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변호사로 일하며 생긴 아침 루틴이 있다.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학교폭력 관련 기사 등을 훑어보는 것이다. 학폭심의위원회에서 다양한 사안들을 처리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위원장인 내게 배정된 사안에 한해 심의를 진행하고 있어 학교폭력과 관련한 전반적인 동향까지 한눈에 파악하기엔 한계가 있다.
기사를 보면 최근 더욱 문제되고 있는 이슈는 무엇인지 등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어 학교폭력 변호사로서의 업무에도, 사안 처리에도 큰 도움이 된다.
최근 ‘학교폭력’ 키워드를 검색하면서, 송혜교 주연의 ‘더글로리’라는 넷플릭스 드라마에 대해 접하게 되었다. 김은숙 작가의 장르 도전과 송혜교의 연기 변신 등을 이유로 이미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었던 ‘더글로리’는 포브스의 찬사 속에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5위를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렇게 화제성 넘치는 드라마 ‘더글로리’는 다름아닌 학교폭력을 주제로 하고 있었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고등학교 시절 끔찍한 학교폭력에 시달렸던 피해자 문동은(송혜교)이 자신의 온 생을 걸고 치밀하게 준비한, 학교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처절한 복수에 관한 이야기.
이렇게나 큰 이슈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가 학교폭력을 주제로 하고 있다고 하니, 학교폭력 변호사로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넷플릭스 멤버쉽을 재개했다(핑계였을까).
‘더글로리’ 속 문동은은 박연진, 전재준, 이사라, 최혜정, 손명오에게 지속적으로 심각한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다. 박연진 무리는 동은을 체육관에, 또 동은의 달방에 가둔다. 수치스러운 일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는 동은의 몸을 뜨겁게 달궈진 고데기와 다리미로 지진다. 소리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동은의 입을 막겠다고 강제로 입맞춤을 한다. 너무나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면서도 이들은 오히려 즐겁다는 듯 킥킥 웃어댈 뿐이다.
꼭 학폭 변호사가 아니라더라도, 박연진 무리의 행위가 학교폭력에, 또 심각한 범죄행위에까지 해당함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피해학생이 자퇴한 경우라 할지라도, 학교폭력이 재학 중 일어났고, 가해학생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학폭 신고가 가능하다(이 사실을 몰라 학폭 신고를 포기했다가, 우리 법인을 통해 사안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경우도 많다).현 시점에서 내가 학폭위 위원장으로서 이런 내용의사안을 심의하게 된다면 학교폭력 관련 5가지 인자인 고의성, 심각성, 지속성, 반성정도, 화해정도에서 모두 최악의 점수가 부여했을 것이고 당연 퇴학처분을 고려했을 것이다.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고 이를 이용해 사람을 상해한 경우이므로 특수상해죄가 문제된다. 감금죄, 협박죄, 강요죄, 강제추행죄까지도 물론 문제 되는 사안이다. 학폭위 처분과 별개로 형사상 처벌까지도, 민사상 손해 배상까지도 이루어져야만 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부모도, 선생도, 심지어 경찰까지도 동은을 돕지 않는다. 마치 돈이 권력이라는 것처럼, 모두가 소위 ‘잘 사는’ 박연진과 그 무리들을 위해 동은이 당한 피해를 은폐하기에 만 급급하다. 부모는 아이 자퇴 사유가 학교폭력이 아닌 부적응인 것으로 합의하기로 하고 돈을 받는다. 돈을 받고 더 이상 본 학교폭력 사안과 관련한 일체의 이의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부제소합의까지 한다. 아이가 있는 엄마로서 치가 떨렸다. 아직 어리고 여린 동은이 느낀 고통이 어땠을까.
남편은 이렇게까지 심각한 학교폭력 사례가 실제로 있을 수 있을지 물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더 끔찍하고, 잔인한 일들도 학교에서 벌어진다. 학교폭력 변호사로서 피해학생들로부터 듣기만 했던 이야기들이 마치 영상으로 재현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더글로리’를 보면서 내가 하는 일이 그저 단순한 업무가 아님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학교폭력 변호사라는 일에 대해, 또 학폭위 위원장이라는 자리에 대해 조금 더 무거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