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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날 Oct 23. 2023

30대 중반, 첫 아기를 낳다 (1)

자연분만 그거 아무나 하는게 아니더이다!

 수술 날짜까지는 아직 10일 전, 남편과 함께 저녁 산책을 하는데 갑자기 무언가 흘렀다. 임신 기간 중에 요실금도 없었고 생리하는 느낌과는 또 달라서, 왠지 양수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산책 후 집으로 돌아가 확인을 해보니 투명한 물과 같은 액체와 아주 소량의 피가 보였다. 원래는 산책 후 자기 전에 보드게임을 하려고해서 남편은 보드게임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서는 피가 보였다니까 내방을 하라고 했다. 허얼- 임신기간 중 이렇다 할 이슈가 없었어서 나는 당연히 수술 날짜까지 아무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을줄 알았다. 그래도 출산가방은 얼추 싸놓아서 다행이지.. 일단 옷도 대충 입고 남편과 함께 늦은 밤에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진통검사 같은 걸 하고 기다렸다. 검사 결과, 새어나온 건 양수가 맞았고 진통도 규칙적이라고 했다. 나는 고민 끝에 제왕절개를 하기로 하고 날을 잡았었는데, 의사선생님께선 자연분만에 한번 도전 해보자고 하셨다. 일단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고있고, 자궁문은 1cm 열렸고, 아기머리도 크지 않고, 내 골반도 나쁘지 않다고 하셨다. 의서선생님의 말이 굉장히 설득적이었고 자연분만에 대한 생각이 0%는 아니었던지라 도전을 해보기로 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진통은 굉장히 참을 만했다) 본격적으로 진통이 시작된 것은 12:30am 즈음. 조금 심한 생리통 정도였다. 진통 주기는 12-3분정도 됐던 것 같다. 진통의 주기가 짧아지는 만큼 진통의 강도도 세졌다. 새벽 4시즈음부턴 진통이 오면 '아프다'고 느낄 정도가 되었다. 


새벽 6시즈음부턴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되었다. 주기는 5분 정도로 짧아졌고, 통증이 오는게 두려워졌다. 나는 통증이 허리로 와서 어떤 자세로 있어도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는 표현을 왜 쓰는지 알 것 같았다. 이때 자궁문을 다시 측정해보았는데 처음 쟀을때와 거의 동일하다고 하였다. 좌절한 나는 간호사분께 바로 제왕절개를 해달라고하였다. 2cm만 됐었어도 자연분만에 좀 더 도전을 해봤으련만 그대로라니...! 그 와중에 새벽에 오신 한 산모분은 자궁문이 4cm나 열렸는데 아직 진통이 안왔다고하여 돌려보내졌다. 저 이야기를 들으니 더더욱 자연분만에 대한 생각은 사라졌다. 당시 고통은 너무 극심하여 수술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빨리 마취주사를 맞고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척추주사를 맞았고 순식간에 통증은 사라졌다. 하반신 마취만 하여 애기가 나올때까지 깨어있었다. 아기 울음 소리를 들었고 아기 얼굴을 보았고 나는 잠이 들었다.


밤새 통증에 시달렸던 터라 완전 숙면을 취하였다. 남편 말로는 코를 엄청 골았다고 했다. 어찌나 잠을 잘잤던지 순간 여기가 어딘가싶었다. 하반신 마비가 덜 풀린 나는 들 것에 실려 병실로 옮겨졌다. 슬슬 배에 통증이 올라오고 정신도 없고 그래서 그때는 잠시 나의 몸에서 분리된 아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까먹었던 것 같다. 생각했던 것만큼 감격스럽지 않았고 아기를 봤을때 울지도 않았다. 그저 신기했다. 배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딸꾹질을 하던 존재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니. 하지만 아직은 조금 덜 친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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