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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누리는 컬러

by 이호정


또다시 경기 불황이 계속되고 있다. 살면서 불황이 아니었던 적이 언제였을까 싶은 의문이 들지만 매일 들려오는 뉴스를 통해 다시 경기 침체를 실감한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현재 경기 상태를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2025년 5월 기준 98.5로 전월 대비 0.4포인트(P) 하락해서 24년 5월부터 13개월 연속 100을 밑돌았다. 반면 앞으로 경기 동향을 예측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2025년 5월 기준 100.9로 전월 대비 0.1포인트(P) 하락했지만 13개월째 100을 웃돌았다. 현재 경기 부진이 지속되고 있으며 뚜렷한 회복 모멘텀은 약한 상태이고, 향후 경기 전망은 나쁘지 않지만 상승 속도는 둔화되고 있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학 개념은 아니지만 소비 트렌드의 심리적 지표가 되는 '립스틱 지수(Lipstick Index)'는 경기 불황을 가늠케 하는 지수이다.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 로더(Estee Lauder)의 레오나르도 로더(Leonard Lauder)가 2001년 경기 침체기에 립스틱 판매량이 증가한 것에 착안해 만든 지수이다.

새롭고 예쁜 컬러의 립스틱은 우울감을 날리는데 확실한 효과가 있다. *Yves Saint Laurent


대공항 기간산업 생산은 50% 급락했지만, 화장품 판매는 증가했고, 1990년 불경기 동안 화장품 업계만이 고용 증가를 이루었으며, 2001년 경기 침체 시기 명품 립스틱 판매량이 11% 증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마스크 착용으로 립스틱 판매량이 감소했지만 2022년 6월 글로벌 마케팅 분석 회사 엔피디 그룹(NPD Group) 보고서에 따르면 립스틱 판매량은 전년 대비 48% 증가했다.


명품 립스틱은 적은 비용을 투자해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아이템으로 불황에도 ‘작은 사치’를 누리는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를 일으킨다. 영국 소비자 심리학자 카트린 얀손 보이드(Cathrine Jansson-Boyd)는 “사람들은 쓸 돈이 없다면 항상 가격을 따져보고, 실제로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낼 수 있는 것을 구매한다.”라고 말했다.


향수는 최근 판매량 급증과 함께 불황을 가늠하는 새로운 지표로 등장했고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는 뷰티 산업은 불황을 모른다. NPD에 따르면 2023년 1분기 미국 프레스티지 화장품 산업 매출은 전년 대비 16% 증가했고, 메이크업 제품은 가장 빠르게 성장한 뷰티 카테고리였으며, 립 제품은 고가 메이크업 부문에서 43%의 가장 빠른 성장을 기록했다.

향수는 기분 전환에 효과적인 아이템이다. *Diptyque


무엇보다 립스틱뿐만 아니라 네일, 헤어, 스카프 등을 구매할 때 새로운 컬러는 신선한 자극이 되기 때문에 기분 전환과 더불어 자신의 이미지 변화에도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때도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적절한 컬러 선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작은 사치는 후회와 실망으로 얼룩질 수 있다.



200가지 립스틱 컬러 중 하나


작은 사치를 부려보기 위해 백화점 화장품 매장 립스틱 코너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수많은 립스틱 컬러의 선택지는 설렘도 잠시 결정 장애와 함께 스트레스가 시작된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만족도가 감소하는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은 컬러 선택지에도 적용된다.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맥(Mac)은 약 19가지 다른 제형과 질감 그리고 약 200여 색상의 립스틱을 판매하고 있다. 과연 당신은 200여 가지의 립스틱 컬러 중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할 단 하나의 립스틱 컬러를 선택할 수 있을까? 도무지 답이 안 나와서 결국 직원에게 가장 잘 팔리는 컬러를 물어보고 구매했다면 현명한 선택이었을까?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선택은 어려워진다. *Chanel


립스틱 컬러를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자신의 피부톤과 옷 컬러와의 매칭 그리고 어필하고 싶은 자신의 이미지이다.


먼저 선택지의 범위를 좁히기 위해 섹시한 이미지를 원한다면 레드 계열, 사랑스러운 이미지는 핑크 계열, 상큼한 이미지는 오렌지 계열, 자연스러운 이미지는 베이지 계열, 고혹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고 싶다면 와인 계열에서 선택하면 쉽다.


다음으로 모든 색상에는 쿨톤과 웜톤이 있으니 자신의 피부색에 맞는 톤의 컬러를 고른다. 예를 들어, 당신의 피부가 쿨톤이고 연말 파티에 입고 갈 블랙 드레스와 어울릴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할 립스틱을 원한다면 살짝 푸른빛이 도는 레드 컬러가 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제형에 따라 다양한 립스틱 종류가 있고 같은 색이라고 할지라고 질감에 따라 컬러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그 차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립스틱은 윤기가 도는 글로시(Glossy) 타입과 무광의 매트(Matt)한 타입이 있는데 자칫 글로시 타입은 너무 번들거리는 입술이 도드라져 보일 수 있고 매트한 타인은 입술이 너무 건조해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입술에 맞는 타입을 결정해야 한다, 최근에는 자연스럽게 컬러를 표현하는 립밤(Lip-Balm)이나 오랫동안 발색을 유지하는 립틴트(Lip-Tint) 타입이 가장 선호된다.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파우치 안에 하나씩 가지고 있는 디올 어딕트 립 글로우(Dior Addict Lip Glow) 제품은 21가지 컬러 옵션과 자연스러운 발색으로 컬러 선택으로 인한 실패 확률이 낮다. 하지만 립 제품을 구매할 때는 자신의 얼굴과 어울리는 컬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프라인 매장이라면 손등에 발라보는 것보다 입술에 직접 발라봐야 자신의 얼굴에 어울리는 색인지 판단할 수 있다.

손등에 발라보는 것만으로 립스틱 컬러를 선택하면 실패하기 쉽다. *Chanel


온라인 매장이라면 가상의 메이크업 서비스를 이용해 볼 수 있다. 샤넬 모바일 스토어로 접속해 사고 싶은 립스틱 메뉴로 들어가 ‘트라이 온’ 버튼을 클릭하면 셀피 카메라가 켜지면서 다양한 립스틱 컬러를 가상 메이크업을 통해 체험해 볼 수 있다. 물론 립스틱 제형별로 미세한 질감 차이를 확인하기 어렵고 농도를 조절하거나 그라데이션 효과 같은 기법은 적용하기 어렵지만, 자신의 얼굴에 어울리는 다양한 컬러를 마음껏 테스트해 보고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유용하다.


립스틱 컬러를 고르는 것은 당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다. 당신의 이미지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 그래서 립스틱 컬러를 선택할 때에는 단순히 좋아하거나 유행하는 컬러보다 어떤 이미지로 보이고 싶은지를 고려해서 결정할 필요가 있다.

투자 대비 만족도가 높은 립스틱 컬러 *Chanel Rouge Coco Baume 920 In Love



넥타이보다 스니커즈


넥타이를 매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과거 립스틱 효과와 함께 언급되었던 넥타이 효과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회사 출퇴근 시에도 캐주얼 복장이 보편화되고, 슈트를 입어도 넥타이를 매지 않는 노타이 문화가 확산되면서 넥타이 매출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2020년 신세계백화점 자료에 따르면 넥타이 매출은 2017년(-8.1%), 2018년(-8.5%), 2019년(-18.8%), 2020년(-25.4%)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제 남성들은 넥타이 대신 스니커즈를 선택하고 있다. 국내 운동화 시장 규모는 2019년 3조 1,300억, 2021년 3조 4,000억 그리고 2023년 약 4조 원으로 매년 커지고 있다.


넥타이만큼이나 다채로운 디자인과 컬러의 가진 스니커즈는 저가의 비용을 투자해 기분 전환과 스타일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효과적인 아이템이다. 일반적으로 예쁜 다지인과 좋은 품질을 가진 브랜드 스니커즈를 10만 원 안팎으로 구매할 수 있으니 불황에도 작은 사치를 누려볼 만하다.


그렇다면 스니커즈 컬러를 고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옷과의 매칭이다. 운동화를 수집하는 마니아라면 다양한 컬러와 디자인으로 구색을 갖출 수 있겠지만, 만약 단 하나의 스니커즈 컬러를 골라야 한다면 단연 ‘화이트’다. 그리고 기본 아이템으로 하나의 컬러를 더한다면 ‘블랙’이다. 블랙과 화이트는 모든 의상과의 호환성이 좋기 때문에 비용 투자 대비 활용도 및 만족도가 높다.

화이트 스니커즈는 트렌디한 클래식으로 투자 실패 확률이 낮다.


하지만 화이트와 블랙이라고 해도 다 같은 화이트와 블랙이 아니다. 컨버스(Converse)의 클래식 라인은 약간 빈티지한 색감을 가졌고 하나의 카테고리가 된 독일군 스니커즈는 화이트 가죽 갑피와 노란빛이 도는 생고무 밑창, 그리고 앞코에 더해진 라이트 그레이 스웨이드 조합으로 단색의 화이트 스니커즈와는 다른 감성이다. 2022~2024년까지 전 세계를 강타했던 아디다스 삼바(Samba) 모델 역시 가죽 갑피에 T자 스웨이드 오버레이, 황토색 검 러버의 미드솔, 그리고 작게 새겨진 금박의 삼바 로고의 조합으로 기존의 화이트 혹은 블랙 스니커즈와 전혀 다른 매력을 연출했다.


최근 유행하는 아디다스 태권도, 도쿄, 슈퍼스타, 핸드볼 스페지알 모두 다양한 컬러 옵션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 블랙과 화이트를 비롯한 뉴트럴 계열이 인기가 좋다. 그래서 스니커즈를 구매하기 위해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있다면 기분 전환을 위해 레드, 옐로, 블루와 같은 컬러를 선택하기보다, 조금 다른 색감과 컬러 혹은 소재가 조합된 블랙 앤 화이트 컬러를 선택하는 것이 더 높은 만족감을 줄 것이다. 물론 특정 컬러에 대한 애정과 욕구가 강하다면 원하는 컬러를 구매하는 것이 자기만족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강렬한 색상에 끌려 충동 구매한 스니커즈는 옷과의 매칭도 어렵고 얼마 가지 않아 질려버려 또다시 새로운 스니커즈로 대체될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계속되는 경제 불황 속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컬러 선택지와 마주하게 된다. 어떤 컬러는 위기가 되고 어떤 컬러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적절한 컬러 선택은 우울감을 해소하고 경제적 손실을 피하며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출발점을 마련해 줄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예쁜 컬러가 아니라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컬러를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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