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흉터에 입 맞추고 싶어요

보건교사 안은영 - 정세랑

by 일상채색가 다림

정세랑 작가는 '보건교사 안은영'을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읽으며 독자가 쾌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것은 자신의 실패라고 말하는 그녀의 다정한 자신감이 좋았다.


나만의 세계관 정립이 확실하게 안된 사람이라 그런지, 세계관이 매우 확고한데 그것이 아주 독특하고 난해한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좀 어렵다. 이해해보려고 무진장 애를 쓰다가 결국 이해하지 못할 때 작은 절망을 느낀다. 내 코어를 흔들 만큼 큰 절망까지는 아니어도 '아, 이 사람도 소화가 안되네'정도의 무력함.


정세랑 작가도 장르 소설을 쓴다고 하니까 괜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출 순서를 기다리다 먼저 읽었던 그녀의 여행 에세이 리뷰에도 썼듯, 그녀는 다정하고 따뜻했다. 인표가 은영의 손을 잡고 그녀를 충전해 주었듯이 나도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은영은 무심하고 남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누구보다 아이들을 신경 쓰고 있었고, 본인의 특출난 능력이 너무 싫지만 최선을 다해 맡은 임무를 수행한다. '너무 피곤해서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너무 거슬리는데 차마 못 본 척 넘어가진 못하겠다!'라며 장난감 총과 칼을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이 예전의 나와 비슷해서 웃음이 나왔다.


고등학생이면 벌써 다 큰 것 같지만 그래도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어른들을 그만큼 잘 믿기도 힘들다. 믿지 말아야 할 어른들까지 철석같이 믿어 버린다. 아직 남아 있는 순수한 표정과 열려 있는 눈동자가 선생님들을 버텨 내게 하는 힘이기도 했다.
내가 너를 싫어하는 것은 네가 계속 나쁜 선택을 하기 때문이지 네가 속한 그 어떤 집단 때문도 아니야. 이 경멸은 아주 개별적인 경멸이야. 바깥으로 번지지 않고 콕 집어 너를 타깃으로 하는 그런 넌더리야.
광개토대왕비를 흉내 낸 모양에 고전적인 서체로 '성실, 겸손, 인내'라고 쓰여 있었다. 셋을 합하면 결국 '복종'이 아닌가, 은영은 늘 끌끌 혀를 찾었다.


작품 곳곳에서 세상과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볼 수 있는데, 하나같이 올곧고 따뜻하다. 지금껏 보기 어려웠던 독특하고 강한 여성 캐릭터를 창조해낸 작가는 자신의 다정함을 안은영이라는 캐릭터에 한 스푼 끼얹어 캐릭터의 매력을 한껏 높여주었다.


그녀의 따뜻함에 내 심장도 좀 더 따뜻해진 것 같아 행복해졌다. 그녀 말대로 서로의 흉터에 입을 맞춰주고 내 손을 내밀어 누군가를 충전해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다른 나쁜 조건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