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협의이혼에 도달하였다.

그동안 수고했다 나 자신. 이제 의절할 시간!

by colorsense

그 동안에 작성했던 브런치북과 매거진 제목이 민망해지는 글이다.

그렇다 나는 협의 이혼을 하기로 했고 2024년 4월경 법원에 가서 협의이혼 의사확인 신청서와 양육및 친권자결정 협의서를 제출하고 왔다. 그리고 자녀가 있기 때문에 이혼 전 숙려기간을 3개월 가지게 되었다.


합법적 절친... 정말 그렇게 생각한 때가 있었다.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했고 결혼결심까지 했던 이유는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관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혼생활 6년 동안 작은 실금들이 모여 관계의 균열은 깊고 깊어졌고 결국은 터져버릴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왔다.


결혼을 너무 이상적인 부분만 생각하고 했던 것 같다. 현실에서는 무조건 문제가 생기고 의견이 충돌할 수 밖에 없는데... 피해갈 수 없는 운명 이었을지라도 결혼전에 일부러라도 더 싸워볼껄... 그랬다면 조금이라도 더 나았을까? 하는 때늦은 후회의 생각 구름만 뭉게뭉게 피어날 뿐이다. 어쨌든 전 배우자는 내 기준에 문제를 해결하고 포용하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나는 더이상 그를 내 인생의 절친으로 둘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절친. 내가 생각했던 절친은 어떤 존재인가?

정서적으로 의지할 뿐만 아니라 서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주는 것.

정서적으로 의지할수 있는 조건이라면 1. 서로를 존중하고 2. 서로의 감정에 공감해주어서 적절하게 그 상황에 대응하는 것.

서로에게 발전적인 존재가 되는 건 1. 다른 의견을 귀기울여 듣고 2.현명하게 수용하여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절친이었나 물어본다면...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정서적으로 남편에게 받은 큰 마음의 상처와 지겹게 반복되는 크고 작은 언쟁들은 결혼생활 내내 계속 생산되었다. 그런 시간속에서 나 또한 언쟁 후 남편을 존중하고 배려하기가 너무나 힘들었고 남편은 앞서 말했던 같은 실수를 반복해왔다. 그건 결국 실수가 아닌 그 사람의 행동 패턴이었다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지 않나?

나만 노력하고 바뀐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고 나도 사람인지라 노력하다가도 다시 원래의 미숙한 나로 돌아가기 일수였다. 결국 내게 반복된 낙담의 순간들은 나의 초심을 잃게 만들었고 더이상 사랑이라는 감정은 내게 남지 않았다.


서로 이혼을 하기로 동의하고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전 배우자에게 해보았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했던 말 기억해? ”나는 아이를 낳아도 서로에게 1순위였으면 좋겠어.“ 라는 말.

그런데 나는 왜 늘 3순위 이하로 느껴졌을까? 아이가 있기 전엔 넌 늘 네가 1순위라 너의 행복을 위해 나와의 약속을 늘 어기고 네가 하고싶은 대로 해왔고, 아이가 생긴 후론 아이돌보기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본인 커리어 향상을 위한 자기계발 시간 갖는것 외에는 넌 아무생각도 없었던 것 같아.

네가 충분히 좋은 아빠라는건 인정하시만,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걸 느꼈으면 우리사이에 문제나 벽을 우선적으로 해결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전 배우자가 대답했다.

"난 우선적으로 아이돌보는데 집중하고 살다보면 언젠가 우리 문제를 해결할 날이 있을거라 생각했어."


그래 그렇겠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혼하게 된 것이다.

전 배우자는 늘 그런 우리의 문제들은 후순위로 미뤄두고 그냥 그날 그날을 쳐내며 오로지 자기 피붙이와 자기 자신만을 귀하게 여겼다. 전 배우자에게 있어 ‘우리’라는 단어엔 나라는 존재는 가족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아내'라는 역할로 그저 곁들임 정도의 존재일 뿐이었을수도 있다. 나를 사랑한다라고 했지만 정작 언행은 불일치 했고 내가 우리 가족을 위해 했던 희생은 당연시 여기고 취해왔기 때문이다.


전 배우자는 결혼생활을 하며 했던 나의 모든 노력을 공기처럼 여겼고 내가 받은 상처는 모른척 했다.(진짜로 공감을 못하기도 했고) 나와는 이미 법률혼을 했으니 언제까지 늘 내가 그 자리에 있을 붙박이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러면서 결혼생활에 있어 그냥 정리 안 된 수가지의 문제들을 아무렇게나 쳐박아 두고 언젠가 그 문제를 열어볼 날이 오겠지 하면서 방치했다고 느낀다.

끝내 본인은 결국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었고(문제 의식이 없고 이혼하는 것이 억울하고 화난다는 입장) 나만 혼자 노력하고 변화하길 바라기엔 희망이 없었다. 그래서 절친이라고 생각했었던 이를 손절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게 내 영혼을 구하고 나와 전 배우자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피해를 입게되는 내 아이를 위한 길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건 재산분할 및 양육권/친권에 대해서 남편이 협의해주었다. 다만 우려되는건 이혼후 얼마나 면접교섭을 성실히 수행하고 양육비도 재 때 지급할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양육비 관련해서도 참 할말이 많지만... 결국 내가 친권자고 양육권자이며 나는 엄마 이니까 내 아이를 지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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