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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해정 Sep 20. 2020

색에 대하여

색감을 익히는 법





색에 대하여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하긴 하였으나
이론이라 실제 그리기 능력은 젬병이다.
그나마 디자인의 영역은
센스를 발휘할 수 있으나
손으로 직접 그리거나 칠하는 전통적인
회화는 범접하지 못하는 영역이었다.


그중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것은
스케치였다.

무언가를 보고 똑같이 재현해낸다는 것.

그 능력이 부러웠고
이것만큼은 난 안될 거 같단 마음이었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던가.

그래서 그림을 배운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로 치부되었고
내가 재능을 보여온 부분부터
배워왔던 것이다.


내 직업이 직업인만큼
색과 형태에 매우 촉이 예민하다.

지하철을 타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웹서핑을 하다가도
늘 내 눈에 잡히는 것들.


특히 색에 민감하고
색채 조화에 신경을 쓴다.


내가 처음 드로잉을 배우기로 결심했을 때에도
색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이 없었다.


내가 걱정했던 것은

 사물을 관찰하는 력이 있는지
그것을 재현해낼 손(힘)이 되는지
입체를 표현 가능할 것인지
붓으로 물의 농도를 잘 맞춰
물감이 종이에서 울지 않게 할 것인지

이런 문제들이었다.


의외로 이런 부분들은
연습을 통해 나아진다.



몇번의 연습을 끝내면
인체 형태를 잡게 되고

 종내는 어느정도
몸의 곡선과 활동성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드로잉을 해본 후에야
스케치 천재라는 에곤쉴레의 가치를
뇌 깊숙이 이해하게 되었으니
사람은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생명체가 맞다.



어릴 때라면 몰라도
나는 색채를 전.공.한 사람이 아닌가.

내가 색칠에서 문제되는 점은
물감에 대한 이해도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믿음은 첫 수채화에서부터 무너졌다.




그림을 배우는 단계니까
그림의 센스를 파악하는 단계니까
드로잉도 똑같이 따라하려다보면
어느정도 비슷해지던데
색채 영역도 그렇겠지.


나는 색채전공자니까 배색 센스가 당연 있지!


응 아니야.


조잡함.

물감이 12색밖에 없는 탓이야!
라고 하기엔 그저 조잡.

사랑스러우려다 만,
어떤 컨셉없이 그냥 파스텔로 떡칠.
강조해야할 부분은 쓰루하고
강조하지 말아야할 부분을 강조하기.


명품을  베껴낸 짝퉁처럼
조잡해보이는 그림에 망연자실했다.


어느정도 스케치를 비슷하게 해내서
고무되었고
색칠은 아무래도 되겠지
번지지만 말자ㅡ
는 나의 생각을 가뿐히 짓밟아주신 작.품.


전체적인 색조화보다
원본과 최대한 똑같이 그리고 칠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있었을 뿐

종이 바탕색, 질감, 내 물감 색 등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기에
이도저도 아닌 아이가 나와버렸다.


컬러링을 망치고서야
컬러링이 정말 어려운 영역임을
 이제서야 깨닫는 것이다.



많은 컬러조합을 보아왔고
머리속에 있다 믿어의심치 않았는데
이것을 재현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흔하디 흔하고
뻔하디 뻔하다고 생각했던
회화의 색감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콜롬버스의 달걀이 아니던가.
남이 하는 건 쉬워보이나
막상 생각해내지 못하는 그것.


뻔한 것을 해내는 것도 재주다.



그래서 나는 요즘 스케치가 끝나고
스캔을 떠서 수십장의 복사본을 만들어둔다.

복사본에 이런 색감 저런 색감을 도전하며
내 마음 속의 색감에 귀를 기울인다.

평소에 손이 가지 않았던 색도 집어본다.
색선택의 자유도를 높이니
컬러링이 이제 재밌어진다.

더이상 스트레스가 아니다.
더더욱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고
내 마음에 맞는 색조합을 종내에는 찾는다.



각자 다른 뻔함이 10개면
10개의 레퍼토리가 생긴다.


완벽한 한장의 그림을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기보다
수십번의 뻔함의 노가다가
내가 진짜 찾던 완벽한 한장에
더 다가가는 왕도였던 것이다.








색안경끼고 보는 세상


컬러아나? 컬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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