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시작되는 고민, 오늘 뭐 입지?
옷장을 열면 옷장 가득 옷이 넘쳐 나지만 오늘도 입을 옷이 없다. 신기한 일이다. 아니 심각하다. 주말에 옷을 사러 가야겠다. 옷 매장에 가면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가끔씩 생각한다. 정말 다들 나처럼 입을 옷이 없는 걸까? 보다 정확히 이 상황을 설명하자면 옷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입을 옷이 없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이 문제에 대한 답과 해결책이 절실하다.
분명 옷장에 옷이 많지만 입을 옷이 없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솔직히 매일 아침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서너 번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굉장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미스터리한 현상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입을 옷이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행이 지난 오래된 옷들이 많다.
둘째, 살이 쪄서 안 맞는 옷이 많다.
셋째, 새로 산 옷과 매칭할 옷이 없다.
넷째, 새로 산 옷, 또 실패했다.
다섯째, 특별한 날 입을 특별한 옷이 없다.
그래서 평일에도 주말에도 마땅히 입을 옷이 없고 계절이 바뀌면 더욱 입을 옷이 없다. 그러니 또 옷을 사러 간다.
입을 옷이 없는 본질적인 원인은 인간의 변화 욕구이다. 인간의 변화 욕구를 기반으로 남들과 비슷해지고 싶어 하는 동조화 욕구와 자신만의 차별화를 이루고 싶어 하는 개별화 욕구가 저울질된다. 이러한 밴드 왜건(Bandwagon) 현상 속에서 유행과 유행색이 생겨나고 지속적인 소비가 일어난다.
인간은 같은 물건을 오래도록 지니고 있으면 질리게 되어있다. 새로 산 옷은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샀을 때만큼 설레거나 흥분되지 않는다. 새로움의 자극은 도파민과 관련이 있는데 반복된 노출은 자극치가 약해지고 도파민 분비도 감소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매일 아침 입을 옷이 없는 이 문제에는 스스로 인지하기 어려운 중요한 원인이 숨겨져 있다.
첫째, 옷 스타일링을 위해 꼭 필요한 컬러 아이템이 없다.
둘째, 입지 않지만 버리지 않는 옷들로 옷장이 가득 차 있다.
셋째, 도무지 옷 컬러 매칭이 안 되는 끔찍한 패션 감각을 가졌다.
그래서 인간의 변화 욕구를 충분히 고려하고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 입을 옷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옷장은 베이직한 컬러 아이템과 스페셜한 컬러 아이템의 비율을 7:3 혹은 8:2 정도로 구성한다.
이 비율은 매일 입을 옷이 없고 특별한 날 입을 옷이 없는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고 앞으로 옷장 관리를 위한 가장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다. 베이직한 컬러는 화이트, 그레이, 블랙, 아이보리, 베이지, 네이비 정도이다. 옷장을 아이템별 큰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컬러별로 정리하는 것은 자신이 보유한 베이직한 컬러와 아이템 그리고 스페셜한 컬러와 아이템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옷 컬러 매칭이 어려운 이유는 불필요한 컬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옷장 필수 컬러만 잘 갖추어도 입을 옷이 없는 고민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둘째, 입지 않는 옷들을 정리한다.
옷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옷장에서 어떤 옷이 있는지 파악하고 찾아서 매칭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의 저자이자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고 조언한다. 설렘을 구분하기 어렵다면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불필요한 선택지를 버려야 옷을 매칭하는 일도 수월하다. 입지 않는 옷을 당근 중고 거래하면 작은 용돈 벌이가 될 수도 있고, 그 옷은 진짜 주인을 만나 새 생명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셋째, 컬러와 아이템 매칭 스킬을 익힌다.
먼저 패션 컬러 매칭에서 베이직한 컬러들은 서로 잘 어울리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 베이직한 컬러들은 색상이나 채도보다 명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명도를 잘 조율하면 다양한 이미지 연출이 가능하다. 화이트 셔츠와 베이지 스커트의 매칭처럼 전체적으로 명도가 높으면 밝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만들고, 네이비 스웨터와 블랙 팬츠의 조합처럼 전체적으로 명도가 낮으면 차분하고 시크한 이미지를 어필할 수 있다. 그리고 화이트 셔츠와 네이비 팬츠의 코디네이션처럼 아이템 간의 명도 차이가 크면 보다 또렷한 인상을 전달할 수 있다.
다음으로 스페셜한 컬러를 활용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유행색이나 유행 아이템 한 가지 정도를 구매하고 기존의 베이직한 컬러나 아이템과 매칭하는 것이다. 2025 S/S 유행색 중 하나는 브라운이다. 초콜릿 브라운 니트와 화이트 팬츠, 브라운 스커트와 라이트 블루 셔츠 혹은 아이보리 원피스와 브라운 샌들의 매칭과 같이 브라운 아이템과 베이직한 컬러들을 조합하면 트렌디하면서도 클래식한 룩을 완성할 수 있다.
일상과 업무에서 내가 가장 많이 가장 오랫동안 이용하는 앱은 핀터레스트(Pinterest)이다. 강의할 때도 언제나 이 앱의 설치와 사용을 권장해 왔다. 디자인 영감이 필요하거나 컬러 강의 자료 이미지가 필요할 때 나는 항상 핀터레스트를 검색한다. 그리고 패션 스타일링 혹은 헤어 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핀터레스트는 너무나 훌륭한 패션&뷰티 매거진이다. 핀터레스트는 전 세계 사람들과 멋진 이미지를 공유하고 맘에 드는 이미지를 자신만의 보드에 저장할 수 있는 이미지 아카이브 앱이다. 스타일링 팁을 얻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최신 계절별 스타일링이 궁금하다면 2025 spring outfits, 2025 summer outfits, 2025 fall outfits, 2025 winter outfits을 검색한다. 검색 결과 상단에는 다시 Hippie, Business Casual, Minimalist 등 스타일별로 카테고리를 분류해 보여준다. 아이템별 스타일링은 tulle skirt outfits, grey blazer outfits, 컬러별 스타일링은 red outfits, black outfits와 같이 궁금한 스타일링에 ‘outfits’ 혹은 ‘fashion’을 붙여서 검색하면 그에 해당하는 멋진 스타일링 룩을 볼 수 있다.
'fashion'보드를 만들어 이미지를 저장하면 나만의 패션 아카이브가 완성된다. 글로벌 앱이기 때문에 영어 단어로 검색해야 더 많은 스타일링 룩을 볼 수 있고 상단 메뉴에서 단어를 선택하면 상세 검색을 할 수 있다.
패션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자신의 패션 스타일링을 위한 스킬 정도는 필수다. 이제는 다양한 미디어의 발전으로 재밌게 패션 공부를 할 수 있다. 결국 패션 트렌드를 알고 패션 감각을 익혀야 매일 아침 입을 옷이 없는 고민에서 조금은 해방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일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외모를 예쁘고 멋지게 꾸민다는 건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우리는 몇 개의 옷을 소유해야 옷이 충분하다고 느낄까? 언급했듯이 당연한 인간의 변화 욕구 때문에 우리는 지금보다 2배 혹은 10배의 옷을 소유해도 또 입을 옷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베를린의 싱크탱크 ‘핫 오어 쿨 인스티튜트(Hot or Cool Institute)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74벌의 의류와 한 벌로 구성된 의상 20벌 정도가 적정한 옷장의 옷 수량이며 새 옷의 구매는 연평균 5벌 이내이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수긍하기 어려운 숫자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필요 이상의 과도한 옷을 소유하고 있음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환경 때문이다. 입을 옷이 없다고 느끼는 막연한 고민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패스트 패션의 등장과 함께 세계 의류 생산량은 2배 증가했고 우리는 컬렉션에 등장하는 최신 유행 옷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고 즐길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여기에는 모호하고 교묘한 디자인 카피라는 윤리적인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매년 새롭게 생산되는 옷은 약 1,000억 벌이 넘고 이 중에서 65%는 1년 안에 버려진다. 환경부 환경통계포털 자료에 의하면 SPA 브랜드의 성장과 함께 패션 소비가 증가하며 국내 섬유폐기물은 2010년 112여만 톤에서 2018년 451여만 톤으로 약 4배 증가했다. 심각한 환경 문제와 함께 지속가능한 패션이 대두되었고 기업의 책임론이 강해지면서 SPA 브랜드들은 재활용 섬유 혹은 환경친화적인 섬유를 사용하고 염색 과정 시 물 소비량을 줄이는 등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노력과 계획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개개인의 노력도 있다. 의식적인 옷장 관리와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안목, 필요한 만큼 구매하는 약간의 절제심 그리고 패션 스타일링 스킬을 향상시키는 것을 통해 자신의 매력을 배가시키고 옷의 수명도 연장시킬 수 있다.
다행히 한국섬유산업연합회(KOFPTI)가 발표한 20~50대 의류 소비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분기 의류 구매 수량은 1벌이 31.8%로 2021년 22.7%보다 9.1% 증가했고 2~4벌은 58.3%로 전년 대비 소폭 감소해 전체적으로 감소 추이를 보였다. 구매 금액은 1회 의류 구매액이 평균 10만 원 이상이라는 응답자는 40.9%로 전년 25%보다 15.9% 증가했다. 의류 구매 수량은 감소하고 구매액은 증가해 양보다 질을 선호하는 트렌드가 강해진 것으로 분석되어 긍정적이다.
부디 내일부터는 입을 옷이 없는 고민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