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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날 Sep 01. 2022

9to6 직장인의 '자유로움’에 대한 짧은 고찰

난 초중고 시절 내내 불행했다. 솔직히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불행할 이유는 없었는데 매일매일 아침이 힘들었고 월요병을 지금보다 심하게 겪었었다. 오죽하면 인생은 "앉아있는 것, 서있는 것, 누워있는 것" 이 세 가지뿐이라며 스스로 달래고 위로하였다. 그러니까 넌 학교를 가서도 저 세 가지 중 하나만을 하는거라고 그러니까 별거아니라며 위안했던 것이다. 반에서 왕따를 당했던 것도 아니고(오히려 교우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공부를 못했던 건 아니고(오히려 잘했다), 가정환경이 불행한 것도 아니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약8년간 방학을 제외한 매일 아침이 불행했다. 아침에 잘 못일어나기도해서 매일 아침 자퇴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 같다.


대학을 가서는 상황이 180도 완전히 바뀌었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나는 내가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인줄 알았는데 대학교에 가니 그게 아니었다. 새로운 사람 만나는건 전혀 걱정되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수업을 듣고 내가 원하는 동아리에 가입하고 원하는 요일에 학교를 가고 남은 시간은 내가 원하는대로 보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정말 너무너무 행복했다. 대학시절 친구동생 과외를 시작으로 운이 좋게 과외 알바를 꾸준히 할 수 있었고, 하루에 과외를 3개씩 하기도 하였다. 시간적으로는 아마 (고3을 제외한)학창시절보다 또는 지금보다 더 바쁘게 살았던 것 같다. 그래도 행복했다.


초중고 학창시절 유독 불행했던 이유와 대학시절 유독 행복했던 이유를 평소에도 종종 생각했었는데, 결론은 '자유'인 것 같다. 중학교 시절, 국어선생님께서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나에게 "00이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니?"라고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하루에 아무 계획이 없을 때요"라고 대답을 했는데, 선생님은 약간 당황하시며 "00이는 아무것도 안할 때 제일 행복하구나~"라고 말을 했던 적이 있다. 나의 대답은 '아무것도 안하는' 그 순간이 행복하다는게 아니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무런 계획이 없는' 그날 하루가 행복하다는걸 말하고 싶었다. 이는 내가 여행을, 그 중에서도 계획이 없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로움’이란 어떤 것을 선택할때 오롯이 나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당연한 말이기도 한데, 어른이 되어 현대사회에서 돈을 벌어보니 이것이 참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배웠다. A라는 같은 선택을 하더라도, 내가 정말로 그것을 하고싶어서 혹은 필요하다고 판단을 해서 선택을 하는 것과 무언가에 떠밀리듯 혹은 누군가가 좋다고해서 선택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 나는 그 안에 자유로움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눈을 떴을때 ‘계획’이 없는 날은 정해진 일정이 아닌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으니까, 나는 그 안에서 자유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물론 이런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자유가 결과를 보장해주진 않기 때문이다. 20대 시절 참 다양한 경험을 했었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유가 주는 불안함을 몸소 느꼈고, 그 불안함의 무거움에 빠져 허우적되기도 했었다. 이후 서른을 시작하며 직장에 취직을 하였고, 그동안의 불안정한 생활을 청산하며 직장이 주는 안정감에 나름 만족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요즘 다시금 학창시절의 불행함이 문득 문득 올라온다. 아침이 묶여있는 삶이 답답하고 하루에 최소 9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며 저녁에는 녹초가 되어 돌아와 운동이나 하면 다행인 그런 삶이 불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나는 이 직장을 행복을 위해 선택하지 않았고, 나란 사람 자체가 일로서 무언가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끼는 성향이 아니라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 이 일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러한 권태로움과 무료함은 어느정도 내가 감수해야할 부분인 것이다. 이를 감수하고자 일을 시작하며 발레, 수영, 목공  참으로 다양한 취미에 도전하였다. 하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은 지울  없었는데 이는 직장생활이 맞지 않는 나로부터 비롯된 ‘자유에 대한 갈망이리라. 조르바를 보며 진정한 자유란 마음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지금 상황을 탓하고 있는 것일까? 그냥 놀고싶다는 말을 거창하게 하고 있는 것일까? 삼십년 조금 넘는 인생을 살며 인생에서 현실과의 타협은 필수적이란 것을 깨달았다. 나의 이런 ‘자유에 대한 갈망또한 현실과 타협을 해야겠지. 나의 일상이 오롯이 나의 선택이지만은 않은 현실과 타협해야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 향하여 한발자국 한발자국 걷다보면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나의 삶을   자유롭게 만들어줄  있는 원동력이   지 않을까, 조용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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