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cker Park
그리고 '색'이 함께하는 이야기
먼저, 나의 영화 이야기는 전문가적 입장에서 쓰는 평론에 맞춰진 것보다, 이미 영화를 감상한 분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글이며, 특히 '색채'라는 도구를 통해 나름의 영화에서 받은 느낌을 정리해보는 글임을 알리는 바이다.
로맨스 영화인 줄 알았는데 스릴러 영화라는 것이 가장 큰 매력 포인트였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보이는 다이내믹한 장면 변화와 3명 이상(매튜, 리사, 알렉스, 매튜 친구, 매튜 약혼자)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스토리 라인 또한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극적으로 잘 풀어낸 구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런 영화의 구성이 억지스럽다고 했는데, 나는 보는 내내 짜증 나면서도 영상미와 섬세한 영화 배경음에 빠져 즐감을 했다.
나의 사랑이 누군가에게 평가받을 대상이 아닌 것처럼, 아무리 지독한 사랑이라도 나름의 입장이 있다는 것! 그러나 범죄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절대로 옹호하진 않는다. 본인을 위한 거짓말 한 번이 두 사람의 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자들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래서 건강한 삶과 건강한 사랑을 하고자 하는 평범한 한 여자의 입장으로써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장면들 중 대부분은 그들은 눈이 수북이 쌓이는 한 겨울에 속해있다. 그들이 긴 이별을 하게 되는 장면, 철저히 계획되었던 리사 인척 하는 알렉스와 매튜가 만나 시간을 보내던 장면(특히 유혹하려 하지만 왠지 서늘한 알렉스의 분위기가 계절감과 잘 어울린다.), 매튜와 리사가 각각 다른 시공간에 서로를 기다리던 공원에서의 그 차갑고 황량한 느낌. 그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겨울처럼 계절감이 그들의 감정표현을 더 강화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서로를 만나 뜨거운 키스를 하는 장면은 왠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외롭고 황량했던 겨울과 같았던 그들의 감정선이 봄처럼 따스해지겠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나는 이 영화의 감독이 의도적으로 주로 두 가지 색상으로만 포인트를 주고 나머지는 무채색이나 두 가지 색을 서포트할 수 있는 저채도의 색상만 사용했다고 본다.
사랑에 빠진 여자 둘. 리사와 알렉스. 그 둘이 함께 있던 장면에서 둘 다 붉은색 옷을 입고 있는데, 색상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 사랑받는 여자의 조금은 따뜻한 느낌의 레드 컬러, 짝사랑하는 여자의 다크 한 레드 컬러. 각각 이렇게 다르게 묘사되어 있고, 그 둘의 사랑을 모두 받은 남자 매튜는 리사와 함께하는 장면 이외에는 모두 상처 받은 남자의 공허하고 냉정해진 마음을 대변하듯 페일 한 블루 셔츠를 입고 있다. 내가 설명한 장면 이외에도 수시로 영화 내내 약간의 톤 차이는 있지만 두 가지 컬러가 대조적으로 보여 극적인 분위기를 더해주는 것 같다. '열정과 냉정' 이런 키워드처럼...
'사랑의 색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라는 말에 동의하면서, 매튜와 리사 커플과 그리고 알렉스의 시점에서 어떤 사랑의 색이 이영화에 담겨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우선 매튜와 리사의 사랑은 바래지 않을 보석과 같은 '루비 레드'라고 말하고 싶다.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도 강렬히 반짝이던 사랑스러운 눈빛과 몸짓들, 짧지 않은 2년이라는 공백과 우여곡절도 극복해 낸 운명과 서로의 사랑. '평생을 두고 봐도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이 세상 어디에는 있을 것이다.'라는 희망적인 엔딩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알렉스의 시점에서도 본인의 사랑, 사랑의 대상(매튜)은 보석과도 같았을 것이다. 내 것이 아닌데도 탐하게 되는 매력적인 루비와 비슷한 것 같다.
사실, 이 레드 계열의 컬러는 영화 내내 사용되었다. 매튜가 처음 리사를 직접 보게 되었을 때 입었던 코트, 매튜 앞에서 춤을 추던 리사가 입고 있던 드레스, 리사의 편지를 매튜에게 전하지 않고 전화로 거짓말을 하던 알렉스의 베스트, 매튜에게 접근하려 리사 인척 하던 알렉스가 입었던 코드, 영화의 다양한 배경색으로도... 중요한 순간에 이 컬러는 빠짐없이 등장했다. 붉은색이 굉장히 즉각적인 매혹 또는 욕망의 색채라고도 할 수 있다.
영화 OST도 영화의 여운에 한몫한다. 나도 인생 살던 중 언젠가 한 번은 겪어봤던 것 같은 애틋한 기분이랄까? 이건 내 인연을 모르고 마냥 언제 올지 때를 기다리는 막연한 기다림의 외로움이나 보다 더 큰 것 같다. 영화에 빗대어 보면 강렬한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채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공허함이 잔잔히 녹아있는 느낌이다.
나는 콜드플레이를 모르던 시절에 이걸 들어봤다. 솔직히 말하면 그땐 이런 걸 들을 감성적인 준비가 덜 되어 있었던 것 같아 그냥 한 두 번 듣고 말았는데, 이걸 포스팅할 즈음에는 충분히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한번 더 (여러 번을) 들어봐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