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첫사랑이었다고

프랑스 파리

by 일상채색가 다림

맞아. 그곳은 감히 나의 첫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야.


다만 너무 많은 사람에게 첫사랑인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뿐. 마치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어냐 물었을 때 명량이나 극한직업이라고 말하는 느낌과 비슷한 거지. 파리는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이 되는 도시야.


도시가 가진 매력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이토록 모든 세대에 걸쳐 입에 오르내리는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사실 파리가 모든 것이 다 좋은 도시는 아니야. 나 역시 파리에서의 추억이 아름답지만은 않았어.


인사말과 기본적인 생활 불어 몇 마디만 할 줄 아는 상태로 커다란 이민 가방을 들고 기차역에 내렸던 스무 살의 나는 드디어 파리에 왔다는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었지. 몽테뉴 거리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 일주일은 아주 완벽했어. 인생 첫 인턴십 경험을 파리에서 쌓는 선택을 한 나 자신이 매우 자랑스러웠지. 하지만 이런 나의 자랑스러움은 첫 출근 날 바로 깨져버렸어. 숨 쉴 틈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홀과 키친에서 불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허둥대는 동양 여자애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거든.


쉬는 날에는 유럽 여행 겸 나를 보러 온 친구들과 함께 혹은 나 홀로 파리 이곳저곳을 여행하듯 돌아다녔어. 나중에는 한국에서 사 온 여행책자도 들고 다니지 않고 그저 내 발길이 이끄는 대로 온종일 도시를 누볐지. 한국에서 일을 했더라면 볼 수 없었을 다양한 전시회와 공연, 구역마다 특색 있는 동네의 분위기와 맛있는 음식, 매혹적인 빈티지 서점과 상점들. 따가운 공기 속에 5일을 어찌어찌 버티면, 전혀 다른 맛의 달콤한 공기가 나를 위로해 주었어. 그렇게 이틀을 달콤함 속에 취해 살다가 다시 5일 동안 두들겨 맞는... 그런 삶이었어.


원래 사랑이라는 게, 특히 처음 해보는 사랑은 그런 거잖아. 어떻게 매 순간 좋을 수 있겠어. 서로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서 싸울 때도 있는 거고, 그러다가 또 얘 없으면 죽어버릴 것 같고 그런 거지. 그렇게 다양한 감정이 차곡차곡 밀푀유처럼 쌓이면 그것이 그들의 역사가 되는 거지.


나만의 역사가 진하게 만들어진 이 도시를 너와 가보고 싶어. 너의 눈에는 너무 매혹적이어서 내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하다 끝나버린 첫사랑인 이 도시가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해. 이제는 종이 지도 대신 구글맵을 보며 너와 파리의 구석구석을 누비게 되겠지. 하루 정도는 구글맵을 끄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돌아다니자. 너의 따뜻한 손을 붙잡고 찌린내 나는 파리 지하철을 타고 그냥 발음이 마음에 드는 아무 역에나 내려서 돌아다니고 싶다. 그러다가 보이는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고, 조그마한 동네 빵집에서 네가 좋아하는 빵도 사 먹자.


너와 함께라면 그곳에서의 기억은 모두 달콤한 향이 날 거야.





2021. 11. 03

너와 가보고 싶은 곳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