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은날 Aug 22. 2022

'불행'만 공유하는 친구

 힘든 일이 있을때 서로 나누고 의지하는 것이 친구라고 했다. 상대의 힘듦에 깊은 공감을 느끼고 내 일처럼 아파하는 것은 정말로 가치있고 고귀한 일이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참으로 인간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힘들어해주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나의 에너지를 소모해가며’ 상대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적절하게 반응도 해주고 함께 고민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은 상대에게 고마움을 느끼기 마련이고 또 그 고마움이 선순환적으로 확산되어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유대감도 형성된다.


일방적인 관계는 없다. 위의 고마움의 선순환 과정은 장기적인 관계 유지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가끔 저 선순환적인 과정의 시작인 '고마움을 느끼는' 과정이 편안함 속에 묻혀 생략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상대를 오래 봐왔다는 이유로 혹은 상대를 잘 안다는 '편안함'을 앞세워 '고마움'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물론 친하고 편안한 관계에서 매번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와 같은 어떻게 보면 조금은 낯간지러운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리 친한 관계여도 저런 말을 자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는 나의 힘든 상황과 감정에 파묻혀 그 고마움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서 벗어났을 때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결국 장기적으로 그 관계는 유지될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마움이 없는 '편안함'이라는 이름 하에서는 상대와의 관계를, 상대의 노력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고 당연한 관계에서는 고마움보다는 서운함이 더 자주 발생하게되고, 서운함이 자주 들면 이것도 못해줘?'라는 마음이 불쑥불쑥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는 관계의 악순환이다.


나도 20대 초반에 첫 연애를 하며 연애가 주는 달콤함에 빠져 0순위를 남자친구로 둔 적이 있다. 당시에는 친구들과 하는 이야기도 대부분 남자친구였고, 특히 남자친구와 싸운 이야기가 제일 많았더랬다. 인생 첫연애였기에 남자친구와의 싸움은 나에게 정말로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공감받고 위로받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던 시기였다. 싸우고 나서 밤늦게 친구에게 전화를 하여 감정을 쏟아내기도 하고,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들의 연락을 씹기도 하였다. 그렇게 지내다가 친한 친구한테 '아니 너는 남친이랑 이번엔 진짜 헤어질거다라고 하더니 여행을 가있냐'며 핀잔을 듣기도했고, 또 다른 무리의 친구들에겐 '너가 하도 답장을 안해서 이제 앞으로 너를 빼고 만나려고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위와 같은 몇몇의 에피소드를 겪고 또 그렇게 죽고 못살던 그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선, 이렇게 하다간 정말 친구를 다 잃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으며 스스로 반성도 했었다.


그 이후로는 정말 너무도 시시콜콜한 남친과의 투닥거림은 혼자서 다스릴 수 있게 되었고, 감정을 토해내는 것이 아닌 고민과 감정을 교류하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그것을 함께해준 상대의 고마움도 알게되었다. 나의 힘듦을 나눠준 친구에겐 감정을 추스린 다음의 생각을 공유하려고 노력하였고, 힘듦뿐만 아니라 즐거움도 함께 공유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친구의 일상에 대해 먼저 물어봐주고, 그때 고민하던 그것은 잘 해결되었는지 등등을 먼저 물어보려고 하였다. 이것이 나의 고마움 표현 방식이고,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앞에서 말했던 관계의 선순환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옆에서 손내밀어주는 친구,  이야기에 조용히  기울여주는  친구도 당연하지 않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아무리 여유가 없더라도 가끔은 상대의 안부를 먼저 물어봐주자.


작가의 이전글 소심한 사람이 착한 사람은 아니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