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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orsense Sep 04. 2020

남편은 조카 바라기

그리고 인종에 대한 나의 짧은 생각

조카는 이모부가 아직도 낯설다.

내 여동생 부부 내외의 아들내미 우리 조카 욱이 씨(만 1.5세)는 우리 부부 내외가 가면 엄청 낯을 가린다. 물론 매일 보는 할아버지 할머니에 비해서는 한 달에 한번 볼까 말까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낯설어하며 고개를 휙 휙 돌려댄다.

그러나 나랑 한 몇십 분만 같이 있으면 엄마랑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지 모르지만 금방 마음을 연다. 요 몇 주 전에는 혼자 엄마랑 동생이 일하는 일터로 놀러 갔는데 그곳에 있던 우리 조카 욱군이 애걸복걸하지 않아도 이모에게 포옥 안겼다. (감동의 물결~~~~)

그러나 이모부에게는 다르다. 이모부는 뽀얀 살결에 아기다운 외모를 가진 욱이를 보며 "우~~ 욱~?"이라고 부르며 내 품에 안기라는 바디랭귀지를 취한다. 그러나 이모부가 안아주면 매우 불편해하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가려고 찡얼찡얼~ 바둥바둥~거린다.

동생 내외는 "자주 안 봐서 그런가 봐요~" 라며 위로를 하지만 조카를 이렇게나 예뻐하고 안고 싶어 하는데 이런 이모부 마음도 몰라주는 욱이가 야속하고(너는 잘못 없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남편이 측은하기도 하다.


남편의 피부톤이나 외모가 동양사람 같지 않아서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진 않다. 낯설어하면서도 관심 있게 쳐다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생과 엄마의 설명에 따르면 욱이는 엄청 조심스러운 성격이라서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스타일의 아기라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욱이를 케어하는 모습을 보며, ‘이것 참... 아기는 참 기쁨이지만, 육아란 진짜 쉽지 않구나. 딩크족이 되어도 상관없겠구나. 그리고 우리 부부의 협의사항은 1자녀(희망 성별:여아)이니 자연임신을 시도해보는데, 그게 혹시 불가능하다면 과학기술의 힘을 빌리는 건 하지 말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남편은 내 의견을 지지해주기 때문에 아이가 있고 없고는 상관없다고 했지만 사실 아이를 최소한 한 명은 갖길 원한다. 결혼 전 남편은 분명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이라 아이들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막상 내가 목격한 남편의 행동과, 일을 하면서 만나는 귀여운 여자아이들(남자아이들은 보통 꾸러기들이라 그다지 안 좋아함)을 얘기할 때마다 너무 사랑스럽다고 하니 아이의 아빠가 된다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짝사랑을 하듯, 조카를 너무너무 좋아한다. 귀엽다고 매우 매우 난리다.




아기의 인종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결혼한 지 만 1년 후,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아이를 갖기에 적합한 시점이 온 것 같아서 계획을 실행해 옮기기로 했다. 그리고 난임, 불임이 흔한 이 시대에 너무나 감사하게도 임신 시도 단 두 달 만에 아기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남편이 연하니까 빨리 임신이 되었나 보다 했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올 초에 위염이 있어서 헬리코박터 파이로 균 치료도 받았고, 척추가 휘어져 있어서 통증을 없애기 위해 필라테스를 1년 넘게 꾸준히 해와서 나름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나이가 적지 않은데도 임신에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280일 동안 건강하게 자라서 우리에게 와주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사람들이 아기가 혼혈이기에 외모 기대치가 매우 높아서 좀 부담이 되기도 한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아기의 외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아기의 외모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 난 항상 얼굴은 남편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남편은 내 코와 피부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엄지를 쪽쪽빠는 남편과 늠름하게 앉아있는 나

사람들마다 다른 미의 기준이 있지만 내게도 서구적인 얼굴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그래서 크고 동그란 선한 눈, 빚은 듯이 매끄러운 얼굴형과 작은 머리통?! 을 가진 남편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반면 남편은 자기 코는 너무 크고(높고) 동그래서 내 코를 닮기를 원한다. 코 부분이야 단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 이해하는데, 아기의 피부톤이 밝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조금 의외였다. 혹시 남편이 인종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나? 싶었는데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문득, 지난날 남편과 나누었던 인종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느 날은 백인들이 하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해서 기사화가 된 것이 있어서 내가 그것을 보고 남편과 토론을 했다.

“백인들은 뭐가 잘났길래 그렇게 우월감에 빠져 있나? 동양문화권 사람들은 억압적인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한다. 반면 백인들은 그들이 만든 인종 프레임으로 격차를 만들어내고 다른 인종을 수용하려는 노력을 크게 하지 않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그들만의 (근거가 확실치 않은) 엘리트 사회에 정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발 인종차별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점을 교육받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더니 남편이 말했다.


"나도 한국에서 차별받았어. 한국사람도 인종차별(꽤)해"

"그럴 리 없어, 우리 부모님도 내 주위 사람도 네 인상이 너무 선하다고 다 좋아한단 말이야. 거짓말이지?"

"아니 진짠데, 가끔 내가 버스 뒤쪽에 있는 좌석에 앉으면 내 옆에는 아무도 안 앉아."

 

그 말을 듣고는 놀랐다. 뭐 사실 일부 한국 사람들이 동남아시아권에서 온 불법체류자들과 흑인들에 대해 선입견 또는 다른 생김새 때문에 대놓고 혹은 은연중에 차별하는 건 뉴스나 여러 미디어 자료를 통해 많이 봤으니까 한국사람들은 차별 안 한다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서양권 사람들보다는 덜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종차별의 영역을 넓게 보면 나와 다르기 때문에 피하고 꺼려하는 마음도 포함이 된다. 그래서 무례하거나 폭력적이게 대하지 않더라도, 시선을 달리 주거나 이렇게 주위에 앉지 않는 것도 차별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낯설어서 그렇다는 건 좀 비겁한 핑계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남편이 왜 ‘아이의 피부톤이 나와 닮았으면 좋겠다.’는지 이해가 됐다. 우리 부부가 미국에 있었다면 아이의 이국적인 외모가 아이의 미래에 큰 걸림돌이 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일 민족국가를 몇천 년간 유지해왔던 대한민국에 살고 있기에, 아이의 피부톤이 어둡고 서양인처럼 생겼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미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래에는 한국에서 혼혈아가 일반적인 일이 되겠지만 아직까지는 유난히 눈에 띄고 사람들의 선입견에 치일 확률이 높은 것 같다.)


*나부터 인종차별 안 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요새 전 세계 지구촌 사회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게 쉽지 않다.





미래의 조카를 기다린다.

한국(나) 가족도 미국(남편) 가족도 지금까지는 한국사람은 한국사람끼리, 멕시코 사람은 멕시코 사람끼리 혼인하여 만들어진 가족이며, 내 동생도 한국사람과 결혼했고 내 남편의 누나들도 다 멕시코인과 결혼했다. 그러나 우리 내외 그리고 남편의 형님 내외부터는 다이내믹한 인종의 결합이 이루어졌다. 이 점이 앞으로의 우리 가족의 모습에 어떤 영향을 줄지 기대가 된다. 모든 가족들이 궁금증과 기대감에 차있고 보나 마나 우리 가족이니 당연히 사랑받을 거고 예쁠 것이다.

우리는 운 좋게 빨리 아이를 가졌고, 둘째 아주버님과 자메이카 혈통(흑인)의 형님도 지금 아이를 가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둘째 형의 아내분이 신장 쪽에 질환이 있어서 아이를 품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시험관 시술을 동반한 대리모가 필요한 상황인데 둘째 누나가 대리모를 자청했다. 난임 시술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난자 추출부터 착상시킬 때까지 정말 많은 호르몬 요법과 주사가 있다는 걸 안다. 둘째 누나는 벌써 두 아들을 낳았는데 오빠를 위해 그런 큰 헌신(또는 희생)을 한다는 것에 참 놀라웠다.

‘이것이 멕시코 팸의 끈끈한 가족애구나.’라고 강력하게 체감했다.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과정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고 무사히 조카가 세상에 태어난다면 얼마나 귀할까 싶고 벌써부터 애정이 생긴다. 너무 먼길 돌아가지 않고 부디 한방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우리 가족의 미래에 항상 평화와 행복만이 가득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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