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이 소설은 '기가 센 여자들'이 아니라 '기세가 좋은 여자들'이 일군 가족의 이야기다.
정세랑 작가는 대한민국 예술사에서 이름을 남긴 유명한 여성 예술가들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가를 이루었다면 어떤 풍경일지를 상상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대로 소설 속 심시선이라는 여성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김명순 혹은 나혜석 같은 여성 예술가를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특유의 발랄하고 다정한 문장으로 근현대 여성 예술가에게 실제로 흔치 않았던 해피엔딩을 선물한다. 하와이에 모여 심시선을 각자의 방식으로 추억하고, 그녀의 제사상에 올릴 물건을 준비해온다. 그리고 밤새 함께 모여 심시선에 대해 추억한 뒤 깔끔하게 헤어진다. 이런 멋스러운 제사 방식이라면 매년 나도 참석하고 싶다. 너무 매력적이다. 제사의 방식도, 그것을 수행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작가는 자신의 색깔이 확고한 여성이 한 집안의 가장이 되면 얼마나 신선하고 보기 좋은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가부장제의 틀 속에서 힘겨워하는 여성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소설 속 심시선과 그녀의 자식들 역시 대단한 비장함을 뽐내진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고, 서로에게 힘든 시기가 닥쳤을 때 함께 한다. 마치 내 주변에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 익숙함이 위로가 된다.
손님들이 꼭 오빠만을 두고 '크게 될 놈'이라고 칭찬했거든요. 어느 날 엄마가 그게 싫었는지 매번 반복해서 말하는 손님한테 "그럼 우리 딸들은요? 작게 될 년들인가?" 하고 확 무안을 줬어요.
자기가 당했던 일을 자기 자식이 당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가 없어서. 혼자서는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아니까. 한국은 공기가 따가워요.
그녀는 날카롭지도 그렇다고 조심하지도 않는다. 나는 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의 폭이 큰 사람이다. 정세랑 작가 같이 날카롭지도, 조심하지도 않는 그 중간의 어느 선을 찾는다면 나도 좀 편안해지지 않을까. 적당히 가까이하기 좋은 온도로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태호는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발끈했다.
"아냐, 지금 먹으라고. 식기 전에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먹으면서 장모님 생각해."
이 장면을 읽으며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하늘에서 이런 사위를 보며 심시선이 얼마나 웃었을까?
명혜, 명은, 명준, 경아와 그들의 배우자들이 나누는 대화 방식도 힐링이 되었다. 현실 속 남매나 자매, 형제가 나누는 대화는 극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미디어에서 보이는 너무 친하거나 죽자고 싸워대는 블라블라가 지겨웠다. 시선의 자녀들은 적당히 친하고 무심하고, 서로를 배려한다. 그 점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엄마가 된 이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힘들어하는 사람이 보이면 지나치기 어렵다. '시선으로부터'를 읽으며 20세기를 악착 같이 살아낸 또 다른 심시선 여사들이 생각났다. 고단했을 그녀들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이 수많은 나날 홀로 울었을 눈물의 방에 함께 들어가고 싶어 진다.
사회는 이런 감정을 '아줌마의 오지랖'이라 비난하며 싸구려 감정으로 치부하고 힘든 사람들의 연대를 거부한다. 선을 넘는 타인에 대한 참견은 지양해야 하지만,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눈물의 연대조차 거세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배우고 살아온 지친 영혼들에게 작은 위로를 전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다정하고 용감한 이야기를 써준 정세랑 작가에겐 나의 무한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