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된 축복

by 일상채색가 다림

나는 세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내가 키우고 있는 아이들 소개를 잠시 해보겠다.


첫째는 우리 시어머니 아들이다. 남편이라고 부르는데 가끔(이 아니라 자주) 이 사람 또한 내가 거둬야 할 자식 같은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 분명 성인이 돼서 나랑 결혼을 했는데, 가끔(이 아니라 자주) 이 사람을 키우고 보살펴야 하는 존재가 시어머니라는 여성으로부터 나에게 바통 터치가 된 느낌을 받는다. 내 남편은 흔히 말하는 '신수가 훤한 타입'이 아니다. 물론 본인은 자기 앞가림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신혼 때는 그런 믿음을 부숴버리고 싶었는데 짧은 시간 부딪혀 본 이후, 그 믿음을 깨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차라리 그렇게 믿고 살도록 내버려 두는 게 내가 덜 피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그가 나를 키운다고 생각하며 같이 '살아준다'라고 착각하게 내버려 두고 있다.


둘째는 진짜 내 아들이다. 얘는 말 그대로 내가 다 먹이고, 입히고, 놀아주고, 재우고, 씻겨준다. 손이 정말 많이 간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키우는데 이렇게나 손이 많이 가는 것을 내가 제대로 알았더라면 난 아이를 낳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철저하게 조작되고 감춰진 "육아? 모성애? 일단 낳아봐! 알아서 다 육아 만렙이 돼!" 시스템의 희생양이다. 나의 목표는 앞으로 남은 17년간 둘째를 여느 대한의 건아들과는 다르게 손이 덜 가는, 신수가 훤한 놈으로 만드는 것이다.


막내는 결혼과 동시에 뚝 떨어진 집안일이라는 놈이다. 얘는 도무지 어디서 왔는지 처음에는 몰랐다. 결혼과 동시에 나는 내가 부엌과 화장실이 더러워지는 것을 매우 못 참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가뜩이나 싫어하는 요리는 부엌을 더럽히는 행위였으므로 최대한 하지 않았고, 며칠만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마룻바닥에 먼지가 눈송이처럼 모여 굴러다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히 어제도 빨래를 한 것 같은데 돌아서면 가득 차 있는 빨래 바구니도 내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모든 것을 나의 엄마가 미리 다 해주었기에 내가 30년 넘는 세월 동안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자식들이 나를 향해 날 좀 보살펴달라고 악을 쓰고 손을 벌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내 배로 낳은 둘째는 실제로 그러긴 하지만, 첫째와 셋째는 날 향해 울부짖지 않음에도 그들의 미친 존재감은 나로 하여금 그들이 실제 울부짖는 것처럼 압박을 줄 때가 있다. 특히 나에게는 집안일이 주는 압박감이 상당하다. 무생물인 주제에 어찌나 나만 보면 악을 써대는지.


그릇이 가득 쌓인 설거지통(얘는 식기 세척기 이모님 덕분에 요즘 덜 지른다), 발바닥에 까끌거리며 닿는 먼지의 촉감, 세면대와 욕조에 낀 물때, 다 돌아간 건조기 안에 들어있는 빨랫감, 온 집안에 널브러져 있는 아이의 장난감과 책.. 모든 살림들이 나만 보면 그렇게 소리를 질러댄다. 수시로 숨이 막혀온다. '나 이제 그만 나갈래!'라고 소리 지르고 집 밖으로 도망가고 싶다. 내가 돌봐야 할 살림살이가 없는 곳으로 떠나 나를 해방시켜 주고 싶다.




비글부부 하준파파는 유명 SNS 인플루언서이자 아내와 함께 사업체를 운영하는 두 아이의(곧 세 명이 될 예정) 아빠다. 우연히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다 아이에게 온 세상 오두방정을 떨며 이유식을 먹이는 영상을 보고 너무 재밌어서 팔로잉을 했다. '저렇게 육아를 즐거워하다니. 나랑 정반대의 사람들이군' 하는 생각으로 지켜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가정임을 알게 되었고, 특히 하준파파의 신실한 신앙심에 더 호기심이 생겨 그들의 일상을 종종 지켜보게 되었다.


얼마 전 하준파파가 CBS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했다고 해서 보게 되었고,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아내와의 러브스토리,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가슴 아픈 둘째의 이야기까지 덤덤하게 털어놓았다. 아이를 잃은 직후 출연했던 세바시 영상보다는 감정을 추스른 모습이었지만, 고작 6개월 된 아이를 심장마비로 갑자기 하늘로 떠나보낸 아비의 마음이 어찌 덤덤할 수 있으랴.


그날 평소보다 이준(둘째)이는 토를 많이 했고, 일을 하며 아이 둘을 케어해야 했던 하준파파는 많이 지쳐있었다고 했다. 계속 토를 하니 여러 번 아이를 씻기고 주변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 입혀야 했을 것이다. 나도 율뽕이가 돌 지난 후에도 가끔 게워낼 정도로 자주 토하던 아기라 고충을 잘 알지만, 참 성가신 일이다. 다량의 빨랫감과 코를 찌르는 독한 토 냄새가 수반된다. 토사물이 주변 가구나 물건, 바닥에 많이 묻었을 경우 바로 닦아내지 않으면 토 냄새가 배이고 굳어서 잘 닦이지 않으니 즉시 청소도 해야 한다.


장례가 끝나고 아이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간 그는 아이의 침대 옆에 그날 그가 화가 나서 던졌던 손수건을 발견했고, 아이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며 울었다. 지금 다시 이준이가 돌아올 수만 있다면, 세탁소를 해서라도 백만 장의 손수건을 빨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는 끊임없이 집을 어지르고, 옷을 더럽히고,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사고를 친다. 그는 이것이 그야말로 '위장된 축복'이었다고 말한다. 집이 더럽혀지기 때문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행복.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둔 그들의 흔적.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하지 않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돼지우리가 된 집을 보며 늘 나는 숨이 막혔다. 빨리 이걸 다 치우고 싶은데, 싱크대를 반짝거리게 닦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나에게 와서 들러붙는 아이가 나를 더 숨 막히게 했다. 살림살이도 질세라 날 보며 소리를 지른다. 날 빨리 치워달라고. 난 이도 저도 하지 못한 채 중간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더러운 집도 포기할 수 없었고, 아이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인가 싶은 순간들. 하준파파의 고백을 들으며 너무 당연한 것이겠지만 막상 닥치면 당연해지지 않는 것을 한번 더 깨달았다. 나에게 중요한 것, 내가 집중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내가 누릴만한 자격이 있어서 누리는 것이 아닌 것인데 불평만 하는 나의 오만함까지도.


남편은 손은 좀 가지만 따박따박 월급 안 끊기게 회사 다닐 정도는 앞가림하니 그걸로 됐고, 살림살이야 필요한 것만 놔두고 비워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런 첫째가 있으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둘째를 만났고, 내 사랑 둘째가 어지르는 집이니 눈 딱 감고 좀 치우며 사는 거지 뭐. 덜 중요한 것은 내 손에서 빼버리고 좀 더 중요한 것을 손에 쥐는 삶. 어렵지만 내려놓을 줄도, 더 잡을 줄도 알아야 한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보이지 않는 나의 감춰진 행복. 보물찾기 하듯 야무지게 찾아내서 감사하며 누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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