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하여
딩크족을 꿈꾸던 순간이 있었다.
결혼은 그래도 할만하다고 느껴졌는데,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이어지는 쓰리콤보는 도무지 시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마음이 쓰이지 않은 것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아이라는 존재를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왜 나는 아이라는 존재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그것을 설명하려면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 대충 나의 지난 시절을 줄여서 말하자면, 나의 부모가 내게 줄 수 있었던 것과 내가 부모에게 받고 싶었던 것에 아주 극심한 온도차가 있었다.
내가 받고 싶었던 것은 결정의 순간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나에게서 한발 물러섬과 함께 진심에서 우러나는 응원, 10대의 불안하지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진 않은, 그와 동시에 보호를 바라는 복잡한 심리에 대한 무조건적인 이해였던 것 같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3-40대 남녀의 부모님 세대들은 대부분 내가 바라던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그런 대접을 받고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혹 남편계의 최수종 씨처럼 ‘이 세상에 실제로 저런 인격체가 존재를 했단 말인가?’ 싶은 깨어있는 부모 밑에 자라는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극소수였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없는, 동시에 내가 가지고 싶은 영혼의 반짝임이 있었다)
상처로 점철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후 성인이 된 나란 여성은 어린아이라는 존재를 굉장히 불편해하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미혼 시절 어느 누구보다 노키즈존을 지지했으며(엄마가 된 지금 노키즈존 문구를 보면 가슴 한구석이 철렁 내려앉는다), 나와 가까운 자리에 아이를 동반한 사람이 나타나면 한숨부터 나왔고, 평일 낮에 애 데리고 백화점이나 카페에 앉아 있는 여자들을 보면 나도 얼른 돈 많은 남자나 만나서 저런 ‘팔자 좋은 짓’ 해보고 싶단 생각도 했었다.
모든 것이 깨진 것은 내가 임신을 하고 육아 지식 및 아동과 엄마의 심리에 대한 책을 읽은 뒤였다. 내가 아이들을 싫어하고 곁을 내어주기 싫었던 것은 아이라는 존재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 안의 상처 받은 내면 아이가 문제였던 것이다.
모든 잣대에 굉장히 엄격한 부모의 밑에서 자라며 나는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억압당했다. 즉, 투정을 부린다거나 짜증을 내거나, 울며 징징 대는 등의 행동을 나의 부모는 강하게 억압했다. 특히 제3자가 있는 공간에서 하는 것은 절대 용납되지 않았고, 그렇게 할 경우 어김없이 강력한 체벌과 호통이 수반되었던 기억이 난다. 쉽게 말하면 징징 대는 순간 귓방망이에 불이 났다고 해야 하나.
나는 특히나 공공장소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폐를 끼치는 아이들을 혐오에 가깝게 싫어했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어릴적 그럴 때마다 필요 이상으로 혼이 나고 심지어 맞기까지 했다. 내가 아이를 못 견뎌하는 것의 가장 큰 이유가 어린 시절 충분히 내 의견과 감정을 표현하며 자라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을 내가 엄마가 되기 직전에야 깨달았다.
그렇게 충격적인 사실을 자각하며 엄마가 되었고, 나의 내면에 큰 상처가 있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내 아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는 것을 해내기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현재 엄마의 자리에 있는 나와 비슷한 연배, 그보다 조금 위/아래 세대에 위치한 여성들의 대다수는 이러한 고통을 이겨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우리의 부모가 우리를 키운 방식으로 내 아이를 키워선 답이 없다. 왜냐고? 나의 내면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내 마음속 깊게 파여 아직도 아물지 못한 채 남은 상처는 죄다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다. 그런 크나큰 상처를 내 자식에게 똑같이 준다? 그건 미친 짓이다.
그렇게는 안 하고 싶은데, 내가 받아본 적도 어디서 들어본 적도 별로 없고.. 책이나 TV에 나오는 오은영 박사님이나 신의진 박사님 같은 분들이 하라는 대로 해볼라니까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결국 아이에게 이도 저도 안되고 화만 나고 그렇게 다시 시작되는 자기 환멸. 지옥의 쳇바퀴다. 그렇게 괴로움에 몸서리치며 우리가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아이에게는 줘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몇 해 전 한 목사님의 설교 말씀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씀이 있었다.
“성도 여러분, 사랑은 즐겁고 재밌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당시 미혼이었던 나는 머리로는 뭔지 알 것 같기도 했으나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사랑은 아마도 누군가의 어미가 되어 주는 것,
누군가를 나의 아이처럼 보듬어 주는 것이 아닐까.
나처럼 실제 엄마와 아이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그 대상이 애인이든, 친구든, 동네 이웃이든 상관없다. 때로는 이 관계를 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끌어안고 손을 내미는 것, 그 사람을 위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참고 또 참으며 기다려 주고, 내치고 싶은 순간 허벅지를 쥐어뜯으며 한번 더 인내하는 것. 죽을만큼 괴롭지만 그 괴로움을 이겨내는 강한 버텨냄의 과정.
결국 이것이 사랑이 아닐까. 그렇기에 사랑이 온 인류의 풀리지 않는 숙제인 것이 아닐까.
좋은 엄마가 될 자신도 없고, 내 마음 속 ‘난 나쁜 엄마가 될 것이다’ 라는 두려움을 아이라는 존재에 대한 미움으로 표현하던 나는 엄마가 되었고,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세상과 사람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아이는 그런 존재다. 지금까지 내가 바라보던 세상을 통째로 바꾸는 엄청난 파워를 지닌 존재. 저 작은 몸으로 온종일 뭘 하나 싶었는데, 엄마에게 사랑이 뭔지 가르쳐 주고 있었다.
딩크족을 잠시 꿈꿨던 여자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을 달리 보며 살아가고 있다.
나 이제 사랑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 내가 속으로 비꼬며 부러워하던 아기 엄마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전하고 싶고, 노키즈존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보며 박수치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내 비록 커피는 맛도 못 느끼고 원샷할지라도 콧구멍에 어떻게든 바람 쑤셔 넣고 애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나온 사람들을 팔자 좋은 여편네라고 폄하했고, 나를 포함한 모든 어른들이 거쳐간 민폐의 시기를 지나는 아이들을 시끄럽고 지저분하다며 성가셔했다.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괜히 나왔네. 그냥 집에나 있을걸’ 속으로 후회하며 쩔쩔매는 부모에게든, 맘껏 에너지 분출하며 돌아다니고 싶은데 앉아 있으려니 답답했던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눈인사라도 해줬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