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을 모으다 - 2
1. 머무르기 버거운 하루들이다. 애착을 갖고 의지하려 해 보아도 하루들은 덧없이 스러진다. 인간은 시간에도 사람에게도 기댈 것 없이, 무너지는 기둥들에 마음을 내어놓다가 부서지는 뿌리에 휘말려 함께 쓰러지곤 한다. 공허로 채워지는 매일이다. 참다못하여 오롯이 홀로 서있으려는 갈망이 인간을 지배하더라도, 좀처럼 만족되지 않는다. 우리는 고독을 바라는 만큼 타인의 존재를 바라기 때문이다. 갈망이 또 다른 갈망에 의해 배반당하는 것이다. 자그마한 욕망조차 모순으로 덮여있는데, 그들이 외부로 발현되어 엮여가는 인간들의 삶이 사리에 맞을 리가 없다. 부조리한 일들만이 반복되는 것이다.
2. 타인의 글을 통해 세계를 보는 것으로, 그들이 어떤 시선을 품고 매일을 사는 중인지를 엿볼 수 있다. 자의식에 가득 차 인간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인지, 바깥에 대한 관심으로 넘쳐흘러 본인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는지, 원인 모를 불행으로 무기력과 허무가 지배하는 하루들에 붙들려 살아가고 있는지는, 그의 글을 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편지도 마찬가지이다. 독백이 아닌 누군가를 향한 글은 저마다의 따스함을 담아낸 그릇일 때가 많다. 진심을 다한 편지들은, 전체에서 한 인간으로 좁혀진 타인의 시야를 그들에게 건네는데 쓰인다. 그들을 통하여 인간은 타인의 자그마한 온기나 시선을 자신 안에 담아놓을 수 있게 된다.
인간이 편지를 통해 나누는 마음은, 표면뿐인 온기는 아닐 테다. 불타 사라지는 한낮의 몽상 같다기엔 좀 더 단단하다. 헛되지 않다. 한낱 몽상은 그저 있다가 없어지곤, 지워진지도 모르는 것이다. 마음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마음이 잊힌 듯 사라지는 안개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마음은, 혼란스러운 인간의 의식이 자각하지 못하더라도, 탄생한 순간부터 인간의 의지와 별개로 저마다의 길을 나아가는 유기체이다. 그만큼 크게 자리한지도 몰랐던 마음이 나의 자아를 불사르려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큰 것처럼 느껴졌던 마음이 풍선과도 같은 것이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감정과 열정은 머리와 전혀 다른 말을 하곤 한다.
편지는 타인의 감정과 이성이 얼마나 일치하여 본인에게 쏟아지곤 했었는지를 현재에 와서야 알게 해 준다. 마음의 역사를 더듬어보는 중에 참고할만한 지표이다. 비록 나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끊임없이 왜곡되고 미화되고 잊혀져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겠지만, 타인의 것은 선명하게 느끼거나, 재발견하게 도와준다. 어떤 마음을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었는지 아는 것은 소중하다. 삶을 살아갈 의지를 주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편지를 아주 중요한 것으로, 자신의 일부인 것으로 여기는데 익숙한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3. 그런데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 것이 인간 아닌가. 어쩌면 내가 늘어놓은 말들은 전부 궤변일 수도 있다. 내가 어떤 열망에 휩싸여 이런 결론들에 도달했는지 모른다. 나는 왠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편지가 거짓이었을지 진심이었을지는 본인조차 모르는 것이다. 내가 적은 것들 또한, 얼마나 본심을 다한 것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내가 말한 모든 것은 전혀 의미 없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