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한정판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발생한 마스크 품절 사태는 지금까지 해본 적 없었던 약국 오픈런을 하게 만들었고, 소금빵으로 유명한 동네 빵집은 하루 4차례 소금빵을 구워내고, 인당 6개까지 구매 개수도 제한하고 있지만 갈 때마다 소금빵은 품절이다. 과거 회사 동료들과 늦은 시간 방문했던 치킨집에서 ‘당일 닭 재료 소진’이라는 당황스러운 통지를 듣고 난 뒤, 세상 흔한 치킨집에서 모든 테이블에서 먹고 있는 치킨을 우리만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분하고 억울한 기분이 들게 했다. 홈쇼핑 채널을 시청하다가 상품 구매를 망설이던 중 ‘곧 매진’ 메시지가 뜨면 초조함에 손이 떨리다가 여지없이 핸드폰 버튼을 누르고 만다.
이제 스타벅스는 어디서나 쉽게 방문할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카페이지만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정서를 담고 있는 ‘스타벅스 컨셉 스토어’는 지역 한정판 매장 같은 곳으로 국내 혹은 해외여행 시 반드시 방문해야 할 장소이다.
과거 화장품 회사를 다닐 때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어김없이 출시되는 한정판 컬러와 한정판 패키지 상품은 새로운 이슈 몰이와 함께 매출을 증대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마케팅 수단이었다. 기업은 한정판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해 마케팅을 전개하는데 때로는 기업이 한정판 전략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한정판 그리고 한정판 컬러, 정말 살 만한 가치가 있을까?
과거부터 인류는 희소한 자원을 두고 경쟁하며 생존해 왔다. 실제로 우리의 뇌는 희소한 것에 반응한다. 2019년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 회보에 게재된 신경과학 연구(Inge Huijsmans 외 4인) 결과에 따르면 참가자가 경매 상품의 희소성을 알게 된 순간 뇌에서 가치를 평가하는 부분인 안와전두피질이 활성화되었다.
2017년 국제 섬유 및 의류 학회 연례 학술 대회 논문집에 발표된 연구(Wi-Suk Kwon 외 3인)에서는 참가자가 할인 상품 중 기간 한정이 있는 상품을 구매 선택할 때 감정과 관련된 뇌의 편도체가 활성화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희소성은 긴급성을 의미하며 빠른 의사 결정을 촉진한다. 소비자의 빠른 구매 결정은 기업의 시간과 비용 감소에 기여하고, 상품 재고 부담을 줄여주며, 확실한 매출 확보를 돕는다. 그래서 기업은 기간 한정, 매장 한정, 수량 한정, 가격 한정, 컬러 한정 등등 다양한 한정 조건을 내세워 소비자를 유인한다.
한정판은 공급량을 제한해 생산해 내는 상품이다. 상품의 제한된 공급과 높은 수요는 희소성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희소성은 경쟁 심리를 자극하고 가격을 상승시킨다. 또한, 기존 제품과 다른 한정판의 독특한 디자인이나 컬러는 남들과 다름을 추구하는 개별화 욕구를 충족시킨다.
흔한 컬러보다 희소한 컬러가 더 예뻐 보인다. 과거에는 아름다운 색의 천연 안료나 염료를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었고 왕족이나 귀족만이 누릴 수 있었다. 이제 기술의 발달로 화학 염료나 안료를 사용하면 수백만 가지의 색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컬러를 지닌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기획에서부터 생산, 판매까지 모든 과정에 전문가와 기술과 품질이 뒷받침되어야 고객에게 아름다운 하나의 컬러를 선보일 수 있다.
무엇보다 기존에 못 보던 새로운 컬러가 주는 신선함은 도파민 분비를 활발하게 만든다. 특히 화장품 업계에서는 특별한 시즌 한정 컬러를 출시하는 것을 통해 고객을 유혹한다. 2023년 여름 샤넬(Chanel)은 샤넬 코드 컬러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했다. 코드 컬러 미러, 코드 컬러 네일 파일, 코드 컬러 메이크업 브러시 세트 3가지 액세서리는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9가지 한정판 컬러로 출시되었다.
이모텔 라일락, 발레리나 라이트 핑크, 오브니 탠저린 옐로, 앙센디에 레드 오렌지, 프리미에 담 브라이트 핑크 코랄, 디바 푸시아 핑크, 루쥬 느와르 루쥬 느와르, 까발리에레 썰 세이지 그린, 푸규스 딥 블루 총 9가지 알록달록한 컬러는 기존에 블랙&화이트가 주었던 고급스럽고 세련된 감성에 상큼한 생기를 더해주었다. 이 한정판은 국내에서는 팝업 행사장과 샤넬 뷰티 부티크, 샤넬 공식 온라인 스토어 등 몇 개 매장에서만 구매 가능했기 때문에 고객들에게는 더욱 희소한 매력을 어필했다.
사실 나는 이 즈음 파리 여행 중이었는데 친구 선물을 사기 위해 방문했던 라파예트 백화점 샤넬 매장에서 이 한정판 컬러를 처음 발견했다. 파리 한정판이라는 직원 말을 듣고 선물용으로는 이보다 더 좋을 것이 없다며 세 가지 컬러의 미러를 두 개씩 구매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친구들에게 파리 한정판이라고 강조하며 선물을 전달하고 너무 만족스러워했는데 국내에서 똑같은 프로모션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살짝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성수동 팝업 행사에서 나를 위한 선물로 미러 하나를 더 구매하고 나서 운이 좋았다고 느꼈다.
그해 여름 나는 한정판 컬러 때문에 꽤 흥분되고 요란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여전히 거울을 볼 때마다 이제는 구매할 수 없는 한정판 컬러를 가지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
한정판의 희소성은 심리적인 만족감을 주고 경제적인 가치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한정판은 본래의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어 재판매되는데 과연 한정판 컬러는 어떨까? 자동차 업계에서는 한정판 컬러를 한정 수량으로 판매하는 프로모션을 종종 진행한다.
2011년 프랑스 하이퍼카 브랜드 부가티(Bugatti)가 출시한 '부가티 베이론 로블랑(Bugatti Veyron L'Or Blanc)'은 다크 블루와 화이트 조합으로 페인팅한 외장은 크롬 재질처럼 보이는데 단 한 대만이 제작되었다. 독일 도자기 회사 KPM과 합작으로 엠블럼과 주유캡 그리고 인테리어에 자기로 마감이 되어 더욱 희소성을 가지는 이 한정판은 165만 유로로 선보였다.
2023년 영국 수공 제조 자동차 브랜드 롤스로이스(Rolls-Royce)가 출시한 ‘블랙 배지 고스트 이클립시스(Black Badge Ghost Ekleipsis)’는 천체 현상 ‘개기일식’에서 영감을 받아 환상적인 컬러를 가진 한정판 25대를 출시했다. 익스테리어는 구리 성분의 리리컬 코퍼(Lyrical Copper) 컬러로 전체를 마감하고 만다린 컬러를 악센트로 사용해 신비로운 일식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인테리어는 개기일식의 변화를 재현하기 위해 헤드라이너에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했다. 도어를 닫고 시동을 거는 사이 별이 어두워지고, 940개 별로 이루어진 원은 코로나의 모습을, 192개의 별은 낮에 뜬 별의 장면을 개기일식 시간과 동일하게 7분 31초 동안 보여준다.
우리는 한정판에 매혹된다. 남들이 가지지 않은 것을 가진다는 것은 경쟁에서 이겼다는 성취감과 우월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희소성이 가지는 긴급성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 불필요한 소비를 일으킬 수 있고, 상품의 희소성이 반드시 신뢰할만한 품질이나 서비스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국, 자신에게 잘 맞는 희소한 가치를 지닌 상품을 선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한정판 컬러를 가지지 않아도 이미 당신은 세상에 하나뿐인 컬러로 빛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