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곳이 삶에 좋진 않아

스위스 뉴샤텔

by 일상채색가 다림
뉴샤텔(Neuchâtel)은 독어로는 노이엔부르그(Neuenburg)라 불리며 풍부한 문화적 건축적 과거 유산을 자랑한다. 뉴샤텔 성과 12세기에 건립된 콜레지아떼 성당(고딕 스타일로 중세 때 건립되었으나 후에 개축됨)은 이 도시의 상징적 건축물이다.
- 스위스 관광청 홈페이지 (https://www.myswitzerland.com/ko/)


어쩌다 이름도 낯선 뉴샤텔이라는 도시에 가게 되었냐고?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아. 이미 많은 한국 학생들이 재학 중이라는 다른 학교를 피해서 엄마가 선택한 학교가 마침 뉴샤텔이라는 도시에 있었을 뿐. 서울이라는 메가 시티에서의 삶이 익숙했던 엄마에게 뉴샤텔은 작디작은 시골 도시였지만 그들에게는 무려 뉴샤텔 '대학교'가 있고, 상당히 큰 크기를 자랑하는 뉴샤텔 '호수'도 있는 큰 규모의 도시였어.


학교에 입학하던 해, 처음 뉴샤텔 역에 내렸을 때 기억이 나. 감기에 걸린 상태로 비행기를 타면 중이염이 온다는 것을 몰랐던 엄마는 비행 내내 엄청난 귀 통증에 시달려야 했어. 학교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한국에서 가져온 상비약을 먹어봤지만 소용이 없었지. 이럴 땐 얼큰한 김치 콩나물국에 밥 말아서 후루룩 마시고 절절 끓는 방바닥에 누워 비지땀 흘리며 한숨 자고 일어나면 딱 좋겠는데. 엄마에겐 얼큰한 국물도, 뜨끈한 방바닥도 허락되지 않았어. 기숙사 체크인을 할 때 오느라 고생했다며 받은 한 입 베어 먹다 이가 뽑힐 것 같은 딱딱한 샌드위치와 미세하게 뜨끈함이 느껴지는 히터가 전부였지.


3년 동안 학교를 다니며 엄마는 수도 없이 울고, 외로웠고, 심심했으며 때로는 절망했단다. 한국과 캐나다에서 잠깐 배운 미국식 생활 영어로는 영국(혹은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억양을 구사하는 교수님들이 토론식으로 이끌어 가는 교과 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택도 없는 일이었어. 교수님이 하는 말과 전공 서적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토론 위주로 흘러가는 수업에서 엄마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단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있는 엄마에게 교수님과 (토론식 수업 방식이 매우 익숙한) 유럽 학생들은 '왜 너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듣기만 하냐'며 어서 네 의견을 말해보라고 채근했어.


일정량의 눈물과 한숨을 채우며 교과 과정에 익숙해지고 나니 이번에는 이곳이 문제였어. 먼지 한 톨 없는 깨끗한 자연과 넓디넓은 호수를 유유자적 누비는 백조 떼, 늦어도 4시면 모든 회사와 상점이 문을 닫고 저녁 7시만 돼도 도시 전체는 음소거가 되어 버리는. 이걸 평화롭다고 해야 할지, 황량하다고 해야 할지. 24시간 할 것이 너무 많아 숨 막히는 도시에서 살다 온 엄마는 그 적막함을 버티기가 어려웠단다. 원망스러웠어. 스위스의 깨끗한 자연이, 기가 막힌 워라밸이, 눈 씻고 찾아봐도 무해한 시설들만 있는 것이.


맞아. 모든 곳이 살아가기에 좋은 곳은 아니야.


스무 살의 나에게는 뉴샤텔이 가지고 있는 깨끗한 자연환경과 공부 말고는 할 것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던 무료함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거야. 아이러니한 것은 뉴샤텔이 가지고 있었던, 엄마를 숨 막히게 했던 것들이 지금 엄마의 삶에 필요한 것이라는 거야.


여행지도 그렇지만 특히 '삶을 꾸려가는 곳'을 결정할 때는 여러 가지 요인이 너의 결정을 좌우하게 돼. 남들에게 행복했던 곳이 너의 삶에선 불행의 씨앗을 품고 있는 곳일 수도 있는 것이고, 너의 스무 살에 최적화되어 있던 곳이 너의 마흔 살에는 떠나고 싶어 미쳐버릴 것 같은 곳이 될 수도 있는 거야. 모든 곳이 평생 너의 삶에 좋은 곳은 되지 않는단다. 네 삶의 때에 맞는 곳을 제 때 잘 찾는 것. 네가 그것을 잘할 수 있게 엄마가 많은 것을 보여주고 생각하게 해주고 싶어.


평생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맹세한 그곳이었지만, 그래서 엄마는 너와 이곳을 가보고 싶어. 엄마의 한숨과 원망이 곳곳에 서려있는 죄 없는 뉴샤텔의 호수를 너와 함께 걸어보고 싶어. 아마도 너는 '이렇게 좋은 데를 왜 싫어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엄마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뒤늦은 변명이자 사과를 늘어놓겠지.


엄마의 스무 살 삶에는 맞지 않았을 뿐, 뉴샤텔은 죄가 없다며 말이야.






2021. 11. 19.

너와 가보고 싶은 곳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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