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의 시선에서 졸업할 때, 진정한 나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나에겐 불가능한 것이었다. 타인에 의해 나의 자아가 오밀조밀 모양 지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순전히 나의 근본이 타인들에게서 벗어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모난 것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눈초리가 두려운 인간으로 나는 태어나버린 것이다. 나의 속성을 부정할 순 없다.
인간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동시에 인간들 안에 안존하고 싶다. 어느 한쪽이 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이 그럴 것이다. 눈앞의 동료와 허물없이 미소 짓다가도 모든 걸 으스러뜨리곤 바닥에 훌쩍 잠겨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곤 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을 반기는 동시에 그들에게서 달아나고 싶은 양가적 갈망이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한다. 미쳐버린 인간이 아닌 이상 타인을 의식에서 도려낼 순 없다.
그러나 고독에서 벗어나 타인에 뒤덮여 하루들을 쳐다보면, 불필요한 짜증들을 느낀다. 인간에게 인간만큼 해로운 것은 없다. 고작 뇌와 뇌의 접촉일 뿐인데 자그마한 흐름들에 나는 끊임없이 작은 발작들을 일으킨다. 나를 향하던 향하지 않던 타인들의 부정적인 감정, 애처롭고 이기적이고 동물적인 감정들에 숨 막힐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렇다는 것을 잊을 리는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처에서 풍겨오는 지독한 향에 찌푸리게 될 때가 있다. 나는 유약함으로 당장 그 역함을 집어채어 사람들의 안면에 들이대지 못하니, 그저 마음으로 찌푸리는 것이다. 외면의 얼굴은 그저 무표정을 하고 있다.
인간의 자아를 몸에서 분리할 순 없다. 몸은 우리의 표현이고, 자아가 세계를 인식하고 움직이는데 필수적인 창이다. 그러나 저런 순간의, 저런 자리에 처박혀있는 나는 그 둘을 같은 것으로 느끼기가 어렵다. 둘은 분명 연결되어 있으나 다른지도 모른다. 나의 자아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제멋대로 흘러가는 거북함을 느끼고 있으나, 나의 표정은 이를 말할 순 없다. 거짓말을 하느니 침묵을 지키고 싶다. 나의 감정에 반하는 표정을 지을 바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표정을 짓는 것이 자아의 고통을 말하는 것은 아니므로, 몸은 자아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표정을 없앤 나를 보고 사람들은 나의 우울을 잘도 알아챈다. 아무래도 표정이 잘 드러나는 것은 저주이다. 무슨 말을 할래야 나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이 말을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곤, 동이 틀 때 빛이 바닥에 떨어지듯 나의 의도가 그들의 인식에 머금어지는 것이다. 예민한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볼 때면 나는 결국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이 알아채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인간을 바라면서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실은 그들이 알기를 바라는지도 몰랐다. 모두가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슬퍼하는 나의 자아를 지나쳐버리면 절망스레 외로워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결국 나는 그들에 의해 생긴 지겨움을 그들의 위로로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양가성이 격렬히도 존재했다. 역동적인 고독과 고요 안에서 평안을 느끼는 인간이 사람들 가운데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바람에 이렇게 되는지도 몰랐다. 너무 많은 사람들은 내겐 해가 되는 것이다. 인간인 이상 있을 수밖에 없는 각자의 예민하고 날선 불평들이 내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 때면 머리가 정말로 아파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서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고 다시 되뇌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애초에 내가 그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었다면 그런 다짐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