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다이노스 이용찬 통산 18번째 100세이브 달성
복잡해서 끌린 것 같다.
한참 마음이 복잡한 시기에 야구를 접해서 그런지 나처럼 복잡한 야구가 끌렸다. 복잡함에도 내 팀이 이기고 내 선수가 잘하면 저절로 쉬워지는 종목이라 내가 좋아하는 것에 추가해놓고 힘든 날 꺼내보면 좋을 것 같았다.
볼/스트라이크 판정부터 애매모호한 게 많고, 20년 가까이 봤으면서 아직도 헷갈릴 정도로 다양한 판정 기준(보크는 아직도 어렵다), 애매한 상황에 다양한 속도로 승부가 갈리는 황당함이 좋았다. 복잡한 룰을 배우며 머리를 쥐어뜯는 것에 희열을 느끼다 보니 야구팬이 되었다.
선수는 심플한 선수가 좋았다. 강하고 빠른 직구가 무기인 투수가 나의 최애 파트였고, 이용찬은 이제 나만의 '정통 우완 강속구 투수 리스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선수가 되었다.
이용찬이 본인의 첫(번째이자 아마도 마지막일) FA를 통해 팀을 옮기면서 나는 두 번째(이자 분명히 마지막일) 팀세탁(응원하는 팀을 변경하는 것)을 마쳤다.
오랜 시간 한 명의 선수를 보고 있으면 선수도 팬도 우여곡절이 많다. 사람의 인생이 매번 승승장구하며 앞으로만 나아가는 경우는 없기에 선수의 커리어 역시 오르막과 내리막이 끊임없이 교차되고 팬은 그 옆자리를 함께 탑승한다.
이용찬의 경우 특히나 여러 가지 종류의 좌절을 안긴 선수다. 선수 본인의 과오로 커리어가 추락한 경우도 있고, 부상이나 수술로 인해 쉬어간 경우도 빈번했다. 작년 FA를 앞두고 네 번째 수술을 한다고 했을 때 그의 팔꿈치가 성한 적이 없었던 것을 아는 나로서는 수술 자체가 충격적인 소식은 아니었다. FA가 코 앞인데.. 굴러들어 오는 복도 차는 놈이구나 정도의 아쉬움.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매번 어려운 길을 골라서 잘도 간다 싶었는데 그 인대를 가지고 시장에 나오겠단다. 기가 찬다.
타 FA 선수들이 모두 계약을 마치고 시즌이 이미 시작했던 올해 초, 제주에서 재활을 하며 쇼케이스를 한대서 한번 더 기가 찼다. 무슨 아이돌 그룹 앨범 발매하는 것도 아니고 뭔 놈의 쇼케이스. 쇼케이스를 하네마네 소리가 들린 이후에도 한참을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고, 내 삶에 치여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드디어 5월 말에 NC 다이노스와의 계약 소식을 접하고 나는 오랜만에 어깨 펴고 초록색 창에 그의 이름 석자를 친다. 그리고 새로운 팀과 계약 전 진행했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계약을 못해 FA 미아가 되었다면 영원히 보지 못했을 짠내 가득한 인터뷰 영상.
한 번씩 멘탈이 나갈 때가 있어요.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매트를 깔고 러닝을 하고 스트레칭을 하면 매년 (구단에서는 선수들과 같이) 했는데 혼자 하니까.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그럴 때 기운이 확 떨어져요
프로 선수는 늘 통증을 안고 산다고 말하던 사람이 이번에 재활이 정말 잘 되었다며 하나도 안 아프다고 말한다. 그리고 눈에 띄게 높아진 팔각도로 투구를 하는 영상까지. 안 아픈 이용찬은 밥값을 오지게 한다는 것을 십수 년의 덕질로 학습했기에 나도 확신이 있었다.
내 예상대로 아프지 않은 이용찬은 본인이 돌아온다고 예언한 시기에 정확히 복귀했다. 복귀 후 첫 수훈선수가 되어 인터뷰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짤막하게 인터뷰 영상 첨부.
모두가 넌 안된다고 할 때 보란 듯이 해내고 또 아파도 나는 이미 재활 마스터라 다시 수술하고 재활하면 된다고 말하는 미친 배짱. 1차 지명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후(비록 굴곡은 있었어도),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프로 선수가 무적 상태를 겪더니 내 팀에서 공 던질 수 있어서 좋다며 인생의 참된 깨달음까지 얻으셨다.
열반의 경지에 오른 멘탈과 무섭게 빠른 공을 장착하고 다시 나타난 나의 우완 정통파 강속구 투수.
자고로 덕후에게는 ‘내가 이 사람 팬이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다. 특히나 야구판에서 찾기 힘든 미덕을 갖춘 희대의 난 놈을 내가 좋아했다니.
그리고 뭐든 쉽게 가는 법이 없던 선수님은 프로 통산 100세이브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을 거듭하다 드디어 오늘, KBO리그 역대 18번째로 100세이브를 달성했다.
이제 100세이브 하고 마무리는 좀 넣어두자. 내년부터는 다시 선발 하자. 꿈이라던 100승 100세이브. 100세이브 먼저 했으니 이제 100승 가즈아. 그래야 내가 로테이션 맞춰서 율뽕이 데리고 창원으로 가지.
앞으로도 잘 부탁해, 너의 인대씨. 제발 이제 아프지 마.
야!! 내가 이용찬 팬이다!!!
2021. 10. 06.
계속 99세이브에서 정체되길래 마음을 정리하는 글을 쓰면 100세이브를 할까 싶어 낮에 글을 써두었는데 아기 재우는 사이 100세이브를 했다고 해서 아주 소름이 돋았습니다.
참고 기사 및 영상
1) http://naver.me/FWJ5hBXT
2) https://www.chosun.com/sports/sports_photo/2021/05/20/MSL3VPXURCH6O6LTFF7Y3NKCHU/
3) https://youtu.be/ZLyH8WSBAQ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