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탄한 날이다. 평범한 기분은 노력하지 않을 때야말로 스며들기 쉬워야 한다. 평범이란 말로 표방하는 것이 무난과 일상이기 때문이다. 투지를 불태우거나 절망에 가득 찬 기분은 평탄과 어울리지 않는다. 의지를 흐리면 흐릴수록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상태에 머무는 것이 평탄이다.
이런 기분을 가졌던 게 언제였는지 회상해봤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간단히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기분은. 양극을 끝없이 오가다 머무르는, 호흡을 마셨다가 내쉬기 전의, 들이킨 숨이 코 안에 머금어져 있는 잠깐의 평온한 긴장은 내게 희박한 것이었다. 이미 평탄이라 이름 붙이기 무안한 이 기분이, 정말 오랜만에 내게 머물렀다.
날씨 덕인지도 몰랐다. 바람은 서둘렀지만, 바람을 품은 하늘은 그렇지 않았다. 하늘은 가만했다. 굳이 올려다보지 않아도 여명을 품은 것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하늘이었다. 그런 하늘이 좋진 않다. 하늘은 구름을 입어야 가장 예쁘다. 그러나 나의 몸은 그런 취향과 별개로 태양 가득한 하늘을 반겼다. 지상의 온기와 지하의 우울이 적절히 조화되어 오늘의 평탄을 만들었음이 틀림없었다. 지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음악을 들었다. 엎드려 있었다. 새가슴을 바닥에 뉘이곤 벽을 쳐다보았다. 나는 무엇도 바라지 않았고, 조금도 슬프지 않았다. 벗어나고자 나아지고자 뭔가에 도달하고자,라는 말에 줄곧 기분을 가두었는지도 몰랐다. 끊임없이란 단어를 적어내리는 나를 자주 보았다. 나는 어쩐지 그 말이 주는 고양감에 의지하곤 했다. 내몰렸던 것이었을 뿐일 텐데. 하지만 아직은 익숙지 않은 기분에 잠겨있었기에 상념마저 금방 흐려졌다.
기분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몸과 마음 - 감정을 담는 칸은 힘에 가득 차서 펄떡거리고 있었지만, 정작 그 칸에 들어있는 것은 없었다. 늘 그러듯 내 안을 지켜보아도, 세계에 비추어 나를 들여다보아도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공허는 아니었다. 나는 투명한 기분에 빠져 세계의 고요한 수맥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분명 살아있는 것을 무념하게 보고 있었다.
길을 뛰었다. 특별한 평탄을 인지하기도 전이었다. 숨은 금방 찼지만 기분이 좋았다. 조용히 익어가는 길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