


파랗게 돋아나며 까끌거리던 시절의 나도, 이제 좀 더 자라 보드라운 잎이 되어가는 지금의 나도 모두 아름답고 귀하다. 그래, 인생이 그렇지 뭐. 그렇게 길들이며 살아가는 거지.


만들어진 포즈(?) 아님! 원래 책 좋아하는 아이에요 진짜에요!


내 아이 역시 내가 거친 청춘의 시기를 거쳐 청년이 될 것이다. 매우 기대된다. 아주 싱그럽고 까칠할 한 소년의 청춘의 시기. 얼마나 까칠하고 무섭겠어. 그런 까칠함이 부드러워지며 멋진 향을 풍길 청년의 율뽕이.


아, 상상만으로도 너무 설렌다.

아줌마 마음에 이렇게 또 봄바람이 불어오네.



깨알 지식 공유)

우리가 생활하며 사용하는 일회용품이 이렇게 많았다니. 그리고 그걸 대체할 용품도 이렇게 많다니.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길!

노프(NOFF): https://linktr.ee/noff_inearth


수세미 사진 by 딩크엄마

나머지 사진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