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가족들과 함께한 퀘벡주 몽레알(montreal) 9일 여행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내 친구는 2011년 캐나다에서 만난 동갑내기 언어교환 친구였다. 밴쿠버로 이주한 몬트리올 출신 프로그래머였다. 키도 훤칠하고 직장도 탄탄한 친구였는데, 한국 걸그룹 특히 긴 생머리의 청순한 윤아를 좋아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한국말도 더 배우려고 했었던 것 같다.
둘이 정기적으로 공립도서관에서 만나서 영어와 한국어를 배우고 종종 카페 같은 데서 공부도 하고 사담도 나누기도 했다.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연애 얘기도 했었다. 헤어진 한국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 정도로만.(친구랑 나, 둘이 진짜로 공부를 하긴 한 건가 싶다.)
한 두 번 정도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한국인 룸메이트도 소개받고, 친구의 이상한 요리도 대접받았다. 아버지와 낚시 갈 때 사용하던 자기 침낭을 자랑하기도 했는데 내가 들어가 있는데 친구가 장난으로 지퍼를 올려버려서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는 통에 친구도 당황해하며 장난을 멈췄고 이 일을 통해 내가 확실히 약간의 폐쇄공포증도 있는 걸 알았다.
여하튼 짧지 않은 약 9개월의 기간 동안 쌓인 정이 있어서인지, 내가 밴쿠버를 8월 중에 떠난다고 하니 자신도 그쯤 고향으로 휴가를 떠난다고 자신의 고향집에 초대해주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승낙했고 친구의 초대가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약속한 날짜에 비행기를 타고 몬트리올로 날아갔다.
캐나다 속 쁘띠프랑스 몬트리올
몬트리올의 첫인사는 비였다. 친구의 아버지 댁에서 이틀 정도 머물다가 몬트리올로 옮겨왔는데 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했다. 들어서자마자 영어보다는 프랑스어로 된 표지판, 간판들이 있어 퀘벡주에 있음을 실감했다. 몬트리올 시내로 들어오니 고풍스러운 건물도 있지만 예술적인 분위기도 물씬 풍겼다. 다만 차를 타고 슬쩍 보는 풍경이라 구석구석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원래의 목적지인 몽 로열 공원 위에 올라섰는데 비가 와서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아 아쉬웠다. 나중에 후기를 찾아보니 정말 전경이 멋있는 곳이었다. 기회가 닿으면 꼭 다시 한번 와봐야 할 곳이다.
비가 오니 걸어 다니며 산책하기 쉽지 않아 그냥 계속 차를 타고 시내 관광을 했다. 아쉬움에 카메라 셔터만 눌러댔는데 차를 타고 다니면서 찍은 것치곤 나름 선방했다 생각한 사진들이다. 아마 비가 와서 아쉽지만 또 그날만의 몬트리올 시내의 분위기를 담아낼 수 있어서 좋았다.
몽로얄공원 블로그
몬트리올 시내 블로그
올드퀘벡 둘러보기
밴쿠버보다 훨씬 적은 단 2개의 지하철 노선을 가진 몬트리올. 지하철을 타고 구시가지에서 친구의 친구들 두 명을 함께 만났다. 신시가지와는 완벽하게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기가 바로 그 유명했던 드라마 도깨비 촬영 장소가 된 곳이었다.
나는 이 여행에 대해서 계획이 1도 없었기에 그냥 친구들이 가자는 데로 따라다녔다. 그래서 그 예쁜 거리 풍경을 다 보지 못했다. 천천히 혼자 둘러봤다면 눈이 휘둥그레졌을 텐데... 친구들이 그럴 만도 한 것이 그 사람들에게는 그 풍경이 일상이기에, 모든 건물과 풍경들이 아름답고 크리스마스 상점에서부터 다양한 엔틱소품과 가구 등을 파는 곳이 많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사동 가는 느낌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거리를 거닐며 친구들이랑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었고 이른 저녁때는 다시 신시가지 쪽으로 이동해 유명한 멕시코 요리도 먹고, 바에 가서 칵테일도 한잔씩 했다. 친구들도 모국어가 프랑스어라 영어로 서로 소통이 완벽할 수는 없었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역시 여행은 현지 친구들이랑 함께하면 다른 모습으로 그곳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올드퀘백 블로그
따뜻했던 아침 풍경과 수영장파티
황홀한 아침상
친구네 어머니네 집에 며칠 신세를 지는 동안, 따뜻한 집 풍경에 매료되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산부인과 간호사셨는데 직업 때문인지 모르지만 온 집안 구석구석 그녀를 닮은 다정하고 아기자기한 감성이 묻어났다. 욕조는 스파샵에 있는 것처럼 정갈하고 향기 좋은 목욕제품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마 이 집의 분위기를 가장 가깝게 표현하자면 프로방스 풍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 난 이 집에서 매일 맞이하는 아침이 좋았다. 그립던 아들과 그의 손님이 와서 그런지 원래 평소에 이렇게 드시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신선하고 예쁘게 정돈된 아침상을 황송하게 대접받았다. 갓 구운 빵을 공수해오시고 신선한 과일과 치즈, 버터 그리고 요구르트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셨다. 이 부드러운 강렬한 이미지는 내 뇌리에 오래도록 남아서 결혼 후 토요일 아침상을 이와 같이(반 정도 비슷하게?) 차려 남편과 함께하는 그림 같은 아침밥 로망을 이루게 해 주었다.
아침을 느긋하게 즐긴 후 블루베리 파이를 친구 여동생과 같이 만들고 친구 어머니랑 산책을 다녀온 뒤 친구 어머니의 컴포터블을 타고 바람을 실컷 맞으며 그녀의 남자 친구 집으로 이동을 했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서 완벽한 중년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수영장파티
무대연출가로 일하시던 친구 어머니 남자 친구분은 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분이었던 것 같다. 큰 수영장이 딸린 2층 집을 소유하고 계셔서 그곳에서 풀파티를 하기로 했다. 친구 이모 댁 식구들과 동생의 친구까지 총출동해서 음식도 준비해오고 큰 수영장에서 애들처럼 게임하고 물장구치며 놀았다.
난생처음 이런 풀파티도 해보고 친구의 배려로 다정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참 즐거웠고 여유 있는 삶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여러모로 편하게 그리고 기억에 남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지금도 감사하다.
몬트리올에서의 일상 블로그
수영장파티 블로그
생애 첫 다이빙하기
친구의 집 근처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던 강가인 St.Jean De Matha Liverside로 물놀이를 하러 가기로 했다. 물놀이도 하면서 캐나다의 대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이날은 며칠 전에 본 친구의 친구와 전날 수영장파티에 오지 않았던 다른 사촌들도 함께 소수정예로 수영을 하기로 했다.
함께 일광욕을 하다가 어느 정도 높이가 있는 절벽에서 사람들이 신나게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우리도 도전해볼까? 누군가가 도발을 해서 나도 겁 없이 다이빙을 시도해봤다. 뛰어들고 나면 평형은 못해도 자유형으로 빠져나오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뛰어들었다.
그 떨어지는 기분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나고 중력의 힘으로 물속 깊숙이 나는 들어갔다. 그때의 기분은 마치 침낭에 갇힌 기분이랄까... 수경도 없는데 생각보다 너무 쑥 들어가서 계속 발을 차도 언제 올라갈지 가늠이 안가 극도의 공포감이 밀려왔다. 수영을 할 수 있는데도 너무 당황해서 허우적대니 친구가 뛰어들어 뭍으로 나오는 걸 도와주었다. 너무너무 무서워서 번지점프는 도전할 수 있어도 다이빙은 절대 못할 것 같다.
몬트리올에서의 물놀이 블로그
연일 계속되는 가족모임
거의 먹고 놀고 대접받고 이렇게 거의 일주일을 지냈다. 캐나다의 일반적인 휴일 보내기의 방법은 가족과의 식사와 수다인 것 같았다. 같은 곳이지만 전날 못 왔던 다른 사촌들이 오가며 식전에는 가볍게 맥주나 와인, 식사로는 나를 위한 배려인지 모르지만 쌀밥과 샐러드 그리고 연어구이 한 접시를 먹고 강제적으로 불어 청취 타임도 가졌다. 친구가 종종 영어로 말을 걸어줘서 다행이었다.
저녁에는 집안으로 들어와 댄스타임도 가졌다.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분위기에 나도 그 당시엔 20대였으니까 알고 있던 소녀시대 훗 안무를 선보였다. 그랬더니 급 표정들 진지해지며 연습 많이 한 춤 같은데?라고 말하며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런 때가 있었다는.
내가 야간 버스를 타고 떠나는 마지막 날에는 친구의 다른 친척집으로 초대를 받아서 그동안 내가 만났던 친구의 모든 가족들을 볼 수 있었다. 3층 저택이라 집 구경을 다 할 시간도 없이 어색하게 쭈뼛거리며 서있었지만 즐거운 분위기 속에 있는 것 자체가 좋았다.
여행의 즐거움은 낯설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그려낼 수 있지만 결국은 함께한 사람으로 채워지는 게 가장 강력한 여행의 기억이 되는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몇 년이 지나도 그때 시간을 함께 보냈던 그 사람들이 갑자기 보고 싶어 진다.
몬트리올 가족모임 블로그
몬트리올 여행 그 후
여행을 다녀온 지 약 1년 후에 들은 친구의 소식. 나의 친구 집 방문이 큰 후폭풍이 될 줄은 몰랐다. 당시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여자 친구는 헤어졌었지만 그 당시 그분은 감정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페북으로 친구의 소식을 접하고는 자신과 비슷한 긴 검정 생머리 한국 여자와 고향을 방문했다는 사실에 분개했고 내 친구랑 완벽히 연락을 끊어버렸다고 했다.
그녀만큼 자신을 사랑해 줄 여자는 없을 거라고 뒤늦게 후회하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심정으로 그녀를 잡기 위해 1년간 어학당을 계획해서 다닐 계획을 세우고 정말 한국으로 날아왔다. 한국에서 그녀를 만났지만 그 당시 그 전 여자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와 다른 일본인 남자 친구랑 사귀고 있다고 그를 거절했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는 안타까워하며 위로를 건넨 뒤 그 친구를 잊고 살고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난 뒤 페북에서 다시 그녀와 함께하는 친구를 보게 되었다.
결혼하려고 이미 여자 친구는 몬트리올로 식구를 보러 간 것 같았다. 그리고 한국과 캐나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내가 결혼 전에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보냈던 것 같은데 꽤 단답형으로 예의를 차린 정도의 답장을 받았다.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는 충분히 예상이 되어서 섭섭하진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다. 올해 내가 결혼했을 때도 축하한다고 짧은 코멘트를 남겨주었다. 이제 그 정도 코멘트는 남겨도 될 만큼 안정이 되었구나 싶었다. 비록 안부를 묻고 그러지는 않지만 밴쿠버 생활의 공백을 틈틈이 채워주던 친절했던 친구의 안녕을 늘 바란다.
다 못 보고 온듯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긴 하지만 친구 덕에 이곳에 발 디딜 이유가 생겼고 따뜻한 가족들과의 시간이 이방인이었던 나에게는 정말 좋은 추억이 되었고 다시 또 오고 싶을 만큼 좋은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