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앱 이야기 3. 결국은 마법처럼 엔딩

그 마법이 우리에게 없었더라면...

by colorsense

이제 Si-fi guy 마지막 이야기이다.


생일을 함께 보내고 나서 계속 그와 알아가는 시간을 갖기로 서로 약속했다.

평일에 만나 생일을 챙겨준 것이 너무 고마워서 점심을 대접했다. 그야말로 데이트 성지중에 하나인 익선동에서 살짝 고급스럽고 로맨틱한 분위기의 퓨전 한식당을 예약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었다.

유러피언이었지만 음식을 나누는 것에 익숙했던 그 사람. 고등학교 시절을 중국에서 보내고 한국에 종종 놀러 오고 한국 친구들도 있던 경험들이 결국 오늘날의 그를 한국에 데려다 놓았고 그 사실이 우리를 만나게 해 준 운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말했다. "내가 한국에 왔었던 2021년에 너를 한국에서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나는 말했다. "과거의 나였다면 우리는 결국 잘 맞지 않았고 타인이 되었을 거야.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더 성숙하니까." 이런 말들을 나누며 마치 눈부시게 아름다운 앞날을 함께 할 것을 확신하며 짧은 2시간을 너무나 달콤하게 보냈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스케줄을 서로 체크하는 와중에 그에게서 다가오는 밸런타인데이에 막상 못 만난다는 대답을 들었다. 앞서 얘기한 대로 난 늘 특별한 날에 기대감이 없이 살아온 터라 '밸런타인데이 그게 뭔데? 먹는 건가?' 헸었는데, 이번만큼은 진심으로 아쉬웠지만 섭섭함을 느끼거나 토로하기에도 너무 이른 관계의 단계였다.

나는 냉정함을 찾으며 괜찮은 척하고 그날 하루 종일 뭐 할 것인지만 그에게 물었다.

"그날, 친구의 2살 베기 여자 아이를 돌볼 거야"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그와 아이를 케어하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짧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속으로는 '사실, 진짜 만나고 싶으면 잠깐이라도 시간을 만들면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약속이 하루 종일 있는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도 교차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일과 생활 패턴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서 그냥 이쯤에서 더 이상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결국 밸런타인데이 날에는 이미 약속된 그의 스케줄 때문에 그 전날인 금요일 저녁에 잠깐 만나서 시간을 보냈다. 몸이 안 좋았던 나를 위해 함께 죽을 맛있게 먹어줄 수 있는 외국인 썸남? 이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내가 알기로는 외국인들에게 죽은 그렇게 인기 메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날은 의도적으로 그가 내게 가질법한 좋은 이미지를 깨고 싶어서 화장도 아주 옅게 하고 나가 내 얼굴의 잡티를 보여주고 싶었다. 정말 화장을 거의 하지 않으니 가볍고 여러모로 편하긴 했지만 정말 벌거벗은 기분이 들어서 자신감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형광등 아래에 적나라한 내 얼굴을 보여주기가 부끄러웠다. 그래도 그는 관여치 않아 했다.

그리고 초콜릿도 준비하려고 했는데 의도치 않게 이전 일정이 바빠서 준비하지 못하고 그와 함께 그가 직접 좋아할 만한 초콜릿을 골라 즉석에서 선물하였다. 반면 그는 수제초콜릿 수준은 아니지만 나와는 딴판으로 미리 초콜릿을 사서 주머니에 넣고 아무것도 없는 척하다가 나중에 나에게 또 한 번 깜짝 선물을 하였다.

준비성 없는 내가 너무 부끄러워질 정도로 '이 남자... 진짜... 너무 괜찮은데?' 싶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아직도 알아가야 하는 부분도 많았고 왠지 모르게 안도감은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뭐가 그렇게 불안했던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현재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상대방에게 완전한 믿음과 신뢰를 갖도록 하는 사랑을 느끼게 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걸 그에게서 남자친구-여자친구라고 명명하기에도 너무나 이른 시기에 찾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맞이하게 된 각자 보내는 밸런타인데이 날에는 "지금 키즈카페인데 완전 카오스네...", "친구랑 이제 같이 저녁 먹으려고." 하는 문자가 드문드문 오갔다. 나 역시 이날은 친구들이랑 즐기며 놀았지만 은근히 뭔가 편치 않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 그날 마지막에 만났던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친구와의 일정은 너무 취소하고 싶었는데 취소하기엔 너무 늦어서 억지로 나간 거라 기분이 더 오묘했다. (안지 오래되지 않아서 잘 몰랐지만) 그 친구는 정말 말도 말도 안 되게 많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타입이라 차라리 '혼자 집에서 하고 싶은 일이나 할걸' 하는 후회가 계속 밀려왔다. 그렇게 감정노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와는 오피셜 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밸런타인데이를 각자 보내고 전화 한 통 못하고 뜨문뜨문 보내는 문자가 다라는 게 좀 걸렸다. 그래서 그와 잠깐이라도 통화를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중하게 잠깐 시간 좀 내달라고 부탁하고 전화를 했다.

내 기대와는 다르게 그와의 전화가 시작되는 순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키보드 타자 치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하는 잠깐의 통화, 그것도 정중하게 시간 내달라고 까지 했는데... 그는 24시간 업무모드일 수 있는 것이고, 급한 일이 있을 수도 있는 와중에 시간을 내어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머리로는 다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상해버렸다.

그래서 바쁘면 나중에 통화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20여분의 시간 동안 있었던 계속되는 타이핑 소리, 어색한 침묵과 겨우겨우 오가는 어눌하게 느껴지기까지 한 몇몇의 질문과 대화들을 끝으로 통화를 끝냈다. 사실 더 빨리 끊었어야 했는데 이렇게 질질 끌면서 길게 통화를 한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짓처럼 느껴졌다. 그저 차라리 '급한 일이 있으니 다시 내일 통화하자.'라고 듣는 편이 훨씬 더 나았을 것 같았다.

정말 나에게 단 5분도 집중하는 시간을 내어주지 않았다는 점이 가이 충격적이었다. 이 상황이 그전에 그가 말해줬던 나를 찾던 드라마 같은 상황과 그가 말했던 나에 대한 감정과는 많은 격차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본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설사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라면 충분히 솔직한 대화를 통해 개선할 수 있었을 정도의 사안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고 그 이유는 다음에 쓸 글에서 설명해보려고 한다.

여하튼, 나에게 조금의 시간도 내어줄 수 없었던 그의 마음과 어색한 침묵도 괜찮아했던 것 같은 그의 태도에 나는 많은 실망을 했다. 그래서 그의 잘 자라는 안부인사와 다음날 연이어 온 아침인사 문자에 답장을 할 수가 없었다.

그다음 날은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휴일이라 온종일 아이를 케어했기 때문에 더더욱 답장하고 싶지 않았지만 계속되는 그의 메시지와 "어젯밤 통화 때문에 기분이 상한 거야?"라는 그의 직설적인 물음에 답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느끼는 기분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나에게 시간을 줘!"

그는 그러겠다고 하면서도 엄청난 길이의 문자를 몇 차례 보냈다. 결국에는 내가 느낀 감정을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쪼개어 장문으로 하나 보냈고 그렇게 몇 번의 답장을 더 받고는 나는 또 한 번 폭탄 답장을 보냈다.

"내 마음이 전과 같지 않아. 그게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야."

그러자 그는 물론 품위는 지켰지만 정말 내가 봤을 때는 최선을 다해 마음을 돌리려고 하고 사과를 했다. 정말 내가 봐도 말도 안 되게 나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문제는 나의 마음이었다. 원래 이런 태도로 허술하고 미숙하게 사람을 대하지 않는 편이고 충분히 해명을 하거나 기회를 주려는 타입이지만, 그를 위해 나를 위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고 이런 상황을 걸고넘어지며 이별을 말할 만큼 하찮은 존재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저 내가 이렇게 까지 하는 건 그를 밀어내려는 나의 핑계 또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그의 자기 성찰과 반성적인 문자를 보니 차마 내가 간직하던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가 있는 와중에도 집에 돌아와서 10여 분간 통화를 했다. 그제야 그는 모든 상황을 수긍했고 몇 번의 문자가 오간 후, 그와 약 5일간의 데이팅 앱에서의 대화와 단 8일간의 만남은 이렇게 종료되었다.


그가 보낸 문자처럼 이 짧은 기간 동안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마법과 같았고 선물과 같았다. 솔직히 지금도 그 마법이 계속되길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고, 우리가 진짜 인연이고 만날 사람들이라면 나중에라도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작은 희망도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이 타이밍에 나에게 왔다는 게 한탄스럽고 다른 타이밍에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그냥 심플하게 말해 그가 데이팅 앱에서 갑자기 증발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인생을 살면서 이혼 전 고민하던 상황을 제외하면 이렇게 내적 갈등을 겪은 적이 거의 없는데 며칠간은 정말 괴롭기까지 했다. 그래서 몸도 아팠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단 한 점의 후회도 없다. 이렇게 까지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충실했던 적은 없었으니까. 내 선택에 확신이 있다.


그가 나에게 처음 보냈던 3분간의 보이스 노트의 이야기가 평범한 이야기였더라면, 이 마법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진심으로 우리는 지금도 함께였을 수 있었고 그걸 확신한다. 그만큼 그는 나에게 현실이기에는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It was so good to be true)

그저 지금의 나는, 내가 쓰는 글을 그가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고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내가 느끼는 크나큰 아쉬움을 대신하는 게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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