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워줄 것

나는 들을 준비를 할 거예요

by 일상채색가 다림

내가 좀 더 일찍 세상을 살아본 어른으로써, 그리고 엄마로서 내 아이에게 어떤 부분을 잘 키워주어야 하는지 고민한다. 비단 나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아이에게 키워주고 싶은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공감하는 자세다. 영혼 없는 공감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이나 기쁨에 제대로 개입하고 장단을 맞춰줄 수 있는 능력.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수많은 케이스에서 진정한 공감이 관계 맺기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다. 육아로 인한 우울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나락으로 떨어진 나의 고통과 분노, 슬픔에 공감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도 알고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기에 급급한 남편을 보며 더 절망하기도 했다. 나도 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음을. (오빠도 연습해야 해, 나랑 같이) 애써 나의 힘듦이나 경험을 공유했음에도 무한상사 박 과장처럼 억지로라도 ‘그랬구나’조차 못해주는 사람들을 보며 벽과 대화하는 기분을 느껴본 적 다들 있을 것이다.


역대급 에피소드 중 하나인 무한상사 그랬구나편


작가 은유는 ‘여자라서, 아이가 있어서, 딸이 있어서 라는 조건들은 어떠한 상황이나 사람에 공감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공감의 지속 조건은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다가오는 말들, 126p>


즉, 제대로 된 공감을 하려면 이 또한 수련이 필요하다는 건데 이 말에 동의한다.


제대로 된 공감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위의 책에도 나와있지만 나와 대화를 나누는,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의 대화를 제대로 듣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것이 그 사람의 신세 한탄이나 고통의 이야기라면 더 힘들다. 특히 내가 힘든 상황에 처해 있으면 더더욱 공감이 어려워진다.


적어도 나는 내 아이가 ‘엄마, 나는 원래 공감 능력이 떨어져’ 혹은 ‘난 굳이 남에게 공감하며 살고 싶지 않아’라고 단정 짓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한다. 그러기엔 인간이라는 존재는 너무나 함께 부대끼며 관계 맺는 것을 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갈망하는 만큼, 누군가와의 진정한 소통, 관계 맺음에 목이 마르다.


내 아이가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전에 나에게 자신의 아픔을 가감 없이 이야기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할 것이다. 고강도의 정서적 노동이 되겠지. 상상만 해도 이미 다크 써클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기분이지만, 어쩌겠어 엄마인걸. 온전한 사랑을 받은 아이가 그 사랑을 흘려보낼 줄도 알듯이 깊은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경험을 하게 해 준다면, 내 아이도 누군가의 슬픔과 기쁨에 함께 울고 웃어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젠 볼 수 없는 배냇짓


하율아, 엄만 들을 준비를 하고 있을게.

언제든지 와서 털어놓으렴.

온몸이 귀가 되어 열심히 들어줄게.



율뽕이 사진 by 딩크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