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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때문에 손해보고 싶지 않다면

by 이호정
인생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다.

- 장 폴 사르트르



“Life is C(Choice) between B(Birth) and D(Death).”

- Jean-Paul Sartre


우리말로 “인생은 BCD다(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라는 한국식 표현으로도 유명한 이 명언은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했던 말이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고, 우리의 삶은 그 선택의 결과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발생하고 경제적 이익 혹은 손실을 동반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한다. 선택지의 득과 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교 분석하고, 결과를 예상하고, 최종 의사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의 핵심 이론처럼 인간은 항상 합리적 선택만을 하지 않는다. 늘 완전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며, 자신의 기분이나 습관 혹은 직감에 따라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행동을 보인다.


특히 매일 마주하는 컬러 선택지에서 우리는 어림짐작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휴리스틱(Heuristics)을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은 예상치 못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컬러에 관한 충분한 지식과 정보가 없고, 컬러 선택을 위해 고려해야 할 다양한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며, 선택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결과를 좀처럼 예상하지 못한다.


늘 합리적인 컬러 선택을 할 수는 없겠지만 컬러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직관력을 향상시켜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주인공 네오는 파란약(거짓된 안락한 삶) 대신 빨간약(진실되지만 고통스러운 삶)을 선택한다. (이미지 출처: 메트릭스)



무난함이 지닌 위대함


"무난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별로 어려움이 없다”, “이렇다 할 단점이나 흠잡을 만한 것이 없다”, “성격 따위가 까다롭지 않고 무던하다”이다. 무난함을 컬러에 대입해 보면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무난한 컬러는 베이직한 컬러이다. 화이트, 그레이, 블랙, 아이보리, 베이지, 브라운, 네이비와 같은 컬러들은 어디서든 크게 눈에 띄지 않는 뉴트럴 컬러로 무난하다.

블랙&화이트 운동화는 대부분의 옷과 잘 어울려 활용도가 높다. *Adidas, Nike


다음으로 무난한 컬러는 특정 카테고리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보편적인 컬러이다. 비록 희소성이 떨어지고 흔하기 때문에 컬러가 주는 매력과 만족감이 덜할 수 있지만 이러한 컬러 선택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선택지이다.

해당 제품에서 가장 잘 팔리는 컬러는 구매 실패 확률이 낮다. *Dior rouge blush 212 tutu


대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 (Amos Tversky) 연구에 따르면 이익에 따른 기쁨의 강도는 0.5~1배 정도이지만 손실에 따른 고통은 2.5배에 이른다고 한다. 다시 말해, 100만 원을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 100만 원을 잃어버렸을 때의 아픔이 더 크다.


무난한 컬러가 당신에게 넘치는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는 없다 해도 극한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무난한 컬러는 세상의 이치에서 중도이고 중용이다.


늘 다양한 컬러 선택지를 가지는 옷, 신발, 가방에서부터 자동차, 인테리어, 보석에 이르기까지 모든 카테고리에서 베이직한 컬러는 안전한 선택지이며, 특히 상품의 관여도가 높아질수록 위력을 발휘한다.

명품 브랜드들은 베이직한 컬러 상품을 잘 갖추고 있다. *Christian Louboutin



고관여 상품인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컬러는 화이트, 그레이, 블랙이다. 베이직한 컬러 중에서도 무채색에 속하는 이러한 컬러들은 보편적 취향과 튀지 않는 무난함으로 높은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자동차 구매를 할 때 마음에 드는 차량 모델의 동일 사양과 동일 가격을 기준으로 유채색 대비 무채색은 컬러 선택으로 인한 손실을 줄일 수 있다.


2020년 컨슈머 인사이트 신차 구입자의 핵심구입이유 설문 조사 결과, 자동차 구매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항목은 첫 번째, 안전성, 두 번째, 외관 스타일, 세 번째, 가격 및 구입 조건이었다. 자동차 컬러의 경제적 효과는 안정성, 외관 스타일, 가격 등 모든 항목과 관련이 있다.


먼저 인지심리학 관점에서 색의 시인성(Visibility)은 자동차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차량 컬러가 주행 환경의 컬러와 대비감이 크면 인지 감지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에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2016년 호주 씨지유 보험회사(CGU Insurance) 통계에 따르면 밝은 컬러(옐로, 화이트, 베이지)는 어두운 컬러(블랙, 그린, 블루)보다 사고율이 10% 낮았다. 일반적으로 화이트 차량은 주간과 야간 주행 시 가장 안전한 색으로 평가된다.


화이트는 팽창색으로 실제보다 더 커 보이는 효과가 있고, 명도가 낮은 블랙은 시각적으로 더 무게감이 느껴진다. 미디엄 메탈릭 그레이는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의 광택 차이를 섬세하게 표현해 자동차 실루엣을 살려주며, 채도가 높은 컬러는 강한 시각적 자극 때문에 윤곽선보다 컬러에 더 먼저 시선이 집중된다.


자동차 구매 시 컬러 옵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제네시스 G80의 경우 글로시 우유니 화이트에서 매트 마칼루 그레이로 변경할 경우 약 70만 원의 추가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특정 컬러에 더 비싼 가격에 부과되는 이유는 도료의 원가 차이와 도장 공정도의 복잡성에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매트 도장이나 펄, 메탈릭과 같은 특수 도료는 추가 비용이 부과된다.


컬러의 맥락을 파악하면 상품 구매 시 소비의 만족도를 최대로 높이고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고관여 상품에 대한 무난한 컬러 취향은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컬러의 감가상각


컬러는 고정자산의 감가상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으로 자동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격이 하락하는 감가상각이 적용되는 자산이다. 자동차 브랜드와 모델이 감가상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자동차 컬러에 따라 중고차 거래 가격도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레드나 블루와 같은 유채색 차량은 무채색 차량 대비 5% 싼값에 거래된다. 보다 많은 선호도와 수요를 가진 화이트, 그레이, 블랙은 더 빨리 시장에서 거래되기 때문에 더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것이다.


물론 특정 브랜드 모델의 시그니처 컬러나 희소성을 가지는 컬러는 감가상각률이 낮다. 또한 문화적 정서적 차이로 인해 특정 국가에서 선호되는 색은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 2023년 미국 중고차 플랫폼 아이씨카(iSeeCars)에서 3년 된 중고차 약 160만 대를 대상으로 컬러에 따른 감가상각비를 조사한 결과, 평균적으로 자동차는 3년 후 22.5% 가치를 잃는다. 그중 옐로 컬러 중고차의 감가상각비는 13.5%로 평균 차량 대비 약 3,000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베이지(17.8%), 오렌지(18.4%), 그린(19.2%)은 20% 미만의 손실을 가져왔고, 평균보다 높은 감가상각비를 보인 골드(25.9%), 브라운(24%), 블랙(23.9%)은 3년 후 약 10,000달러 이상의 손실을 일으킨다. 미국 중고차 시장에서 자동차 컬러별 가치는 최대 5,000달러까지 차이를 보인다.


미국 중고차 시장에서 옐로 컬러의 낮은 감가상각비는 옐로 컬러 자동차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실제 공급량 대비 수요가 많기 때문에 2차 시장에서 희소성으로 인한 프리미엄이 지불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옐로는 특정 자동차 모델 SUV, 컨버터블(Convertible), 쿠페(Coupé) 카테고리에서 더욱 선호되어 더 높은 차량 가치를 유지한다.

컬러의 가치는 특정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Citroën Nemo


차량 유지 관리 측면에서도 자동차 컬러는 경제적 손실에 영향을 미친다. 외관에 흠집이 생겼을 때 일반적인 무채색은 재도장이 용이하지만, 독특한 유채색의 경우 컬러를 맞추는 작업은 쉽지 않다. 차량 도색을 위해 더 고급 기술을 가진 전문가 혹은 더 좋은 장비를 가진 수리업체를 찾아야 하고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물론 무채색이라도 펄(Pearl)이나 마이카(Mica)와 같이 펄 입자가 포함된 컬러는 일반적인 솔리드(Solid) 컬러보다 더 비싼 수리 비용이 들 수 있다.


과거 대비 자동차를 구매할 때 연비에 대한 중요도는 떨어졌지만, 무채색 중에서도 화이트나 그레이는 블랙보다 더 높은 연비를 가진다. 로렌스 버클리 국립 연구소의 실험 결과, 실버 차량은 블랙 차량 대비 내부 온도가 약 5~6 ℃ 낮았다. 이것은 2%(0.44mpg) 연비 향상을 의미하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9%, 기타 배기 오염 물질을 1% 낮추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언급했다. 밝은 컬러 선택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국가적 경제 손실을 줄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우리 일상은 컬러 선택의 연속이다. 매번 합리적인 컬러 선택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컬러가 무엇인지 알면 도움이 될 수 있다. 보편적 선호도를 가지는 무난한 컬러를 선택하거나 다양한 맥락에서 컬러가 가지는 경제적 효과를 고려해 보면 경제적 손실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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