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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사용 능력 계발하기

by 이호정

그 어느 때보다 자기 계발이 치열한 시대가 되었다. 자신의 업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경쟁력과 가치를 높이기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업무가 끝나도 바쁜 일과가 계속된다.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더 건강한 몸을 위해 그리고 더 행복한 삶을 위해 배움을 지속한다.


요새는 클래스 101이나 탈잉과 같은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통해 개인 과외 선생님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재테크, 운동, 요리, 그림, 글쓰기, 외국어 그리고 보컬 트레이닝까지 우리가 해야 할 자기 계발은 끝이 없다.


개인적으로 ‘운동’은 모든 자기 계발을 위한 기본기를 다지는데 도움이 되었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로를 대응하기에 좋은 음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던 나는 체력 향상을 위해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헬스 트레이너의 관리형 프로그램에 따른 강제성 덕분에 운동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트레이너의 1:1 지도는 바른 자세를 통해 운동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이끌었다. 게다가 점점 늘려가는 덤벨 무게는 꽤 짜릿한 희열감을 맛보게 해 주었고 향상된 체력은 단단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건강한 몸과 정신은 어떤 일을 하든 갖추어야 할 필요조건이다.

tempImageirelRD.heic 블랙&화이트, 취향저격하는 운동복과 운동화는 운동에 흥미를 갖게 해 준다. *아디다스


그리고 또 하나 ‘컬러 사용 능력’은 일상과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심미적 만족감을 충족시켜 삶의 질을 향상 시키는데 기여하는 필수 항목이다.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컬러 코드를 해독하고, 복잡한 컬러들을 조화롭게 정돈하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컬러를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다면 삶의 작은 변화가 생겨날 것이다. 컬러에 대한 민감도는 개인차가 있고 느끼는 필요성도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분명한 건 컬러에 대한 투자는 운동처럼 다른 모든 자기 계발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tempImageTFOptN.heic 나만의 잉크를 직접 만들어보는 조색 과정을 통해 색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다. *모나미 잉크랩 인사동점



컬러도 공부가 필요해


과연 우리는 매일 마주하는 컬러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일상에서는 컬러에 대해 잘 몰라도 생활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는 듯하다. 어쩌면 빨간색이냐 파란색이냐 하는 선택지는 수학 공식처럼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쉬운 것 같지만, 컬러의 해답을 찾기 위한 알고리즘은 보다 내재적이고 잠재적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기 쉽다.


옷 컬러 매칭의 실패는 소개팅 실패로 이어질 수 있고, 잘 못 고른 과일의 컬러 때문에 쓰디쓴 과일 맛을 보게 될 수도 있고, 무심코 지나친 빨간 신호 때문에 생명을 위협받는 대형 사고를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부족한 컬러 지식과 정보 그리고 무딘 컬러 감각은 막대한 기회비용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컬러는 자기 계발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상식이자 가장 난이도 높은 스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컬러를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는 사람들 혹은 컬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 모두에게 컬러는 난제다. 컬러에 대해 더 많이 안다고 더 잘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컬러에 대한 배움과 그를 바탕으로 한 경험은 컬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해결해 줄 것이다. 컬러는 감각의 영역이기 전에 기술의 영역이다. 기술을 익히면 감각이 길러진다.

tempImageWcRIFV.heic 직접 컬러를 다루어봐야 컬러가 지닌 감성과 느낌을 알 수 있다 *2019 SEOUL MICE WEEK 컬러 마케팅 강연



제3외국어 컬러

만약 우리가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다소 다른 세계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오스트리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그림’ 이론을 통해 눈에 보이는 세계는 논리적인 그림처럼 언어로 그대로 표현해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자신의 학설을 스스로 뒤집고 주장한 ‘언어게임’ 이론에서는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게임 규칙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맥락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결국, 철학적 오류와 문제는 잘못된 언어 사용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철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언어 사용 즉 분명한 생각을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언어그림'이 언어가 세계를 그림처럼 반영하는 방식에 집중했다면 '언어게임'은 언어가 세계에서 쓰이는 방식에 집중한다. 두 가지 이론은 철학적 관점을 달리하고 있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를 형성하며, 언어의 한계가 곧 사고의 한계라는 공통된 문제의식을 가진다. 컬러 역시 이에 대응해 생각해볼 수 있다.


과거 파란색과 초록색을 아울러 '푸른색'이라고 불렀던 언어적 영향으로 우리는 '초록색 신호등'을 '파란색 신호등'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초록색’라는 언어 사용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정확한 ‘초록색’을 인식할 수 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 분홍, 갈색, 흰색, 회색, 검정과 같이 기본적인 11가지 색상 이름만 알고 있는 일반인과 크림슨, 번트 오렌지, 커네리 옐로, 세이지 그린, 틸블루, 라일락, 퓨샤핑크, 탠, 스노우 화이트, 애쉬, 에보니와 같이 미묘한 톤의 차이를 가지는 색상 이름을 100가지 알고 있는 디자이너가 인지하는 세상은 분명 다르고 그가 선택한 색으로 만들어 내는 결과물도 달라질 것이다.

tempImageQ5F767.heic 과거 파란불로 불렸던 신호등은 이제 초록불이라고 불린다.


컬러는 또 하나의 언어이다. 컬러 사용 능력은 언어 구사 능력과 유사하고 그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표현해 낼 수 있고 다양한 맥락 안에서 다르게 사용될 수 있다. 색을 보는 것은 시각에 의한 것이지만 색을 느끼고 인식하는 것은 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언어가 없다면 사고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컬러의 언어를 익히지 못한다면 실제로 컬러를 보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컬러를 외국어 공부와 같다고 가정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컬러 공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컬러 사용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본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컬러의 연상 작용을 익힌다.


둘째, 컬러 조합의 규칙을 이해한다.


셋째, 맥락에 맞는 컬러를 사용한다.


먼저 컬러 연상 작용은 영어 공부에서 새로운 어휘를 늘려가는 것과 같다. 수많은 색이 가진 의미와 감성을 알아야 그 색을 정확히 사용하고 상대에게 원하는 메시지와 감성을 전달할 수 있다. 하나의 컬러 코드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정보를 해독하는 능력은 단순한 기억력이라기보다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 컬러 사용 효과를 높이고 싶다면 컬러 연상을 잘 활용해야 한다. 언어그림 이론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연상은 눈에 보이는 구체적 연상보다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tempImageJUsR2s.heic 블루는 공조, 그린은 수도, 레드는 승강기, 옐로는 전기 시스템을 상징 *파리 퐁피두 센터


다음으로 컬러 조합의 규칙은 언어의 문법과 같다. 기본적인 문법을 알아야 문장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배색의 규칙을 알아야 조화로운 배색을 완성할 수 있다. 영어 공부에서 문법 공부는 늘 까다롭고 싫지만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습득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문법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컬러 조합의 법칙을 모른 채 감으로만 컬러 매칭을 하기 때문에 실패 확률이 높은 것이다. 복잡한 배색 규칙을 모두 외울 필요는 없다. 기본적인 배색의 원리만 이해하고 많은 트레이닝을 통해 자신만의 감각을 키워가는 것이 좋다. 조화로운 컬러 매칭은 심미적인 만족감을 충족시켜 줄 것이다.

tempImage0ezkbL.heic 오렌지와 블루는 보색 관계로 조화롭고 아름답다. *파리 콘란샵


마지막으로 컬러의 맥락은 언어의 맥락과 같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이나 상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듯이 컬러도 다양한 맥락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하나의 컬러는 다양한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언뜻 간단해 보이는 컬러 선택지를 마주했을 때 결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복잡한 컬러의 맥락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컬러가 놓이는 장면(Scene)을 떠올려보면 해당 컬러가 어떠한 맥락 속에 있는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좋은 컬러는 좋은 관계성을 가진다.

tempImagednSJnH.heic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패션 아이템과의 어울림을 고려해 컬러 선택을 한다. *메르시 에코백



붉은 여왕이 전하는 메시지


이제 자기 계발을 위해 컬러 공부를 시작할 때이다. 학교 교과 과정에서 색채 교육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컬러는 스스로 발견하고 꾸준하게 계발해 나가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붉은 여왕의 가설(Red Queen hypothesis)'은 진화 생물학자 레이 밴 베일런(Leigh Van Valen)에 의해 발전된 가설로 경쟁자에게 맞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의 한 장면에서 유래된 이 이야기는 앨리스가 나무 아래서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인 것 같은 이유를 묻자 붉은 여왕이 대답한다.


“제자리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계속 달려야 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2배 이상 더 빨리 달려야 하지.” 이 가설은 지금도 여전히 적용되는 이야기로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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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컬러 공부가 당신의 인생 여정을 너무 숨 가쁘게 만들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부디 그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분명 당신은 컬러를 알아가는 여정 속에서 그 어떤 자기 계발보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과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경이롭고 다채로운 결과로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더 찬란한 세상을 만나길 원한다면 지금 바로 컬러풀한 세상을 향해 한걸음 내디뎌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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