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김영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단어 하나가 맴돈다.
왜?!
성폭력이라는 것이 원래 다 역겹지만, 자기 딸을? 겨우 초등학교 5학년.. 그 어린 꼬맹이를? 도대체 왜?
폭력에 오랜 기간 노출되어 무기력해진 그녀의 다른 가족들에게도 분노가 치밀다가 나중엔 한숨만 나왔다. 실제 친족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족 내 다른 구성원들이(주로 엄마나 할머니 같은)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거나 오히려 네가 “처신”을 잘 못해서 그런다는 둥 “흘리고 다니니” 그러는 거 아니냐는 식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며 2차 가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최종 탈출의 순간 의심 없이 그녀를 도와준(이게 정상이긴 한데 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다행히 그녀는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게 있다. 나는 운이 참 좋았다. 많은 피해자가 고소를 하고도 여러 차례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을 듣거나 법정에서 가해자 얼굴을 맞대는 힘든 상황을 겪는 등 법적 처리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종종 겪어야 했다.
-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中
가해자는 저자가 대학교 1학년일 때 서울에서 몇 번의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한 작은 도시의 여관에 가둔 채 또다시 폭력을 저질렀고, 그녀가 여관 주인에게 납치당했다고 인터폰을 한 뒤 여관 주인이 경찰에 신고를 해서 비로소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무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거의 매일 '아빠에게' 폭력을 당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임신이 되어(당시 그녀의 나이는 겨우 13세) 중절 수술까지 받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렇게 9년 동안 그 짓거리를 해놓고 짐승만도 못한 그놈은 겨우 7년을 감옥에서 살다 나왔댄다. 미친 형량. 9년을 괴롭혔는데 7년이라니. 이 마저도 그 당시 친족 성폭력에 의한 다른 케이스에 비하면 굉장히 높은 형량이었다고 한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가해자가 살아 있었을 당시(가해자는 복역 후 2019년 사망했다) 예배당에서 기도를 할 때 늘 벽에 등을 기댄 채 기도를 했다고 한다. 혹시라도 그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을 뒤에서 칼로 찌를까 봐 무서워 엎드려 기도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극한의 공포 속에서도 그녀는 늘 기도했다.
쾅!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없이 우리 교회 정문 앞 지붕 위에 달아놓은 나무 십자가가 땅으로 고꾸라졌다. 거꾸로 처박힌 십자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예수님을 진짜로 믿기 시작한 건. 목사이고 아빠이지만 개만도 못한 더러운 짓을 일삼는 그 사람이 직접 만들어 세운 나무 십자가가 땅에 처박힐 때, 나는 생각했다.
'아, 신도 저 새끼를 버렸구나.'
-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中
그녀는 가해자가 담임 목사로 있던 교회 앞마당에 나무 십자가가 아무 이유 없이 처박힌 날 '자신이 믿는 하나님'과 '저 인간이 믿는 하나님'은 다른 분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강인한 그녀의 내면. 저자는 '그 속에서 무시하기'라는 방법으로 그 나이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들, 누려야 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열심히 해 나갔다고 한다. 학교를 열심히 다녔고(학교에 있는 시간에는 아빠가 자신을 건드릴 수 없어서 좋았다고 해서 너무 슬펐다), 도시락을 싸고, 밥을 해 먹고, 아픈 엄마 대신 살림을 하면서 그녀는 버텼고, 살아남았다.
친족 성폭력뿐만 아니라 가족 내 폭력, 데이트 폭력 등 만성적인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들의 인터뷰나 책을 볼 때 그들이 실질적으로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얼마나, 어떻게, 어디서 맞았는지와 같은)를 보는 것도 힘들지만, 그 안에서 피해자들이 끊임없이 들어야만 했던 자신의 존엄성을 짓 밞는 말들이 내 마음을 늘 찢어놓는다. 김영서 작가 또한 가해자에게 시도 때도 없이 온갖 욕설과 '엄마를 닮아 헤픈 갈보년', '창녀 같은 년', '너 같이 더러운 년이 결혼이나 하겠냐' 등등 피가 거꾸로 솟는 말들을 들으며 살아야 했다.
가만히 있어도 지키기 어려운 자존감인데 나의 존귀함을 부정하고, 어딜 가나 너는 환영받지 못할 것이며, 손가락질당할 것이라는 말을 수년간 듣고 살아야 했다면.. 그 사람들의 마음속 깊게 파인 그 상처들은 얼마나 오랜 치료의 시간이 필요할까.
김영서 작가에게 너무나 고맙다. 어린 날의 영서가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럽고 힘들고 외로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아 이 세상으로 나와줘서 진심으로 고맙다. 그리고 그 고통의 순간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큰 용기를 내줘서 또 한 번 고맙다.
그녀의 남은 인생은 더욱 찬란하게 빛이 나기를. 축복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