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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존재 Nov 19. 2020

덜어내야 발전한다

나아가기를 결심하면 머물러 있을 때의 감정들은 묻어두어야 한다. 제자리에  있는 자와 움직이는 자의 시선은 다르다. 죄에 근접했던 시간들, 너를 갉아먹는 장면들, 목표를 바라보는 너의 주변시에 또렷이 존재하는 두려움들. 자기 자신을, 타인을 향하는 옭아매는 행위들.


사슬을 벗어던진 프로메테우스는 어디까지 올라갈  있는가. 신에게서 불을 훔칠 만큼 담대했던 인간도 속박과 고통에 길들여진 채라면 창공을 다시 바라볼  있을 것인가. 지상에서 일렁이는 밤의 햇빛을 바라보며 공연한 웃음을 짓게 될지도 모른다. 더는 나아갈  없는 , 오를  없는 , 쥐지 못할 힘을 그리며 탄식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초인에 한없이 근접했었으나 결국엔 인간이기에, 익숙해진 절망과 함께 범인의 삶으로 내려앉는 것이다.


그렇다면 묶인 채로 태어난 인간들은 어떻게 되는가? 불을 훔친 경험도 신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경험도 없는, 구조에 매인 기억뿐인 인간들은 무엇을 갈망하기 시작해야 하는가?  눈을 떠야만 하는가? 현대인들 또한 쇠사슬에 매여있다. 그러나 우리는 독수리가 아닌 나태, 안일함, SNS, 반지성주의, 비합리주의, 본능에게 심장을 내어놓았다. 푸른 멍이  뇌들, 지친 안색과 담배 연기, 사람이 사람을 이어 빠져나갈  없는 살덩어리의 지옥을 만드는지도 모른다.


나아가기를 결심하면, 인간 지옥에서 빠져나가기를 원하면 순식간에 역겨워지는 풍경들이 있다. 심장이 익히 느끼던 감각들은 삶이 끝날 때까지 욕망을 부추기며 몸부림치겠지만, 한번 역겨워진  되돌릴  없는 것이다. 심장이 쪼이던 쾌락이 우릴 부를 것이다. 그러나 되돌아가기 위해 몸을 담가야 하는 하천은 오염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립더라도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인간이기에, 언제라도 바닥에 다시 가라앉을  있는 인간이기에 그래야만 한다. 과열된 살덩어리들은 끝없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타인의 더위에 뜨거워진 뇌를 매일 식혀주어야 한다. 하루하루 입혀지려는 더위를 지우며 발전해야만 한다.


천재는 태어나는  아니라 만들어진다. 초인 또한 탄생하지 않고 형성된다. 부모에 의해, 사회에 의해, 그리고 자아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성하기 어려운 구성에 의해 각자의 영역에서 고유한 초인이 된다. 어느 누구라도 초인이   있다. 어떤 초인이 그들 안에 잠재되어 있는지는 누구도 예상할  없으나 존재한다는  만은 단언할  있다. 결국 성취를 위한 노력은 세계가 주입한 가치를 위한 것이 아닌, 자기 안의 초인을 실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걸 위해선  반대로 나아가는 세계의 영향력을 끊임없이 몸에서 덜어내야 한다. 때로는 과거의 자신마저도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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