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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계인 Nov 18. 2020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아마도 이번 글쓰기는 이런 정사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인상, 또는 고통, 당혹스러움, 그리고 도덕적 판단이 유보된 상태에 줄곧 매달리게 될 것 같다.



기다림으로의 삶,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의지나 욕망, 그리고 지적 능력이 개입되어 있는 행동(예측하고, 찬성하고 반대하고, 결과를 짐작하는)은 오로지 그 남자와 관련된 것뿐이었다. 


언젠가 한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가 갑자기 그녀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 적이 있다. 그녀는 내가 이야기 자체보다는 자신의 화술에 이끌려서 그런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사실은 A가 나를 만나기 십 년 전 아바나로 출장 갔을 때, 여자가 말한 '피오렌디토'라는 나이트클럽에 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오직 그것이 내 흥미를 끌었을 뿐이다. 피오렌디토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기다림을 자극했다. 마찬가지로, 책을 읽을 때 나의 마음을 휘어잡는 문장은 남녀관계를 묘사한 대목이었다. 


가령,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포옹할 때 눈을 지그시 감는다"라는 구절을 읽으면, A가 나를 안을 때 그렇게 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씌어 있는 그 밖의 다른 내용들은 그 사람과 다시 만날 때까지의 빈 시간을 메워주는 수단일 뿐이었다. 


나는 또한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태연함과 그것이 내 삶에서 차지하고 있는 터무니없는 비중에 크게 놀랐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같은 종이에 "그 사람이 왔다"고 쓰고 우리 만남의 세세한 사항들을 두서없는 글로 적어두었다. 그런 다음 그 사람을 만나기 전과 후에 쓴 두 글의 내용이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을 보고는 잠시 멍한 기분을 느꼈다. 두 글 사이에는 값을 따질 수 없는, 그 사람과 내가 나눈 대화와 몸짓이 있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그것들을 붙잡아두려고 했다. 그 사람의 자동차 르노 25가 멈춰 서는 소리와 떠나려고 시동을 거는 소리에 의해 다른 시간들과 엄격히 구분된 이 시간의 공간 속에서, 나는 이 남자와 함께 침대에서 보낸 오후 한나절의 뜨거운 순간이, 아이를 갖는 일이나 대회에서 입상하는 일, 혹은 멀리 여행을 떠나는 일보다 내 인생에서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형의 시간 속,

 

나는 나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은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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