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바로 여기야

캐나다 밴쿠버

by 일상채색가 다림

엄마의 열아홉 살 가을은 밴쿠버에서 시작되었어.


할로윈부터 시작되어 크리스마스를 지나 새해까지 이어지는 축제 기간을 밴쿠버에서 지낼 기회가 생겼지. 사실 엄마는 밴쿠버에 가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단다. 스위스 유학을 앞두고 가까운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기로 결정하고 학비를 입금하기 직전, 엄마의 행선지가 캐나다로 바뀌었기 때문이었어. 엄마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야.


밴쿠버행이 결정되고 비행기표와 엄마가 다닐 어학원 학비 결제까지 모두 끝났던 시기까지도 엄마는 영국을 가겠다며 버텼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딜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여기를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말이야.


첫 만남은 일그러진 채로 시작했지만 엄마가 밴쿠버와 사랑에 빠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단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도시였어.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사는 것에 문제가 없을 만큼 K-인프라도 완벽하고, 말 그대로 '대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으면서도 모든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 살기에 너무 편안했어. 영화 속에서나 보던 코스튬을 차려입은 귀여운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닐 텐데 자신들의 집과 정원에 정성스럽게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은 엄마에게 매 순간이 새로운 세상이었단다. 환상적인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일주일 간 즐길 수 있는 쇼핑 대축제는 덤이었어. 사람으로 발 디딜 틈 없는 쇼핑몰에서 핸드폰이 없어 무전기를 나눠 들고 지인들과 전투적으로 쇼핑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네.


엄마가 수도 없이 걸어 다니던 밴쿠버 이곳저곳을 너와 함께 걷고 싶어. 개스타운 증기 시계도 보고, 대비 스트리트에 있던 엄마의 최애 레스토랑에서 같이 밥도 먹고, 키칠라노 비치에서 여유롭게 누워서 뒹굴거리기도 하자. 그랜빌 아일랜드 마켓에서 장도 보고, 스키도 타러 가야지. 든든하게 차려입고 밴프 국립공원도 가보자.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폭포도 구경하고, 너의 눈만큼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호수도 실컷 보고 오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와 크리스마스를 보낼 곳은 바로 여기야.






2021. 11. 19.

너와 가보고 싶은 곳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