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 할레드 호세이니’
*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불과 7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전쟁을 치렀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감사하게도 6.25 전쟁이라는 난리통은 상상도 안될 만큼 잔뜩 성장한 나라가 되었다. 새삼 놀랍다. 겨우 70년 전에 온 나라가 쑥대밭이었던 시절이었다는 것이.
전쟁을 책과 영상으로 본 세대가 점차 많아지다 보니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다른 나라의 전쟁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닿지 못하고 그저 수많은 해외발 뉴스 중 하나로 아스러져 버리는 것 같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했다. 전혀 놀랍지 않게도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돈다발을 야무지게 챙겨서 홀라당 튀어버렸고 20년간 미국이 지원한 온갖 최첨단 전쟁 장비는 탈레반이 낼름 했으며, 어느 쪽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치이기만 하는 국민들은 공항으로 달려가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리고 철조망 너머의 미군에게 내 아이라도 데려가 달라고 아이를 넘긴다. 여성들이 온몸을 다 가리는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고 즉시 처형을 시켜버리는 것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이 2021년에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소련 침공, 군벌들 간의 내전, 탈레반 정권, 미국과의 전쟁 등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인 현대사와 그 속에 남겨진 아프가니스탄 여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마리암과 라일라. 엮일 것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두 여자의 삶은 복잡한 도시의 역사와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한 남자로 인해 얽히게 된다. 본처와 후처로 만나 서로를 경멸하기도 했지만, 남편의 끔찍한 폭력과 학대 속에서 둘은 끈끈한 연대를 보여준다. 마치 서로에게 엄마와 딸이 되어주는 듯하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수준의 정서적 학대와 조혼이라는 악습, 남편의 물리적 폭력.. 수많은 인생의 굴곡을 겪으면서도 저항해볼 생각조차 못하고 숨죽인 채 살던 마리암은 자신에게 손을 대는 것으로 모자라 라일라마저 죽이려 하는 남편 라시드에게 처음으로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그녀는 자문해보았다.
내가 그를 기만하는 아내였나? 독선적인 아내였나? 떳떳하지 못한 여자였나? 수치스러운 여자였나? 천한 여자였나?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이 남자의 악의와 구타를 계속 감수해야 했는가? 그가 아플 때 그를 간호해주지 않았던가? 그와 그의 친구들을 위해 음식을 대접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모든 게 끝나면 설거지와 청소를 하지 않았던가? 이 남자에게 내 젊음을 바치지 않았던가?
나는 이 남자의 비열함을 견뎌야 마땅한 사람인가?
-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중에서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남편(이라고 부르기도 싫은 썩을 놈)에게 분노를 느끼는 장면에서 나는 너무나 큰 슬픔을 느꼈다. 이 세상 어떤 여성도 남편의 폭력과 비열함을 참고 살 이유가 없다. 그리고 평생을 죽음의 공포 속에서 온갖 학대를 당하며 살아왔음에도 (자신이 딸처럼 여긴 라일라를 살리기 위해)남편을 죽이고 ‘감히’ 남편을 죽인 나쁜 여자로 처형당한 그녀의 삶이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
하지만 그녀는 생의 마지막 순간 한없이 평온함을 느낀다. 남겨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생각하며 살아온 인생이었지만 그녀는 친구를 얻었고, 딸을 얻었고 그들은 마리암의 희생으로 새로운 인생을 꾸려갈 수 있었다. 마리암과 라일라의 우정은 그렇게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났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맞고, 남성이 동행하지 않으면 외출을 할 수 없으며, 외출 시에는 한 치 앞도 잘 안 보이는 부르카를 뒤집어써야 한다.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대역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고,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남자들을 대신하여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서 해야 했다. 남자들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섹스 상대를 해줘야 하고, 피임은 당연히 하지 않는다. 이제 겨우 중학생 나이에 자신보다 수십 살이 많은 남자와 억지로 결혼을 해야 했고, 남편이 다른 여자를 집안에 들여놓거나 난데없이 어디선가 애를 낳아와도 찍소리도 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은 과거형으로 혹은 소설 속에서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에게는 그저 어떤 나라의 또 다른 테러 소식이고 내전 상황 업데이트일 뿐인 소식이지만,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것은 그 속에는 늘 사람이 있다는 것. 누군가는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요셉은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헛간은 장미꽃밭으로 바뀔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살아 있는 모든 걸 집어삼키려고 홍수가 닥치면
노아가 태풍의 눈 속에서 너희들을 안내할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중에서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차별과 학대의 고통 속에 있는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이여,
당신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카불공항 아기 사진: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25&aid=0003128390
부르카 사진: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57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