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컬러로 만나는 세계

우연이 아닌, 이미 내 안에 있던 색

by The Color Curator

어린 시절, 처음 만난 색과 세계


네 살, 기억이 흐릿할 법한 나이.

나는 처음 비행기를 타고 미국 땅을 밟았다. 당시 한국에서는 여행이나 유학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엄마 아빠 손을 꼭 잡고 마주한 미국의 풍경은 낯설면서도 신기했다. 우리가 살던 곳은 한국인이 거의 없는 백인 동네였고, 외교관 가족들의 아이들이 내 곁에 자연스럽게 있었다.

그 친구들의 옷차림, 피부색, 머리카락, 그리고 알 수 없는 향기까지—모든 것이 내게 새로움 그 자체였다. 작은 내 눈에는 세상이 온통 색으로 가득 찬 듯했고, 그때부터 나는 ‘컬러’라는 미묘한 감각에 이끌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다채로운 색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내 마음에 잔잔한 설렘으로 남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처음 본 발레 공연 호두까기 인형은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무대 위 튀튀복의 부드러운 파스텔 톤과 섬세하게 표현된 메이크업 속 색채의 조화는 마치 살아 있는 인형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엄마에게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졸랐다. 나도 저들처럼 빛나는 색과 표정을 가진 인형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거울 속 내 모습과 주변 친구들의 차이는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 차이는 나에게 작은 질문을 남겼다.
“왜 나만 이런 색일까?”




다시 만난 한국, 또 다른 세계


영어가 익숙해질 즈음,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너무 어렸던 탓에 한글을 다시 배우기 위해 유치원부터 다녀야 했다. 그 사이 발레와 색채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졌지만, 국악과 한국 문화를 배우며 또 다른 색의 세계를 만났다.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삶, 나는 그렇게 자꾸만 새로워져야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는 영어 한마디도 못한 채 낯선 환경에 던져졌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물어보는 것이 창피한 일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창피한 일이다.”

언어의 기본은 문법과 단어라고 하셨던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에, 나는 성문종합영어 수업으로 틀을 잡고 TV와 역사책을 통해 영어 실력을 조금씩 쌓았다.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어 시 낭송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모르는 언어로 시를 낭송하는 순간 심장이 터질 듯 떨렸다. 하지만 끝까지 마친 내 자신이 대견했는지, 뜻밖에도 수상까지 하게 되었다.

그 후 1년 만에 ESL 과정을 졸업했다. 내 일상은 마치 입시생의 루틴 같았다. 아침에 스트레칭과 조깅으로 몸을 깨우고, 학교를 다녀온 뒤에는 영어 공부와 숙제를 이어갔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매일 반복되는 작은 노력들이 쌓이며 새로운 언어와 문화, 그리고 자신감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갔다.




신비로운 ‘컬러’ 경험


영어가 자유로워지자 친구들도 점점 많아졌다.

그중 가장 놀라웠던 건, 메이크업을 하고 등교하는 친구들의 모습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서로 파운데이션을 손등에 발라보고, 립글로스를 빛에 비추며 색감을 비교했다. 하지만 백인 친구들과 달리 내가 바르는 색은 언제나 어색하게 보였다. 왜 그럴까?

CVS 편의점 메이크업 코너에서 여러 파운데이션과 립글로스를 테스트하며, 나는 언젠가 저들처럼 환하고 투명한 피부를 갖게 될 날을 꿈꿨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피부색이라는 컬러는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사람의 개성과 감정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기술은 섬세하고도 정교해야 한다는 사실도.

이 경험은 나에게 자연스럽게 퍼스널 컬러와 뷰티의 세계로 이어졌다. 어린 시절 느낀 색과 문화의 조화, 그리고 자신과 주변을 관찰하며 쌓은 감각은 나만의 ‘색을 읽는 눈’을 만들어 주었다.

중학교 시절, 나는 피부와 색에 대한 호기심을 마음 깊이 품고 성장했다. 그 호기심은 훗날 화장품과 색채를 연구하고 기획하는 커리어로 이어졌다. 단순히 아름다움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문화, 감정을 연결하는 방법을 배우는 여정이었다.




낯선 한국, 그리고 성장의 시간


한국에 돌아와서는 너무 많은 교과정을 들어야만 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생활은 보통 7과목 정도를 선택해 듣는 형태였기에,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 수업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은 거의 낙제 수준이었고, 꼴지를 면하기도 어려웠다.

다른 학생들은 특례 입학 대상자로 2~3과목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나는 전학이 아니라 한국 학생들과 동일하게 전체 교과목을 따라야 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미 준비된 상태였고, 어머니는 입시에 전념하셨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던져진 기분이었다.

때로는 투정을 부리고 싶었지만, 나는 상황 속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았다.

바로 영어특기자로 입학하는 것.

그 선택은 이후 내 학습과 성장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