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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별 구매는 불필요한 욕구일까?

by 이호정

물질의 풍요로움은 필요보다 욕구에 의한 소비를 자극한다. 우리는 꼭 필요하지 않지만 더 갖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쇼핑을 한다. 다른 그 어떤 아이템보다 감성 소비가 이루어지는 의류에서 소비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매 요인은 무엇일까?


2023년 4월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 오픈 서베이가 발표한 ‘MZ세대 패션앱 트렌드 리포트 2022’에 따르면 의류 구매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은 디자인(49.5%), 핏·사이즈(48.8%), 가격(42.0%), 가성비(35.8%), 품질·소재(27.3%), 리뷰(19.3%), 브랜드(17.3%) 순이었다.


컬러를 포함한 디자인은 의류 구매에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컬러의 옷을 발견했을 때 시작되는 고민은 다양한 컬러 옵션에서 어떤 컬러를 선택하는가이다. 아마 누구라도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고민을 하다가 같은 디자인의 옷을 색깔별로 구매한 적이 있는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의류 구매를 할 때 구매 리뷰를 보면 인기 상품은 색깔별 구매를 했다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가끔 게시판에는 같은 디자인의 옷을 색깔별로 구매하는 것에 대한 난상 토론이 펼쳐지기도 한다.


과연 같은 디자인의 제품을 색깔별로 구매하는 것은 불필요한 욕구일까? 합리적인 필요일까?

의류 구매 시 컬러 선택은 늘 고민거리이다. *American Vintage



옷 색깔별 구매 이유


같은 디자인의 옷을 색깔별로 구매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옷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고 색깔별로 다양한 매칭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일반적으로 베이직한 셔츠, 티셔츠 혹은 팬츠와 같이 디자인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아이템은 색깔별로 구매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소비가 될 가능성이 크다. 화이트, 그레이, 블랙, 네이비, 베이지와 같이 베이직한 컬러 중에서 몇 가지 컬러를 선택하면 다른 아이템과 스타일링이 용이하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다.


만약 개당 가격 부담이 적다거나 세트 구매로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면 더욱 추천할 만하다. 특히 옷 쇼핑을 즐기지 않는 경우라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옷을 찾기 위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옷 매칭을 위한 시간 역시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점이 훨씬 크다.

베이직한 디자인의 색깔별 구매는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Soeur


나는 작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팬츠를 고르는데 매우 까다롭다. 세상에 수많은 팬츠가 있지만 내 체형에 딱 맞는 핏의 팬츠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작년 즈음 자라(Zara) 매장에서 발견한 와이드 진 팬츠는 나에게 잘 맞는 핏이어서 키가 커 보이고, 하이웨이스트(High waist) 스타일로 요새 유행하는 짧은 크롭 티셔츠들과 잘 어울렸다. 나는 옷 시착 후 블랙, 베이지, 인디고 블루를 같이 구매하고 이후 라이트 블루까지 구매했다. 팬츠는 베이직한 디자인으로 크게 눈에 띄지 않고, 다채로운 컬러는 상의와 매칭해 다양한 연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만족스럽다. 옷장을 살펴보니 베이직한 티셔츠, 셔츠, 스커트, 레깅스, 니트, 양말 등등 같은 디자인을 색깔별로 구매한 아이템들이 몇 가지 더 있다.


옷을 색깔별로 구매하는 것이 반드시 과잉 소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론 옷의 색깔별 구매가 더 높은 효용성을 가져올 수 있다.

활용도가 높은 베이직한 컬러 아이템 *Zara


두 번째 이유는 옷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고 모든 색깔이 마음에 들어 한 가지 색을 선택할 수 없는 경우다.


하지만 이 경우는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두 가지 색깔이 예뻐 보이는 이유라면 불필요한 소비가 될 확률이 높다. 특히 새롭고 화려한 컬러나 디자인은 강한 자극으로 우리의 눈과 마음을 현혹시키기 때문에 사고 싶은 충동심리를 일으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자극이 약해지고 갖고 싶었던 욕구도 줄어들면 색깔별 구매가 불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옷과의 매칭을 고려하거나 자신에게 더 잘 어울리는 색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게다가 디자인이 너무 독특한 경우는 오히려 똑같은 옷을 두 개 산 느낌이 더 강하게 들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이미지 연출이 어려울 수도 있다.

처음 본 예쁜 컬러들은 충동구매를 일으킨다. *Harris Wharf London


얼마 전 나는 빨간색 깅엄 체크 패턴의 맥시 스커트에 반해서 온라인 쇼핑몰을 헤매다 결국 판매처 한 곳을 알아냈는데 구매하려고 보니 파란색과 검은색 옵션이 더 있었다. 정말 원했던 것은 빨간색이었지만 파란색과 검은색도 예뻐 보여 다 사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경우 나는 바로 구매하지 않고 잠시 시간을 가진다. 그렇게 일주일 후, 처음 느꼈던 그 강렬한 욕구가 잠잠해지나서야 이 스커트는 빨간색 하나만 구매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을 내렸다. 꽤 존재감이 강한 이 스커트는 다양한 컬러로 자주 입기에는 오히려 그 특별함이 반감된다.


스페셜한 아이템은 한 가지 컬러로 충분하다.

특별한 날 가장 어울리는 레드 컬러



펜은 색깔별로 필요할까?

나는 문구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알록달록한 펜들을 좋아해서 문구점 펜 진열장 앞에 서면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색깔별로 다 구매를 해버린다. 물론 수성펜, 색연필, 크레파스, 파스텔, 아크릴 물감 등등은 이미 종류별로 세트 상품을 다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많은 컬러가 다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아니다. 알록달록한 펜들은 책상 위에 뜬 작은 무지개 같은 느낌으로 지루한 공부 혹은 힘든 업무를 할 때 잠시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다. 그리고 메모를 할 때 어떤 색을 고를까 살짝 설레는 딱 그 정도다.

다양한 맥락에 따라 필요한 색은 달라진다. *Faber Castell


컬러펜을 잘 활용하면 주의력을 집중시키고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많은 연구를 통해 무채색보다 유채색의 이미지가 더 잘 기억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유채색 중에서는 빨간색과 노란색이 파란색이나 녹색보다 더 높은 중요성을 나타내고 이것은 더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우리 사회에서 빨간색과 노란색이 언제나 경고의 시그널로 사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요한 내용을 빨간색 펜으로 메모하거나 노란색 형광펜으로 표시하는 것은 해당 정보를 찾아내고 기억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원리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컬러 시스템을 만들어 사용하면 정보 관리나 학습 능률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학습이나 정보 관리 용도로 너무 많은 컬러 사용은 오히려 주의력과 기억력에 방해가 되니 주의해야 한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용도라면 많은 컬러의 물감이나 색연필이 필요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5가지 이내의 컬러만으로도 충분하다.

tempImagedD50Wp.heic 나만의 업무 컬러 시스템 만들기.

알록달록한 색은 언제나 설렌다. 같은 제품을 색깔별로 구매하는 것은 때로는 불필요한 욕구일 수도 있고 때로는 합리적인 필요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과유불급은 변함없는 진리이다. 다양한 맥락에 따라 자신에게 필요한 색깔을 구매하는 현명한 소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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