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질 때는 레드 립스틱을 바르고 자신의 공격성을 드러내보세요.
- 코코 샤넬
유튜브 샤넬 채널에서는 샤넬의 컬러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담긴 영상을 볼 수 있는데, 그중 레드에 관한 한마디가 잠잠했던 자신의 공격성을 일깨운다.
레드는 자신감과 열정 그리고 적극성과 강인함을 지닌 컬러이다. 레드 립스틱, 레드 슈트, 레드 하이힐 혹은 레드 네일 컬러 그 어떤 아이템이든 레드 컬러는 여성에게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색채 심리학에서 레드는 행동하게 만드는 컬러다. 레드 컬러를 입은 날에는 어디서든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기는 어렵다. 당신이 움직이지 않아도 분명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넬 것이다.
개인적으로 레드 컬러를 그다지 즐겨 입지는 않지만 스스로 텐션을 끌어올려야 할 때에는 의도적으로 레드 아이템을 장착한다. 레드 립스틱을 바르면 왠지 비장한 마음이 든다. 조금 더 마음먹은 날 옷장에서 레드 재킷을 꺼내 입는다. 이 정도 무장을 하면 집 앞을 나설 때부터 슬슬 기분이 고조된다.
신기할 만큼 이후 밖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꼭 한 마디씩 건네온다. “오늘 멋있어요.” “빨간색 재킷 잘 어울려요.” 등등 회사 동료는 물론이고 평소 말을 걸지 않았던 헬스장 직원 그리고 물건을 사러 간 매장에서도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그 한마디 한마디는 다시 내게 에너지를 주어 텐션이 더욱 올라간다. 조금 과장되지만 이건 마치 마법의 재킷 같다. 얼마 전 구매한 빨간색 메리제인 구두는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의 '루비 구두'처럼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기대감을 갖게 한다.
레드는 유혹적이고 관능적인 컬러다. 우리가 느끼는 매혹적인 레드의 기원은 동물 세계에서 암컷들이 번식기가 되면 둔부나 생식기와 같은 신체 일부분이 발그레해지면서 짝짓기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여성의 경우에도 배란기에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과 게스타겐이 피부에 홍조를 띠게 만든다. 우리가 느끼는 레드 컬러의 심리적 효과는 문화적인 것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요인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2008년 로체스터 대학 연구진은 남성들이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을 더 매력적으로 느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레드 드레스 효과(Red Dress Effect)'는 빨간색이 이성에게 어필하는데 효과적이라는 걸 알려준다.
2017년 버톨드, 리스, 마틴의 연구에서는 빨간색이 스스로를 더 매력적이라고 평가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걸 입증했다. 실험에서는 남녀 대학생들에게 빨간색 혹은 파란색 셔츠를 입게 하고 거울 앞에서 자신의 매력을 평가하도록 했다. 참가자들은 파란색 셔츠보다 빨간색 셔츠를 입었을 때 자신의 매력을 더 높게 평가했고, 파란색 셔츠를 입은 다른 참가자들보다 빨간색 셔츠를 입은 자신의 매력을 더 높게 평가했다.
'자기 인식 적색 효과(The Self-Perception Red Effect)'에 따르면 빨간색을 착용하면 자신을 더 매력적이고 성적으로 개방적이라고 느끼게 되고, 자신이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다.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날 혹은 자신감을 장착해야 하는 날 빨간색은 확실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혹시 '나는 빨간색이 어울리지 않아' 그래서 빨간색을 멀리했었다면 진심으로 얘기하고 싶다. 세상에는 다양한 톤의 아름다운 빨간색이 있고 모든 여성에게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빨간색이 있다고. 자신의 매력을 돋보이게 만들어줄 빨간색을 찾는 것은 살면서 반드시 달성해야 할 중요한 미션이라고.
1970년대 후반 등장한 '파워 드레싱(Power Dressing)'은 과거 남성이 지배했던 직업 세계에서 성공을 추구하는 전문직 여성의 등장과 함께 생겨난 패션 스타일의 용어였다. 198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한 파워 슈트는 남성의 슈트와 유사한 넓은 어깨 패드의 재킷과 펜슬 스커트 혹은 팬츠와의 코디네이션 그리고 선명한 원색이나 블랙, 네이비, 그레이와 같은 중성적인 컬러로 자신감 넘치는 여성의 이미지를 어필했다.
2011년 롭 영(Robb Young)이 쓴 책 『파워 드레싱: 영부인, 여성 정치인 그리고 패션(Power Dressing: First Ladies, Women Politicians, and Fashion)』을 보면 파워 드레싱의 의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정치인들이 외적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이고,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며, 권력을 강화해 무엇을 ‘선동‘하는지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로 절대적인 국민적 지지를 얻었던 전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은 컬러풀한 패션으로 유명했다. 그녀는 함부르크 디자이너 베티나 숀바흐(Bettina Schoenbach)의 3개 버튼 팬츠 슈트를 즐겨 입었는데, 다양한 컬러 재킷과 항상 같은 블랙 컬러 팬츠와의 조합은 이슈 거리였다. 그래픽 디자이너 노르트제 반 에켈렌(Noortje van Eekelen)이 그녀의 패션 컬러 팔레트를 팬톤 컬러 차트처럼 만든 사진을 보면 그 다채로움에 깜짝 놀라게 된다.
샤넬의 디자이너였던 칼 라거펠트는(Karl Lagerfeld)는 그녀가 재킷의 컬러를 줄이고 더 나은 팬츠를 맞춰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했지만, 디자이너 볼프강 요프(Wolfgang Joop)는 2006년 자신의 FW 컬렉션의 뮤즈로 그녀를 선정하고 강하고 용감한 스타일이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양한 컬러의 재킷을 통해 세상의 다양함을 포용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걸까? 사람들은 매일매일 다른 색상을 입은 메르켈 총리를 보며 그녀의 의도를 정확히 인식했을까? 여러 가지 의문점이 들지만 그녀의 뛰어난 리더십은 16년간 독일을 이끌었으니 앙겔라 메르켈만의 독특한 파워 드레싱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느껴진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우 컬러풀한 옷을 즐겨 입는 것으로 유명하다. 때로는 정말 예상치 못한 독특한 디자인과 상상을 초월하는 화려한 컬러로 깜짝 놀라게 한다.
몇 년 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네온 그린 컬러의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모습은 역시 파격적이었다. 처음에는 퍼스널 컬러 관점에서 과연 형광색이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 쨍한 컬러는 유쾌하고 활기찬 그녀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어서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날 시상식에서 대상까지 거머쥐었으니 컬러만큼이나 그녀의 재능과 노력이 주목받았던 그녀의 날이었다.
그녀는 작은 키에 속하지만 다채롭고 화려한 컬러 덕분에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넘치는 에너지와 열정 그리고 즉각적으로 곁에 있는 사람을 웃게 만드는 유머와 재치는 형형색색의 패션 컬러와 어우러져 더욱 그녀의 존재감을 느끼게 만든다.
색은 이미지를 만들고 매력을 드러낸다. 색은 자신의 장점을 강화하고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
정글 같은 직장에서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 무장이 필요하다. 물론 단단한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컬러 선택이 그 마음가짐에 파워 부스터 역할을 해줄 수 있다.
나는 강의가 있는 날 주로 블랙 블레이저 혹은 블루 셔츠를 즐겨 입는다. 블랙은 단호하고 전문가적인 이미지를 어필할 수 있는 컬러이고 블루는 스마트하고 쿨한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컬러이다. 이 두 가지 컬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컬러이기도 하고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며 나의 매력을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컬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감이 부족한 날, 왠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 혹은 화장하기 귀찮은 날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다. 솔직히 이 아이템이 나에게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가장 잘 방어해 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검은 뿔테 안경은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날 도움이 되는 특수 무장 아이템이다.
다양한 컬러가 가진 각기 다른 에너지에 집중해 보면 일상에 도움이 되는 많은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나의 매력을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컬러와 나를 잘 방어해 줄 수 있는 나만의 컬러 팔레트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분명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마법 같은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