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에게 유대감을 느끼는 게 예외적이고 행복한 일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선 불행을 느끼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결핍을 느낀다. 감정적인 결핍이 아니라, 감정을 자아내기 위한 의미의 결핍이다. 그들을 바라보며 뭔가를 느끼기 위한 의미를 잃는 것이다. 이 의미를 발견하는 것도 지극히 개인적이라, 인간이 무엇을 말하는지 보다는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 번지르르한 말, 듣기 좋은 말, 따뜻하나 진심이 아닌 말들은, 그들이 아무리 곱게 포장되었던 찢어서 속내를 보이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인간됨이 결여되어 있으면 그들의 말은 내게 서려들 수 없다.
인간됨을 파악하는 기준 또한 개인적이다. 세계를 향한 나의 인식은 개인적인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인식의 특성상 아주 당연하다. 이런 괴리를 느끼는 인간은 모두 대화를 벗어나 책상 앞에서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대화 속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개인적 시야가, 통념적이고 일관적으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들을 내팽개치고 달아나는 것이다.
책을 탐하는 사람들이 글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책과 글의 세계는 대화에서 도망친 자들의 성역인 것이다. 표면을 살아가기에 여념이 없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결핍된 것을 찾고자 글씨들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이 모였기에 글을 읽는 게 즐거울 수밖에 없다. 글을 읽는 인간들은 대화하는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본인과 유사한 상념을 갖고 즐거이 소통할 수 있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다만, 어쩐지 대화와 삶 속에선 잘 발견되지 않는 사람들이라, 책 속에서 그들을 발굴해내게 되는 것뿐이다.
글을 읽던 대화를 하던 결국 사람들은 모두 사람을 사랑하여 말을 좇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언어가 마음에서 끓어오르느냐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생을 인간으로 채우고자 하는 각자 고유의 갈망이 이야기들을 좇다 보니 다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가끔 두 갈망이 합치되는 인간을 만나면 정말 행복하다. 나의 좋은 친구들이 그렇다. 대화와 글이 섞여 들어가는 소통을 앞에 앉아있는 타인과 공유할 때면 정말 그렇다. 글을 읽는다고 다 같지 않고, 대화를 한다고 다 같지 않은데, 거짓말처럼 유유히 흐르는 대화가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들을 몇 번 맛보면, 책만큼이나 사람을 좇지 않을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