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과 표면

by 김존재

사로잡힌 마음들은 하나 둘 풀리고 있다. 사람들은 웃음 짓는 법을 과하게 익히고 있다. 입꼬리는 입 언저리에 붙어있어야만 하나, 사람들은 그것을 자각하진 못한다. 웃기 위해 살아가는 듯했다. 즐거워 보였다. 분명 즐겁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이기엔 그랬다.

보이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보여지기 위해 살아가는 현대인들이었다. 각자의 몸이 스스로의 자아를 전시하기 위한 공간으로써 채광된 것 같았다. 육체를 갉아내며 어딘가 또 벗겨낼 것이 없나 살펴보고 있다. 껍질을 벗겨 갈라지는 안을 보여주는 것이 이목을 끌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괜찮다.

보여줄 것이 없는 인간은 두려워 몸을 떨었다. 표면만큼 허무한 것은 없으나, 어차피 생이 무용한 것이라면 표면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찰나에 불과한 생이라면, 찰나 동안 벽면을 따라 찬란히 불빛을 쏘고 사라지는 것만큼 즐거운 것은 없었다. 표면에 안착하여 떠다니는 삶은 우습고도 몽롱했다. 본질의 본질을 알아야만 도달하는 영역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살고 있었다. 그만큼 손쉽고도 신나는 땅이었다.

나는 더욱 말을 잃었다. 그 땅이 나의 집을 침범할수록 내가 입을 벌릴 수 있는 공간은 좁아지고 있었다. 입은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나의 의지에 따라 닫혀갔다. 힘이 들어가는 입은 교근으로 뒤덮이고, 나중엔 근육으로 자물쇠가 만들어져 인간을 먹어치울지도 몰랐다. 의지는 그만큼 강대한 괴물이었다. 인간의 의지는 외부에 의해 형성되지만, 만들어져 버린 후엔 인간의 안에서 무엇보다 단단해져 타인이고 세계이고 전부 부수면서 나아가려고 했다. 의지에 휘둘리지 않고 싶었지만, 의지는 인간과 같았다. 내가 나를 부정할 순 없는 것이었다. 신체의 한가운데에 온 몸의 근육들을 끌어모아 의지는 매달려있었다. 말을 않는 나의 문장들은 그것이 먹어치웠다. 의지는 글로서 뻗어나갔다.

끊임없이 인간을 고민했다. 불가능한 것에의 갈망은 인간을 지배한다. 나의 불가능은 인간에의 것이었다. 나는 인간과 하나가 되고자 했다. 사회 안에서, 사람 안에서, 집단 안에서 하하호호하는 것이 즐거워 보였다. 미소에 관하여 끊임없이 말하는 것도, 웃음이 인간의 행복한 상태를 표방하기 때문이었다. 진심 어린 미소를 받는 인간이 된다는 것으로 나는 뚜렷이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 설레발치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될 리가 없는 인간이었다. 어차피 난 내 안에 갇혀있는 인간이었다.

상념이 너무 무거웠다. 벗어나고 싶었다. 눈을 뜨고 이불을 개는 동안 뚜벅뚜벅 들어서는 생각을 물리칠 순 없었다. 이미 그렇게 살아가는 나였다. 거칠 것 없이 들어선 상념들은 꿈도 기억나지 않아 고요한 자아를 할퀴었다. 손톱은 짧았지만, 상처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꿈에 겨운 인간이다.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다. 인간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인간에게 타인은 필연적인 것이다. 혼자인 인간은 종래엔 미쳐버린다. 미쳐버리는 것엔 이유가 있다. 정신이 조각나 분열되는 것엔 분명 원인이 있다. 사람은 혼자이기를 견디지 못한다. 혼자가 되어버린 인간은 스스로를 갈라버리는 한이 있어도 고독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인간 자신이 원치 않더라도, 육체를 포함한 그의 본능은 고독에서 벗어나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고독이 두렵다. 혼자이기가 두려웠다. 세계에 뒤덮여 잇는 피상의 카펫 위에서 춤추는 것 만이 남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피상의 가면 위에 불안히 앉아있는 것이 생의 과업이 되더라도, 선택지는 없었다. 결국 인간에게서 벗어나는 것이란 불가능했다. 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는 모른다. 강인해 보이는 인간의 내부는 아주 유약할 것이다. 껍질이 단단한 인간의 속은 혀처럼 물렁하다. 물렁함을 딛고 살아가기 위하여 자신의 본질과 반대되는 강대함을 바라는 것이다. 나는 강하길 바라지만 아주 약하고, 저기 강해 보이는 인간들도 그렇게 보이기만 할 뿐일 테다. 사실은 유약한 내부를 감추기 위하여 보다 빛나는 옷을 입는 것이다. 그래 보이기만 할 뿐이지만, 별로 상관없다. 세계의 주인은 역시 껍질이자 표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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